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VII. 신들이 노는 세계. 6. 뿌자 Puja 供養

기독교의 성경인 [바이블]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게 나오지요. 그 ‘쉬지 말고’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종교를 갖지 않은 외부 사람인 제가 볼 때는 한국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게, 항상 밥 먹기 전입디다. 왜 밥 먹을 때만 빼지 않고 기도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도의 힌두교도들과는 좀 다른 듯합니다. 힌두는 그게 형식적이고 의례적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내내 기도만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뿌자puja입니다. 뿌자란 힌두교에서 신에게 경배하고 기도하는 의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상적인 개인 예배부터 사원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의례까지 다양한데, 신에게 감사와 헌신을 표현하고, 은총을 받기 위한 의례지요. 뿌자를 올리는 대상은 힌두교의 모든 신들, 즉 브라흐마, 비슈누, 라마, 끄리슈나, 쉬바 등 이슈와라는 물론이고 하누만, 가네샤, 락슈미, 두르가 등 모든 신에게 올립니다. 사원에 가서 뿌자를 올릴 때는 사제가 진행하고, 올리는 사람은 복잡한 의례를 거치면서 그 순서에 따라 공양물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집이나 일터에서는 아주 간단히 혼자서 올리지요. 보통 뿌자를 시작하기 전, 사람들은 손과 발을 씻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종을 울리는 게, 종소리로 신을 초치하는 거지요. 그게 시작인데, 메인 이벤트는 다양한 공물을 바치는 겁니다. 향이나 등불, 그리고 꽃이나 과일, 음식 등을 공양물로 바치는 순서가 이어지지요. 그리고 아르띠(arti)라는 불을 돌려 신 앞에서 빛의 춤을 바치지요. 혹시 바라나시 같은 데를 가보신 분은 이 갠지스강에 바치는 아르띠 뿌자의 화려한 의례를 보셨을 겁니다. 요즘은 관광객을 위한 대규모 행사로 자리 잡았지요. 그 과정에서 신상 앞에서, 만뜨라를 암송하고 뿌자에 참여하는 모두가 사제가 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친 음식은 뿌자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사원의 몫으로 돌아가는 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에서는 뿌자를 간편하게 올립니다. 우선,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해뜨기 전에 뿌자를 올립니다. 그리고 샤워를 깨끗이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출근이나 등교하기 전에 뿌자를 올립니다. 가게나 일터에 출근하면, 향을 피우고 또 뿌자를 올립니다. 정오가 되면 또 뿌자를 올리고, 해가 질 무렵 혹은 가게 문을 닫거나 퇴근하고 나서도 신에게 뿌자를 올립니다.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은 더 긴 시간 동안 더 많이 차리는 뿌자를 올리지만 아무 일도 없는 평일, ‘범사’에, 뭔가 기원하는 뿌자를 드리지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날마다 몇 차례나 뿌자를 올리는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 하루 장사, 일, 공부 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원이 가장 많습니다. 물론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악운이나 부정한 기운을 막기 위한 것도 빠지지 않지요. 전형적인 기복 신앙이지요. 물론, 요즘 들어 바쁜 현대 일상에서는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올리는 게 많은데, 간단히 향만 피우고 손을 모으는 정도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건너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간단한 만뜨라 즉 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대체하지요. 그 기도문은 산스끄리뜨 문장인데, 대부분은 그 산스끄리뜨 문장의 뜻은 모릅니다. 그야말로 그냥 주문인 셈이지요. 어쨌든, 아주 짧게 의례적으로만 행하는 게 많지만, ‘범사’에 뿌지를 올리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7-6. 뿌자.jpg

힌두교에서 뿌자는 단순한 의례가 아닙니다. 가장 큰 기능은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즉, 가족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이 의례에 참여해야 한다는 거지요.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데, 엄청난 파문이 일어납니다. 힌두교는 개인 신앙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신앙이라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뿌자는 인도뿐 아니라 네팔, 스리랑카 등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발리,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의 힌두 공동체라면 반드시 참여합니다. 그를 통해 자기들은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거지요. 인도 밖의 다른 나라에 사는 교민도 마찬가지로 뿌자는 반드시 올립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의심할 바 없을 겁니다. 물론 가족이 다 같이 하는 건 아니고 개인별로 따로 합니다. 뿌자를 올리는 대상 신도 당연히 개인 별로 달라도 아무 문제가 안 되고요.


이 대목에서 중요한 의미를 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뿌자를 한자어로 어떻게 번역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예배’라고 하지 않고, ‘공양’(供養)이라고 번역합니다. 우리나라 불교 사원에 가보신 분은 ‘공양’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불교 사원에서 ‘공양’은 부처님 혹은 스님께 물질 혹은 음식을 바친다는 뜻이지요. 물론 그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뜻도 포함하고요.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에 어쩌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고요. 뿌자란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 말하는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개인적인 기도나 그를 기반으로 하는 예배라는 의미가 중심이 아니고, 신에게 바치고 그것을 같이 나눠 먹는 의레라는 겁니다. 힌두교는 그만큼 물질, 기복, 공동체의 종교이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세상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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