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VII. 신들이 노는 세계. 8. 다르샨 Darshan 알현

앞의 두 글에서 힌두교에서 신에게 공양을 바치고, 그 신이 은총을 내리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반드시 신의 상(像)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를 우상 숭배라 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요. 대체로 기독교 영향을 받아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 신상은 어떤 물건을 성화한 것이지 그 자체가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그 신상은 여전히 돌이나 나무일 뿐, 다른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성화 의례를 하고 난 이후인 현재로서는 신의 기능을 행한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그것을 꼭 우상 숭배라 해서 부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그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감정이라든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에서 어머니 숨결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지요.


신상에 경배한다는 것은, 그 신상을 통해 신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성을 ‘보여줌’을 시전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습니다. 그 보여주는 것을 다르샨darshan이라고 하는데, 이 다르샨이라는 것은, 신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니, 사람들은 그 성스러운 보여줌 즉 다르샨을 알현하러 간다는 거지요. 이런 개념, 다르샨을 한자어로 옮기기는 참으로 마땅치 않습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이런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들은 신이 성스러운 기운을 발산하여 사방을 다 비추는 눈을 드러낸다고 믿는 것을 신이 ‘다르샨을 준다.’ 라고도 하는데, 내가 ‘다르샨 하러’ 간다고도 말합니다. 보통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가 주체가 되어 그 대상을 보러 간다고 하는데, 힌두교에서는 그가 봄을 드러내 주고, 우리가 그 봄을 알현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쌍방향의 ‘봄’인 셈이지요. 다르샨은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대상의 내면에 있는 성성(聖性)을 보고, 그 대상이 자기의 성성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보는 것이지만 신에게는 보여주는 것이니, 봄과 보여줌이 일치할 때 신이 현현하는 것이지요. 이는 결국, 직관의 세계 안에서 쌍방의 봄이 실현되는 것이지요. 종교학에서 널리 쓰이는 성현(聖顯. 히에로파니 hierophany)의 개념을 아시는 분은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힌두교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갖는 두 개의 눈 외에 또 하나의 눈이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지요. 네팔이나 티베트에 가 본 사람들은 그쪽 불탑에 보면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3의 눈이라는 것인데 이마 한 가운데 있다고 믿지요. 육체의 눈이 의미하는 바는 이성과 과학으로서의 소통이고, 이 제3의 눈은 육감으로서의 직관을 통한 소통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수준 높은 것으로 칩니다. 객관화한 다수의 시선이 아닌 주관적 소수의 시선을 더 존중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즉,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전(秘傳)되는 시선 혹은 관점을 존중하는 것이지요. 그 전통에 따르면 신과 그 신을 믿는 사람은 눈을 통해 접촉이 이루어집니다. 이 점에서 볼 때, 힌두 세계관이 기독교 혹은 근대 세계관과 가장 다른 점은 이성이나 과학 혹은 근거나 통계 혹은 다수결과 같은 명쾌한 논리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성이나 직관이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요.

7-8. 다르샨.jpg

다르샨에 관한 이야기 둘을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마하바라따]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고, 하나는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사실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마하바라따] 신화 이야기입니다. 빤두가의 다섯 영웅의 공동의 처인 드라우빠디는 끄리슈나의 독실한 숭배자였지요. 주사위 게임에서 자기 편이 져서, 몸을 빼앗겨야 할 때, 적이 그녀의 옷을 벗기려 한 유명한 일이 벌어졌지요. 이때, 그녀는 끄리슈나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를 듣고, 끄리슈나가 그녀의 마음속에 ‘다르샨’을 허락했고, 신을 접한 순간, 그녀의 사리는 아무리 벗겨도 끝도 한도 없이 벗겨지지 않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위기가 생길 때,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타나 달라고 기도하면, 그 신이 응답한다는 것을, 그 신이 다르샨을 준다고 말한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지요. 19세8세기 인도 종교 사회 개혁 운동의 큰 부분을 차지한 근대 인도의 뛰어난 힌두 종교의 스승 라마끄리슈나의 이야기입니다. 라마끄리슈나는 근대 인도의 최고 지성으로 세계적으로 영적 스승의 반열에 오른 비웨까난다Vivekananda의 스승입니다. 라마끄리슈나는 꼴까따에서 여신 깔리를 신봉하는 힌두 승려였습니다. 그는 깔리 여신과의 만남을 간절히 원했는데, 여신을 사모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심지어는 그리움에 혼절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답니다. 수년간의 명상과 헌신을 했는데,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줘 마침내, 깔리 여신이 그에게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다르샨을 준 것이지요. 그리고 그의 삶이 크게 바뀌었지요. 근대 인도 사회에서 다르샨을 중심으로 하는 영적 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힌두교의 세계화에 디딤판이 되었지요. 라마끄리슈나의 영적 운동을 통한 힌두 사회의 개혁 방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겁니다. 중요한 건, 근대 문명과 식민화가 나라를 흔들어댈 때 그들은 영적 운동을 추구했으며, 그것은 다르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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