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3. 리쉬 Rishi 神仙


힌두 신화에 의하면, 힌두 사회 최고의 법인 베다를 신에게서 직접 들은 건 리쉬라는 어떤 초인적 현자에 의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베다를 신의 계시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원음을 듣고 기억하고 해석하여 구체적인 여러 일에 해당하는 규범으로서의 문헌으로 만들어 전하는 것도 리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모든 법은 다 리쉬(rishi)라고 하는 초월 존재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기독교의 바이블에 의하면 바이블의 내용은 성령이 말하는 것을 직접 들어 적은 것이라 하는 것과, 똑같은 정당화 방식입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진짜로 신에게서 들은 겁니까, 아니면 누군가 어떤 인간이 저작해놓고 그것을 절대 존재의 권위를 빌어 정당화를 하는 겁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모르지요.”라고밖에 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믿음과 신앙의 영역이니까요. 저는 힌두교를 믿는 힌두가 아닌 데다가, 이러한 것들을,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연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그러면, 이와 관련하여 드는 질문 하나, 그 리쉬라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요, 사람인가요, 아니면 반산반인인가요, 라는 질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 그들 힌두교의 세계관 위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리쉬는 보통 영어로는 ‘seer’라는 단어로 이해합니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감춰진 진리를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지요. ‘sage’라는 단어도 많이 사용하는데, 뭔가를 달성해, 현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라는 의미지요. 극한 수준의 수행 즉 앞서 설명한 따빠스(tapas)를 완수하여 우주적 진리를 깨달은 지혜로운 인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리쉬는 인간인데, 탁월한 수행과 금욕 혹은 도덕적 삶을 통해 신과 교감하여 신과 같은 특질을 갖게 된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초능력을 지녀 진리를 보고 들을 수 있고 그 진리를 해석해 구체적으로 실제 삶에 적용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가교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수행 후 해탈을 이루고 불사 영생하기도 한다고 여겨집니다. 반신반인 비슷한 존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은 아니지만, 거의 신과 같은 인간으로 간주하지요. 저는 처음에는 리쉬를 현자(賢者) 번역하여 사용했는데, 쓰다 보니 신격화한 특성이 부각 되지 않아, 이 책에서부터는 ‘신선’(神仙)으로 사용합니다. 우리 문화에서의 신선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의미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게 그렇게 하는 겁니다. 리쉬나 신선이나 모두 탁월한 수행자이면서 영생불사의 신적인 존재라는 면에서 비슷하지요. 다만, 리쉬는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언자 같은 존재인데, 그에 반해 신선은 사람들이 사는 속세를 떠나 산다는 게 다르지요. 힌두교 신화를 보면, 리쉬가 참 많이 등장해요. 결정적인 모티프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게임 체인저 같은 역할 하지요. 왜 그렇게 리쉬가 많이 등장할까요? 리쉬는 신과의 교감을 통해 절대 진리를 보고 신에게서 들어서 인간에게 전달하고, 나아가 인간의 기도를 신에게 전하는 영적 중개자 역할도 하는 존재라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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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신학자 누군가가 정상적인 사회를 유지하고자 사회에서 결정적으로 필요한 어떤 가르침을 남기고 싶을 때, 그 내용에 신의 목소리를 입혀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큰 효과가 있겠지요.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에서 많이 회자 되는 명언 중에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예컨대, 사람이라면, 마치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부모를 공경해야 하듯,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수행자를 공경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주 중요하겠지요. 그 메시지는 리쉬를 통해 신화 속 이야기로 전해지는데, 예컨대 앞서 소개해 드린 샤꾼딸라 이야기에서 슬픔에 젖어 리쉬 공경을 소홀히 한 샤꾼딸라에게 저주를 내리는 이야기로, 강한 교육을 하는 겁니다. 리쉬가 저주를 내림으로써, 그는 리쉬 공경이라는 다르마의 수호자로서 사회 교육을 수행하는 겁니다. 리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행을 겪어내면서 자신에게 초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하는 일도 합니다.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모든 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 일을 하는 거지요. 그뿐만 아니라, 왕이나 영웅들에게 미래를 예언해 줌으로써 그 행동을 조언하기도 합니다.


결국, 리쉬라는 존재는 불평등한 카스트 기반의 남성 중심 가부장 체제 위에서 힌두 도덕과 법을 만들고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 하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리쉬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힌두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 즉 다르마를 강하게 가르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힌두교 최고의 경전들 즉 《마하바라따》, 《라마야나》, 그리고 여러 뿌라나 등을 편찬한 사람은 모두 리쉬입니다. 심지어는 이름이 같기도 해요. 편찬 연도가 몇백 년 차이가 나도, 리쉬는 영생불사의 존재이니, 종교의 논리로라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지요. 그러나 실제 역사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누군가가 편찬했지만,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리쉬 이름에 가탁했으리라 짐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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