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V. 만민은 불평등 하나니 10. 산스까라 Sanskara 통과의례



5-10. 산스까라.jpg


힌두교 세계관은 철저히 ‘만민은 불평등하다.’는 개념을 기초로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바르나 즉 카스트를 기준으로 하여 사회에서 행해야 할 도리 혹은 의무가 다르마라는 이름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높은 카스트가 해야 할 일과 낮은 카스트가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다르고, 낮은 카스트는 높은 카스트가 하는 일은 감히 범접할 수 없으며, 만약 그것을 어기면, 상상을 초월한 징벌이 내리고, 그것을 잘 지키면, 다음 세상에 좋은 몸으로 환생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지요. 물론 여기에서 여성은 낮은 카스트와 같은 혹은 그만도 못한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로 구분을 짓는 일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드릴 산스까라sanskara 즉, 통과의례입니다.



산스까라는, 인류의 다른 문화권에도 모두 똑같이 생겨났듯, 이곳 힌두 사회에서도 한 개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쳐 가는 인생의 분기점마다 안녕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수행하는 여러 차원의 사회 필수 의례지요. 대체로 탄생, 입문, 결혼 그리고 죽음의 의례가 주요한 통과의례인데, 힌두교에서는 고대 사회가 점차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그 수가 늘어나 열여섯 개가 되었습니다. 열여섯 산스까라는 매우 중요한 사회 전통으로,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행해야 하는데, 방금 말씀드린 네 가지 외에도, 임신, 이름 짓기, 체발, 첫 수염 깎기, 학업 종료 등이 있습니다. 이 산스까라는 지역과 카스트에 따라 조금씩 그 형식은 다르지만, 근대 사회 이전에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례고, 수행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아주 심한 혐오를 받게 되는 그래서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관습이지요.



여기에서 반드시 행해야 할 ‘필수’ 의례라 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의례를 수행해야만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격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예컨대, 성인이 되는 남자아이는 성사(聖絲)라고 하는 무명으로 만든 긴 줄을 목에서 허리 쪽으로 찹니다. 반드시 스승이 주관하는 산스까라를 통해서 차는 겁니다. 그런데 그 통과의례는 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슈드라, 불가촉천민 그리고 여성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 의례를 행하지 못하면 즉 그 성사를 착용하지 못하면, 교육을 받을 수가 없고, 교육을 받을 수가 없으니, 즉 네 단계의 아슈라마 가운데 첫 번째 단계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즉 사회적 권리가 박탈당하는 게 그들의 법에 따라 보장된다는 겁니다. [마하바라따]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지요. 드로나(Drona)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한 슈드라 청년이 찾아와 활쏘기를 가르쳐주시기를 청하는데, 드로나가 카스트가 낮다며, 거절하고, 그 청년은 스스로 연습해서 뛰어난 궁수가 됩니다. 그런데 그 실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산스까라를 행하지 않고 혼자 배웠기 때문에 그 실력은 유효하지 않다는 거지요. 결국, 드로나는 그 청년에게 엄지를 잘라 오라 명령했고, 그는 그 명령을 순순히 따랐지요. 어느 한 사람의 뛰어난 실력보다 전체 사회의 틀을 지키는 질서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한 거지요.



결국, 산스까라는 겉보기엔 경건한 종교 의례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신화와 실제 모두 이러한 차별 구조를 정당화하거나 은연중에 강화하고 있었죠. 결국, 산스까라 의례란, 반드시 행해야 할 의무지만 그 의무조차 오직 상위 세 카스트 남성에게만 지워지는 것이고, 그 의무를 행하지 못하는 자 즉 하층 카스트와 여성은 사회의 모든 행위로부터 철저히 배제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하층 카스트와 여성에게도 허용되는 산스까라가 있긴 했습니다. 결혼식과 장례식. 그러나, 그들이 허용한 그 두 의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차별적인 거지요. 두 위례 모두 베다를 낭송한다거나 브라만 사제가 집전하는 등의 브라만식 의례는 행할 수 없게 못을 박았지요.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진 방식으로 그 수행을 허락한 거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나마라도 허용하지 않으면, 하층 카스트의 반발이 폭발해 사회 질서 안정적 유지라는 큰 틀에서 허용한 거지요. 요즘 한국 정치에서 말하는 ‘통합’ 차원이지요. 그래서 힌두 세계관은 우선은 차별의 이데올로기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해 왔습니다.



근대 사회 이후 산스까라는 그 위세를 많이 잃었습니다. 여전히 사적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행하지만,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고, 사회적 자격을 박탈하고 금하는 일은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 그 영향력에서 인도 사회가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성사 착용을 한 번 보세요. 상위 카스트 세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그 성사를 하위 카스트 남성들이 착용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문화가 세워져야 하는데, ‘쌩 까고’ 몰래 차버린다는 거지요. 특히 익명성이 두드러진 도시 사회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만큼 그 성사의 위력이 커서 그렇겠지만, 사회의 봉건성은 점차 약해지지만, 여전한 건 사실이지요. 물론, 도시 사회에서는 산스까라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사적 공간의 요소로 줄어드는 중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