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VII. 신들이 노는 세계. 9. 나마스 Namas 南無
아마 불교 신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일 겁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원래 힌두교에서 온 말인데, 기본 사전형 어휘는 나마스(namas)이고, 뒤에 오는 대상 명사에 따라 나마흐(namah)로 변형되는 용어인데, 불교에서도 차용되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단어지요. ‘나마스’는 ‘귀의하다’, ‘공경하다’와 같은 뜻으로, 특히 불교에서는 불이나 보살께 귀의하고, 의지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니, ‘나무아미타불’이라 하면, 아미티불에 귀의한다, 아미타불을 공경한다는 뜻이 될 테고, 불이나 보살을 따라 극락으로 왕생하기를 바라는 구원 신앙이 중심이 되는 대승불교에서 많이 쓰이지요. 주로 의례 때 염불하면서 사용하는데,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는 말은 그가 관장하는 극락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염불이지요.
힌두교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많이 쓰였으니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옴 나마흐 쉬바야흐’이지요. 쉬바에게 의지한다는 뜻인데, 쉬바의 ‘sh’ 음가 때문에 ‘나마스’가 ‘나마흐’로 어미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항상 맨 앞에 우주의 모든 소리를 담았다고 믿는 ‘옴’(om)을 먼저 말하고 이어 말합니다. 그래서 ‘옴 나마흐 쉬바야흐’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마흐’ 즉 ‘경배’ 안에 자기 자신을 아주 낮추는 의미가 이미 들어가 있으므로 전체의 뜻은, ‘쉬바 신께 경배하오니, 신께서 이 미천한 것을, 거두어 주소서’라는 의미가 되지요. 그런데 이 말은 주로 기도문의 후렴구 비슷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꼭 그런 의미를 담고 싶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별 의미 없이 의례의 일부로 삼아 그 음이 신비한 힘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는 일종의 주문이나 진언과 같이 쓰입니다. 그래서 의례 때 기도의 일부로 사용되는 만뜨라가 되는 겁니다. 굳이 비슷하다고 하면, 의미로서는 기독교 교회에서 찬송가에서 자주 사용하는 ‘찬양’(praise)’과 비슷한데, 예배 때 사용되는 용례로는 ‘할렐루야, 아멘’과 비슷한 일종의 상투어로서의 주문 비슷하다는 말씀이지요.
‘나마(스)’는 특정한 신에 대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 신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느냐를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신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보시지요. 어느 악마가 그 아들에게 자신을 그 어떤 신보다 더 우선 숭배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러자 그 아들은 그를 거부합니다. 아들은 옴 나모 나라야나야 즉 나라야나 (=비슈누) 신을 경배합니다, 라고 만뜨라를 매일 외움으로써 비슈누 신에게 자기 신앙을 고백합니다. 악마는 자기 아들의 그런 태도에 분노하며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면서 아들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거듭합니다. 그러자 비슈누 신이 반은 사자고 반은 인간의 모습을 한 나라싱하(Narasimha)라는 화신으로 나타나 그 악마를 죽이고 자기에게 끝까지 의지한 그 아들을 구해줬습니다. 이럴 때 즉,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신에게 온전히 의지하여 자기를 보호해주기를 간구하는 것이 나마(스)입니다.
쉬바 신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기서도 악마가 등장합니다. 또 다른 악마가 깊은 수행을 하면서 “옴 나마흐 쉬바야흐”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염송했습니다. 그의 독실한 신심에 쉬바는 감동하고, 그에게 나타나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자기가 뭐든 손으로 대면 다 재로 만드는 힘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쉬바는 그런 엄청난 힘을 그에게 주면서, 세상의 그 어떤 남자도 그를 해칠 수 없다고 약속합니다. 그러자 악마는 쉬바를 재로 만들어버리고 우주의 제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슈누가 악마를 해치우기 위해 즉, 세상 질서를 다시 복원하여 유지하기 위해 개입합니다. 이번에는 모히니(Mohini)라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타나 그를 유혹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손을 자기 머리에 대게 만들고, 결국 악마는 재가 되어 사라져버립니다. 쉬바가 어떤 남자도 해칠 수 없다고 한 약속은 지켜진 거지요.
우리 불교 전통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나무아미타불’을 정성스럽게 108번 염송하여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설화는 꽤 많습니다. 힌두교에서 시작된 주문의 기능을 가진 기도문이 민간 신앙과 섞이면서 변형, 전승된 설화들이지요. 주로 주인공이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하는 등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 노승이 나타나 마음을 모아 ‘나무아미타불’을 108번 염송하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그로 인해 문제가 풀렸다는 류의 이야기지요. 구조는 힌두교의 나마(스) 신화와 똑같은 겁니다. 바로 이 ‘나마(스)’의 힘을 신앙의 최중심으로 놓은 불교가 일본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経)이지요. 그들은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번 묘법연화경 일부를 독송하고, 남묘호렌게쿄를 반복 염송합니다. 우리 《삼국유사》에도 오직 ‘나무아미타불’만 염송하는 수행이 경주에 크게 유행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걸 보면 일본의 종교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도 불탑이나 아미타불상 앞에서 하루, 종일 또는 밤새도록 염불하는 사례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신들의 세계 힌두교에서 온 종교 문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