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V. 만민은 불평등 하나니 11. 박띠 Bhakti 信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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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에 부산의 어느 인문학 연구소에서 세계 각 종교의 ‘사랑’에 대한 개념을 놓고, 토론해보자며 논문 청탁을 해왔습니다. 고민하다가 힌두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이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하고 그렇게 다르지 않으니, 힌두교만의 독특한 개념으로서의 사랑을 논해 보는 게, 낳겠다 싶어 ‘박띠(bhakti)’를 택해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서는 힌두교의 많은 개념이 불교를 통해 동아시아로 번역 전수될 때, 그곳에서는 어떻게 이해되면서 번역되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근래에 들어 일본인 학자들은 이를 신애(信愛)라고 번역하더군요. 좋은 번역이긴 한데, 제,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여기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박띠’를 구성하는 주요 의미가 매우 다양한 데 있습니다. 불교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와 소개된 것은, 제가 찾기로는 거의 없고, 근대 이후 중국에서는 信, 信心, 深信, 敬, 敬重, 敬奉, 尊敬, 恭敬 등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고 일본에서는 愛着, 獻身, 服從, 尊重, 崇拜, 歸依, 誠信, 信仰, 信愛 등으로 사용합니다. 국내에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없는 상태라 어떤 의도에서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일부 선학자들은 ‘信愛’로 번역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띠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인격신으로서의 절대 신에 대한 믿음(信)과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헌(獻)이지요. 일본 사람들이 쓰는 애(愛)는 ‘信’과 ‘獻’의 종교적 행위에 기본적으로 내재하는 개념입니다. 박띠에 ‘愛’가 ‘獻’에 우선하는 대표 개념으로 번역된 것은 박띠가 초기 유럽인 동양학자들에 의해 기독교 개념과 대비되면서 ‘愛’의 개념이 강조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박띠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우리 세계관에서는 같은 게 없고, 불교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러니 여러 종교를 비교해가면서 살펴보는 게 그 개념을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박띠는 신을 지극히 믿고 존숭하여 그에게 뭔가를 예컨대, 찬송가나 찬미시나 연극이나 그림이나 의례 혹은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헌신하고 그에게 귀의하거나 그의 충성스러운 종이 되거나 하는 의미입니다. 모든 종교에 널리 쓰이는 신심(信心)으로 예배드리면서, 나를 버리고 주님의 뜻에 모든 걸 따른다는 그런 개념입니다. 우리 삼국시대 불교 정토종(淨土宗)에서 널리 나타난 아미타불에 대한 신심으로 그의 이름을 염송하거나 염불하는 것을, 통해 왕생을 구하는 것이, 힌두교의 박띠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화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붓다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반복하여 외우는 예배 행위가 박띠의 끊임없는 기도와 찬가를 바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두 신앙 모두 대중적이라는 것이 그 공통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박띠 개념은 신에 대한 인간적 사랑과 헌신이 매우 중요한 측면입니다. 힌두교의 여러 수행 행위 즉, 요가, 사마디, 디야나 혹은 깨달음은 개인이 신과 친밀한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기독교에서 예수와의 사랑을 신랑과 신부의 사랑으로 비교하는 개념과 유사하지요. 아가페적 사랑 즉, 하나님을 향한 무조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사랑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관계 즉 전적으로 개인적 관계가 중요한데, 박띠도 그렇습니다. 둘 다 신과의 개인적 교감을 위해 기도하고 찬송하는 행위가 신앙생활의 중심이지요.

역사를 통해서 보면, 16세기 북인도 어떤 왕국의 공주인 미라바이(Meerabai)는 이웃 나라의 왕자와 정략적으로 결혼했는데, 자신은 어린 시절에 끄리슈나 신과 결혼했다고 믿었고, 그 때문에 남편과 시댁 사람들은 그녀를 매우 불경스럽게 여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혼 후 전통을 어기면서 왕족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하인들과 함께 거리에서 끄리슈나 찬송가를 부르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다녔습니다. 가문과 명예를 중시하는 시댁 측에서는 그녀를 살해하려고까지 했는데, 이루지 못했다는데, 미라바이는 끄리슈나가 자신을 보호한다고 굳게 믿게 됩니다. 그가 살던 16세기 인도에서 여성은 가문의 전통에 매우 얽매었는데, 그는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쓴 끄리슈나에 대한 찬시는 비록 종교적이지만, 자유, 사랑의 노래로 크게 인정 받습니다.


일부에서는 그것을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도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역사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박띠 사상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당시의 사회 제도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종교적 구원의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 준 것이지요. 그것이 갖는 사회 개혁적 차원에서의 긍정적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람들이 현실을 포기하고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함으로써 전통적 사회 계급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 결과를 만들었지요. 박띠 신앙은 카스트 체계를 반대하는 사회 개혁 운동으로 전혀 시도조차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그 자체가 신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본 것은 힌두교 신앙에서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여성 해방이나 평등주의를 부르짖은 것처럼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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