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2. 스므리띠 Smriti 傳承
‘이야기’가 얼마나 대중 교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라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이 지어낸 것이고, 그것은 ‘베다’라고 하는 신이 직접 계시한 것이라고, 믿는 가르침과 전적으로 위상 자체가 다르니, 둘 사이에서 지식의 유효성에 대한 상당한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이 문제를 고대 인도인은 어떻게 풀었을까요?
베다 편찬이 끝나면서 새로운 사회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 어떤 특정 가르침을 ‘계시’라고 더는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제 세상에 대한 지식은 여섯 가지의 부수 학문을 통해 정해진다고 규정했습니다. 여섯 가지의 부수 학문은 문법, 의례, 천문 등에 관한 것인데, 이들을 스므리띠 즉 기억으로 전승(傳承)되는 것이라 설명했지요. 신학자들은 베다가 다르마(법)의 근간이고, 그것은 이제 서사시와 같은 또 다른 학문으로 전승된다고 설명한 거지요. 서사시란 다름 아닌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란 신이 계시한 것을 기억하여 전하는 것이니, 베다 이후 시대의 학문과 법의 근간이 된다는 겁니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스므리띠도 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바뀌면 달라질 수 있는 사실을 베다를 통해 합리화를 해놓은 거지요. 그래서 아직 사회가 분화하지 않은 베다 시대에 당시같이 복잡해진 사회의 여러 면을 규정하지 못한 베다를 대신해서 새로운 사회와 문화에 관한 여러 율법이나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세세한 원칙 등을 스므리띠라는 새로운 불문법으로 규제하게 한 겁니다.
스므리띠 즉 기억으로 전해져 내려온 가르침이라는 건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 저자가 있다는 거지요. 그가 직접 보고 이해하고 분석한 것이든,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것, 떠돌아다니는 것을, 묶어 편집했든지 간에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그냥 보통의 인간이라면 별로 무게가 안 실리지요. 시쳇말로 ‘가오’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저작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리쉬(rishi)라는, 동아시아 문화에서의 신선과 같은 존재에게 그 저작의 권위를 신탁합니다. 리쉬가 신의 계시를 받아 인간에게 전승한 것이라는 논리지요. 그 좋은 예가 [마누법전]입니다. ‘마누 스므리띠’인 [마누법전]은 ‘마누’(Manu)의 이름을 가진 리쉬가 계시하거나 쓴 법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마누라는 신선이 듣고 기억하여 전한 것을 적은 거라는 겁니다. [마누법전] 외에도, 이 책에서 많이 언급한 [라마야나], [마하바라따]와 같은 서사시 그리고 그 이후에 편찬된 많은 신화 이야기들을 엮은 여러 뿌라나(Purana) 등이 이 스므리띠에 속합니다.
스므리띠는 힌두 사회의 실천적, 사회적, 윤리적인 면에서 절대로 필요한 문헌입니다. 비록 슈루띠보다는 권위가 낮지만, 일상생활과 사회 제도에 있어 실제적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힌두 사회에서 슈루띠와 스므리띠가 상충되면 어떻게 해결할까요? 즉 스므리띠의 가르침이 베다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마치, 우리가 지금 사는 지금 국회에서 만든 법이나 행정부의 지침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따져보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요.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일치 판정을 내리면, 그 법이나 행정 지침은 무효가 되듯, 스므리띠가 슈루띠에 어긋나면 스므리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결정은 고대 사회에서 브라만 신학자들이 내립니다. 예컨대, 베다에서 어떤 제사의 의식 규칙을 정했는데, 한 경우, [마누법전]에서 그것과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면, 베다의 방식이 우선이고, [마누법전]의 가르침은 폐기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슈루띠는 율법의 근원이요, 스므리띠는 그 해석이다, 라고 법전에서 규정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스므리띠가 슈루띠에 어긋난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슈루띠는 포괄적이고 스므리띠는 구체적이라 설사 어긋나게 보여도, 넓게 볼 때는 스므리띠의 규정이 슈루띠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라고 해석하면 그만이니까요.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인도의 불문법 사회는 시대적 현실을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실생활에서의 법은 어떻게 해서라도 슈루띠에 합당한 것으로 만든다는 거지요. 슈루띠는 슈루띠대로 존중하면서 스므리띠를 그에 조화롭게 맞추는 거지요.
그런데 인도가 근대 사회로 발전하면서, 불문법인 스므리띠 규범이 근대법 가치인 평등이나 인권 등에서 충돌하는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인도는 여러 종교나 지역 혹은 종족 공동체가 많고 그들의 불문법이 서로 달라, 현재까지도 통일된 민법을 갖지 못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특히 상속이나 결혼에 관한 여러 규정 가운데 여성에 관한 것이나, 불가촉천민 차별에 관한 것들은 근대법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통일 민법이 없으니, 당연히 불문법 전통을 따라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런 봉건적인 법을 지금 적용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경우 대법원은 스므리띠에 근거한 전통이 개인 권리를 침해할 경우, 헌법에 따라 평등과 인권을 중심으로 하여 판결을 분명히 내리지요. 그러나 이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전통에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항을 심하게 하니까요. 인도는 여전히 스므리띠의 영향력이 막강한 봉건적 성격의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