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VII. 신들이 노는 세계. 3. 이슈와라 Ishvara 神


힌두교를 소개하는 글들이 많지는 않지만, 좀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들었는지, 틀린 게 참 많습니다. 앞뒤 문맥을 읽어보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것도 많고요. 그 가운데 하나가 힌두교에서는 신도 윤회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힌두교에는 신이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윤회의 법칙 아래 놓인, 즉, 그가 하는 업에 따라 다음 세상에 또 뭔가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신이 있는 반면에 전혀 그렇지 않은, 즉 윤회의 법을 완전히 초월한 절대 지존의 신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전자는 데와deva라고 부르는 신이 있습니다. 데와는 천상에 존재하는 신으로 자연, 혹은 우주 혹은 세계의 특정한 측면을 관장하는 신이지요. 예컨대, 인드라는 싸움하는 장수, 보호자 혹은 왕의 역할을 하고, 아그니는 제사를 관장하고, 가네샤는 지혜를 주는 역할을 하고, 하누만은 누군가를 돕는 일을 행하고, 까마는 자손의 번식을 담당하는 신들이지요. 그러니 데와는 윤회의 법칙에 구애받는 존재지요.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죽은 후에는 윤회의 질서를 따라 환생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또 다른 신으로 데와 아닌 이슈와라ishvara라는 신이 있습니다. 데와와 달리 이슈와라는 모든 곳에 있고, 모든 것을 관장하며, 태초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면서 우주 그 자체인 무소불위의 절대 지존입니다. '힌두교의 삼신'이라고 흔히 말하는 그 세 신이 이슈와라지요. 제2장에서 다룬, 우주의 모든 것이자, 파악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변화하지도 않고, 생멸하지도 않는 절대 존재인 브라흐만이 인격의 모습을 띤 인격신입니다. 이론상으로는 비슈누Vishnu와 쉬바Shiva 뿐만 아니라 브라흐마Brahma도 이슈와라에 속하지만, 실제 종교에서 브라흐마를 이슈와라로 섬기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이슈와라로 가장 많이 숭배하는 신은 비슈누지요. 그리고, 비슈누의 화신인 끄리슈나, 라마 등도 이슈와라입니다. 이슈와라는 어근이 ‘지배하다’, ‘다스리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주인’, ‘통치자’라는 뜻이 원래의 개념이라서, 기독교 바이블이나 찬송가에 많이 나오는 ‘주(Lord)’로 많이 번역됩니다. 기독교에서 ‘왕’이나 ‘지배자’, ‘군림하는 자’ 등의 어휘를 많이 쓰는데, 힌두교에서도 거의 똑같이 쓰입니다. 심지어는 기독교 찬송가에서 많이 쓰이는 ‘경배받는 분’, ‘축복받는 분’의 의미로도 숭배받는데, '바그완'Bhagva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힌두교 최고의 신학이라 불리는 [바가와드 기따](Bhagavad Gita)란, 비슈누의 화신 끄리슈나가 자신을 스스로 경배받는 자, 바그완으로 지칭하면서 우주 질서를 드러내는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데와는 그리스 신화 속에 나타나는 신들과 유사한 존재이고, 이슈와라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전자는 생멸하고 후자는 생멸의 너머에 있는 존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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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절대 신 이슈와라는 무슨 일을 할까요? [바가와드 기따]에서 끄리슈나가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모든 의무를 버리고 자신에게 귀의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죄에서 해방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 신약 신학에서 규정하듯 예수에 대한 믿음 하나로 모든 죄에서 벗어나는 ‘이신득의’의 이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이슈와라 즉 끄리슈나에 전적으로 귀의하면, 그 신의 은총으로도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신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슈와라를 믿기만 하면 아무 노력 없이 해탈을 얻는다는, 어찌 보면 값싼 구원 개념은 아니고, 신과 합일하는 상태를 이루면, 그로 인해 존재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해탈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지요.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절대 지존 이슈와라를 믿고 따르면. 그동안 쌓은 업보를 줄이거나 변경할 수 있다는 의미지요. 힌두교가 오로지 까르마의 길을 통해서만 내세가 결정된 게 아니고, 기독교와 같이 믿음 즉 박띠에 의해서도 그리고 또 하나의 길인 쟈나 즉 깨달음을 통해서도 내세로 가는 길이 결정된다는 신학을 말하는 겁니다. 이 세 가지 길, 즉 까르마 (업), 쟈나 (깨달음), 박띠 (믿음) 가운데 박띠로 인한 길을 이슈와라가 주재한다는 의미지요.


결국 힌두교는 ‘이슈와라’라는 절대적 신의 존재로 인해 기독교가 제시하는 믿음에 의한 구원의 길을 갖습니다. 힌두교는 오로지 자신이 행한 업에 따라 보를 얻는 종교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구원에 관해서, 기독교에서는 한 가지 길이 있지만, 힌두교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힌두교는 기독교와 같이 그 ‘구원’이라는 행위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건 아닙니다. 힌두교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고, 다른 존재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하고, 복과 은총을 구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쉽게 생각하면 모든 일을 이슈와라에게 의지하고 맡기도 그 은총을 기다리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들은 종교를 그렇게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간구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거지요. 그러니 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은 윤회의 질서 밖에서 우주 질서를 주재하는 이슈와라가 아니고, 윤회 질서 안에 있는 한정된 존재, 가네샤나 하누만 같은 신이지요. 기독교적 세계관에 심취해 있는 사람은 이런 세계관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힌두교는 다신교이면서 유일신교적 성격도 나름 갖고 있다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이런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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