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3. 구루 Guru 스승
앞서 소개한 리쉬와 비슷하지만, 의미가 다른 개념으로, 인도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구루guru가 있습니다. 간단명료하게 ‘스승’입니다. 이 구루는 리쉬와 달리, 개인적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의명분 하에 만들어진 사회적 의미가 과히 크지 않아, 신화 이야기에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실제 역사에서 많이 나타나지요. 실제 사회에서 정신적 지도자로 널리 추앙받는 에가 많습니다. 중세 철학자 샹까라짜리야라든가, 시크교 창시자 구루 나낙(Guru Nanak)이라든가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The 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 이후 세계인의 영적 지도자가 된 스와미 비웨까난다(Vivekananda)라든가, 초대 대통령이자 저명한 철학자 라다끄리슈난(S.Radhakrishnan)이라든가 하는 분들이 대표적인 인도인의 스승입니다. 스승을 존경하는 문화는 동아시아 전통 사회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군사부일체라 했는데, 인도에서는 신과 같다고 했습니다. 두 문화권 모두 전통 사회의 위계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교육의 핵심을 ‘스승’이 맡는 거지요.
이러한 문화는 힌두 신화에도 잘 드러납니다. 브라만 신학자들이 신화를 통해, 스승 공경의 중요성을 잘 교육하였다는 의미지요. 세 개의 신화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태초에 데와(신)와 아수라 간의 큰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씀은 몇 번 드린 적이 있지요. 그 전쟁에서 신 쪽이 큰 혼란에 빠져 위기에 몰리자, 신의 스승이 나타나 가르칩니다. 위기에 몰리더라도 진실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가 되라는, 그러면 이긴다는 도덕적 가르침이지요. 그 가르침 앞에서 신들의 왕 인드라조차도 작은 말대꾸조차 하지 않고, 복종합니다. 그리고서는 최후에 승리를 거두지요.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스승이 맡아서 한다는 의미지요. 물론 그 가르침은 진실과 진리입니다. 물론 그 진실과 진리는 인간 불평등을 기초로 한 사회 질서에서 브라만이 주도하는 제사 의례임은 여러 번 말씀드렸으니 더 할 필요는 없을 테고요.
스승의 위치와 역할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신화가 있습니다. 잘 새겨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데와만 스승이 있는 게 아니고, 아수라에게도 스승이 있었겠지요. 그러면 그 아수라의 스승도 명철하고 진리를 꿰뚫으며 무한한 능력을 지닌 존재 아니겠습니까? 그는 심지어는 죽은 아수라를 되살릴 수 있는 능력마저 지녔으니, 그가 누군가를 가르치면, 싸움에서 지레야 질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결국, 아수라는 데와에게 졌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싸움에서 승과 패를 결정하는 것은, 스승의 능력이나 가르침의 내용이 아니고, 그것을 따르고 지키는 제자들의 실천성이라는 의미지요. 다시 말하면, 두 스승 모두 다르마를 가르쳤는데, 데와들은 그 다르마를 지키고 실천했고, 아수라들은 개인의 권력욕으로 다르마를 어겼습니다. 결국 가르침을 받는 자의 성품이나 태도가 가르침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싸움에서 교묘한 전술로 몇 번의 승리를 거두더라도, 다르마를 어기는 악행이 쌓이면 결국 패한다는 까르마의 가르침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고요.
구루의 의미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화가 있습니다. 최고의 경전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출신이 미천한 어떤 청년이 위대한 무사에게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데, 그 무사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무술은 끄샤뜨리야의 특권이고 그 법을 따르는 게 보편적 의무라는 이유에서지요. 어쩔 수 없이 그 청년은 숲으로 들어가 독학으로 궁술의 달인이 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 스승은 그 청년의 실력이 마하바라따 전쟁의 주인공이자 자기 직계 제자, 아르주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후 그를 만나 자신을 스승으로 여겼으니, 스승에게 제물로 오른손 엄지를 바칠 수 있는가, 라고 묻습니다. 제자가 되고 싶은 그 청년은 그 청년은 두말하지 않고 그 요청을 받아들여 오른손 엄지를 잘라 바치지요. 그리고 뛰어난 전사로 활약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속임을 받아들여 위대한 전사가 되었는데, 그 스승은 제자를 속인 – 미천한 출신을 차별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행위를 저지르지요. 다르마에 따르면, 제자가 스승보다 더 훌륭하지요. 결국, 그 스승은 전쟁 중 적의 속임수에 당해 아들을 잃고, 본인마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제자의 태도 못잖게 스승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르마를 실천하는 태도라는 겁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은 인도와 한국 모두 전통적으로 매우 중시해온 가치이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이유로 그 전통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반해 인도에서는 일부 서구화된 청년층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상당합니다. ‘스승’이 존중받는 사회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견을 저는 갖습니다. 스승 말씀에 절대적 복종은 봉건적입니다. 스승이란 스승다울 때 스승인 겁니다. 그런데, 자기 자녀의 이익을 위해 스승의 권위를 짓밟고 스승을 개 패듯 패고, 고발하고 하는 등의 만행으로 스승들이 교단을 떠나거나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벌어지는 사회는 죽은 사회로 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