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1. 까타 Katha 이야기


이 책 전체 아홉 챕터 가운데 지금까지 여덟 챕터를 통해 힌두교와 불교의 세계관을 설명했습니다. 아주 쉽게 한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는 불교를 통해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을 만나게 되었지만, 주류 세계관이 워낙 관념적인데다가 시간이 가면서 그와 다른 여러 이질적인 것들이 섞이니 그 결과가 너무나 복잡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서 생소하고 어렵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은 인도의 고대와 중세에도 비슷하였습니다. 갠지스강 유역에서 체계화된 힌두교 세계관이 인도아대륙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글도 모르고 관념 같은 건 전혀 접해보지 않은 ‘백성’에게 이 어려운 세계관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웠지요. 그러나 사회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그들을 다스려야 하는 지배자는 어떻게든 이 불평등적 세계관에 기초한 도덕 윤리관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 길을 ‘이야기’에서 찾았습니다. 하나, 하나 세계관의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우니, 예화를 만들어 민간에 널리 보급했다는 겁니다.


백성이 그 개념을 따르고 실천하는 게 목적이지, 담론 차원에서 그 세계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또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으면서 무지랭이 백성은 브라만과 불교 승려들이 단순화하여 만든 세계관 안으로 용해되었지요. 아주 쉽게 말하자면, 조선 시대, 백성 교화에 가장 효과적인 건 효를 내건 심청전, 형제간 우애를 내건 흥부전, 여성의 절개를 내건 춘향전 같은 이야기라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거지요. 이야기가 각 지역에 따라 그 버전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히 변하겠지만, 그 주제는 변하지 않다는 겁니다. [라마야나]를 통해 이상적인 아들, 왕, 남편, 아내의 상이 그려졌고, [마하바라따]를 통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의무와 덕목을 가르친 겁니다.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한 겁니다.


이야기는 주제를 감정 이입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는 겁니다. 단순화한 이야기에서 백성은 감동을 크게 받고, 그 감동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파급 효과가 커지지요. 그래서 고대 인도에서는 전문적 이야기꾼이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을 모아 마을 사람들을 모인 곳에서 이야기를 푸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때, 화자 즉 이야기꾼이 목격한 사실(fact)을 전해주면, 청자 즉 마을 사람들이 그 사실에 자기들의 해석과 상상을, 더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에 살이 붙고, 그러면서 그 영향력이 더 커졌지요.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백성 교화의 목적이 중요하니, 그 목적만 충족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팩트는 바꾸거나 왜곡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겁니다. 좋은 예를 하나 들어드릴게요.


샤꾼딸라(Shakuntala) 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18세기 유럽으로 소개되어 괴테가 극찬한 문학 작품이지요. 원래는 고대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따]에 나오는 이야기엿지요. 어떤 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숲에서 사슴을 쫓다가 샤꾼딸라라는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고 사랑을 나누고 아들을 낳고 살다가, 궁으로 돌아가게 되자, 곧 예를 갖춰 모셔오겠노라고 굳게 약속했는데, 시간이 지나 그 약속을 어겼고, 그러자, 샤꾼딸라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궁으로 찾아가 크게 왕을 꾸짖어 왕비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왕이면 왕다운 행동거지를 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은 어엿한 왕비이니 왕비다운 대접을 응당히 받아야한다는 힌두 사회의 다르마(dharma) 즉 도리를 강조하는 신화지요. 그런데 이 무미건조한 사실 위주의 이야기가 5세기경 시인이자 극작가인 깔리다사(Kalidasa)에 의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변합니다. 왕이 숲을 떠날 때 징표로 반지 하나를 주고 떠나는데, 그 후 사랑에 눈이 먼 샤꾼딸라가 자기 집으로 찾아온 한 신선을 예로써 대접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데, 제대로 대접을 맏지 못한 신선이 샤꾼딸라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그 왕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 왕이 가졌던 어떤 물건을 그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그는 모든 걸 잊어버릴 거라고 하는 저주예요. 어느날 샤꾼딸라는 반지를 가지고, 궁궐을 향해 떠나는데, 가다가 그만, 강에서 그 반지를 물에 빠뜨려버립니다. 궁궐에 가니 왕은 전혀 샤꾼딸라를 기억하지 못하지요. 그러던 중에, 어느 어부가 밥을 먹다가 생선을 먹게 되고, 그 생선에서 왕의 반지가 나오자 그 반지를 왕에게 갖다 줬고, 그제야 기억을 되찾은 왕이 샤꾼달라와 자기 아들을 다시 데려왔다는 이야기로 바뀝니다. 이 이야기로 애초 신화에 나오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로 바뀌지요, 사랑이라는 당의정을 입혀 중세 인도 사회에서의 여성이 남성이 준 사랑만을 먹고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 이야기는 강력한 브라만과 카스트 그리고 가부장 중심의 사회 구조 유지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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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이야기는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 철학, 문화, 사회 규범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교육 도구입니다. 그것은 이야기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회를 움직이고 싶으면, 그가 히틀러든 간디든, 누구든 간에 뭔가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계발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스토리텔링이 무엇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 속에서 사실과 진실을 찾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별 의미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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