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VII. 신들이 노는 세계. 4. 릴라 lila 遊戲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처음 인도에 유학 가서 인도사를 공부할 때, 접하는 모든 게 다 이상하고, 불편하고, 거칠었지요. 그만큼 그때 저는 근대 서구의 세계관에 익숙해 있었고, 인도는 아직 자기들의 전통 세계관과 문화에 뒤덮여 있어서, 그 사이에서 제가 많이 불편해했던 것 같아요. 그 가운데 하나가 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영화가 대부분이 4시간 넘게 하는데, 힌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 스토리는 다 이해할 정도로 진부하고, 교훈적이고, 권선징악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참 한심하다 싶었지요. 사랑, 미움, 배신, 폭력, 악당, 사기, 좌절, 착한 이웃, 도덕, 신의 강림, 극복, 해피엔딩 이런 요소들로 순서만 바뀐 채 조합된, 그러면서 중간중간에 군무가 삽입되고 노래가 나오는 데 뮤지컬도 아니면서 뮤지컬 같기도 하고, 하여간 영화 대부분이 다 똑같더군요. 너무나 촌스럽고 재미가 없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볼리우드라 불리는 그런 영화가 대세를 이루고, 그 속에서 헐리우드나 한류가 맥을 못 추는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다는 게 참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인도 영화는 왜 그럴까요?


그건 힌두교에서 말하는 릴라(lila)의 영향 때문일 것으로 봅니다. 릴라는 절대 신 즉 이슈와라가 펼치는 놀이 또는 연극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 신이 펼치는 것이니 단순히 노는 게 아니고, 그러니 ‘놀이’나 ‘연극’ 앞에 ‘신성한(divine)’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뜻이 더 명확해지겠지요? 본질적으로 ‘놀다’라는 자유로운 행위를 명사화한 것으로, ‘유희’, 혹은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을 뜻하면서 신의 창조로 해석되지요. 그러니, 신이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갖지 않고, 그냥 ‘심심풀이’로 세계를 창조하고, 때가 되면 파괴했다가 다시 창조하는 행위를 릴라라고 부르는데, 그것을 연극으로 만들어 동네방네 곳곳에서, 마치 저 어렸을 적에 명절 때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춘향전 공연하듯, 공연을 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지요.


릴라 개념에 따르면, 우주라는 건 그 자체가 신이 놀이로 창조한 겁니다. 그러니 그건 본질로서 영원한 것이 아니고,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시인 타고르가 자기 시에서 노래하듯,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노는 놀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그 안에서 세상은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마야(幻)지요. 그러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신의 장난처럼 펼쳐지는 극장 혹은 무대이고, 인간은 그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해서 펼치는 배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 안에는 선과 악이 있고 그 과정에서 영웅과 악당 모두 나타나고, 결국 신의 뜻을 따르는 자가 영웅이 되어 승리하고 악당은 패배한다는 게 주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신의 의지를 읽고 따르라는 메시지지요. 이 대목에서 중요한 신학적 논리가 발전합니다. 사랑과 선으로만 세상을 구상하지 않고 왜 고통과 악을 곁들여서 세상을 창조하였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그 섭리론을 설명하는 논리입니다. 그들은, 신이 세상을 만든 것은 인간의 시점에서 보면 무질서하거나 고통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단순하게 그 자체로 하나의 놀이로 그냥, 심심풀이로 한 결과라는 겁니다. 신의 놀이로 창조한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삶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마야(환)이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 마야를 극복하려면, 브라흐만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 브라흐만이라는 절대 본질이 인격신으로 나타난 게 바로 이슈와라 절대 신이니 그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박띠 신앙을 키우라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그 일련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각색해 동네방네에 가서 공연하고, 그 영향에 푹 빠져 살아온 전통이라 영화도 그런 구조를 갖추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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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렇게 무대에 올려진 릴라는 연극이면서, 예배이고, 그 속에서 신앙을 집단 경험하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연극으로 공연되는 릴라는 여러 종류의 피리 소리가 배경으로 연주되고, 배우들이 다양한 춤을 추면서 그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배우가 이야기를 낭송하기도 하며, 성우가 나레이션을 하는 등 전형적인 종합 예술을 펼치지요. 관객들은 그 종합 예술을 직접 체험하며, 울고, 웃고, 한숨짓고, 분노하며, 신에게 간구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실질적인 집단 카타르시스를 가져오는 예배 역할을 하는 겁니다. 대중 교화 장치로 과연 이만한 게 또 있겠습니까?


이러한 종교 예술이 대중문화의 거대한 특질로 자리 잡은 것은 아무리 늦어도 10세기부터는 될 것입니다. 앞의 ‘박띠’에 관한 글에서 설명한 바 있는,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예배를 의미하는 박띠 신앙이 크게 유행하던 중세 때부터 지금까지 인도 사회에서 주요한 예술 종교 행위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지금은 디왈리(Diwali)같은 명절이 되면 큰 공연장에서 성대하게 펼쳐지는데, 그 대표적인 릴라 공연은 비슈누의 가장 주요한 두 화신, 라마의 이야기를 담은 라마 릴라와 끄리슈나의 신화를 담은 끄리슈나 릴라 특히 후자의 일부인 끄리슈나와 여러 고삐(gopi 처녀 목동)들과의 놀이와 사랑을 담은 라사 릴라를 들 수 있습니다. 2005년에는 라마 릴라가 유네스코 지정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인도 문화의 영향이 큰 남아시아와 지역과 동남아시아에서도 이 라마 릴라와 끄리슈나 라사 릴라는 매우 중요한 문화 요소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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