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9. 다마 Dhama 성지


힌두교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삼계이고, 그 가운데 중심은 지상계인데, 그곳은 신들이 천상계에서 내려와 인간들이 하는 행위를 통제하거나 구해주면서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곳이라,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신의 뜻을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이 땅은 신들이 활동하는 곳이고 그들이 사는 거처가 있는 곳이고, 그렇게 되면 그 거처는 모두 성지(聖地)가 될 것입니다. 이 신의 거처를 힌디어는 ‘담’(dham), 산스끄리뜨어로는 ‘다마’(dhama)라고 읽습니다. 인도를 좀 아시는 분은 아마 들어보셨을 짜르 담(Char Dham)이라 하는 그 ‘담’입니다. ‘다마’는 원래 거처라는 뜻입니다.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주하는 거처 말입니다. 힌두교에서 신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게 좋은 데로 윤회하는 길이라 했으니, 거기에서 신을 알현(다르샨)하고자 그곳으로 가는 순례의 행렬은 끊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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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는 경전에 묘사된 수많은 신들의 거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앞서 말한 우주 안에 있고, 일부는 지금 인도인들이 사는 땅 안에 있지요. 전자는 당연히 성지로 바뀔 수 없고, 후자는 모두 성지가 되지요. 비슈누는 바이꾼타(Vaikuntha)라는 곳이 그 거처인데, 이는 지상에 있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고, 물질계를 넘은 ‘해탈의 세계’로 이해됩니다. 또 어떤 신화에서는 우주가 창조되기 전, 태초의 바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뱀 위에 누워 창조를 위한 우주적 숙고에 들어가는 곳이지요. 비슈누의 아와따라는 모두 지상에 거처를 두고 있습니다. 라마로 나타날 때는 아요디야, 끄리슈나로 나타날 때는 브린다완(Brindavan), 드와르까(Dvarka)가 거처입니다. 쉬바 또한 거처가 있지요. 신화에 의하면 까일라사(Kailasa)인데, 히말라야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쉬바가 명상 수행하는 신이면서 숲과 동물을 관장하는 우주 제왕이기 때문에,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인도 최고의 산인 히말라야가 그 거처가 된 것이지요.


그 신화 속 특정 이름의 장소가 현재 그들이 주장하는 같은 이름의 그곳인지는 학문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티베트의 까일라스 산이 쉬바의 거주지 까일라사 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지금의 아요디야나 드와르까가 신화 속 아요디야, 드와르까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 신앙의 문제지요. 그 좋은 예가 지금은 힌두교 최고 성지 개념으로 자리 잡은 짜르 담(Char Dham)입니다. 짜르 담은 인도아대륙의 동서남북 각 끝에 비슈누 (혹은 쉬바 포함)와 관련된 곳 네 군데를 성지로 삼은 곳입니다. 동쪽의 뿌리(Puri), 서쪽의 드와르까(Dvarka), 남쪽의 라메슈와람(Rameshvaram), 북쪽의 바드리나트(Badrinath)가 바로 그 넷입니다. 이 네 곳은 오래전부터 힌두교 경전에 의해 비슈누와 관련한 신화 속 장소였는데, 8세기경 힌두 승려이자 신학자인 아디 샹까라(Adi Shankara)가 나서서 곳곳에 사원을 세웠다고 전해지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지는 후대의 주변부 이야기들을 흡수하여, 그 신화의 분량이 갈수록 커졌지요. 그러니 일부는 아주 고대 때 이야기도 있고, 일부는 아주 최근의 이야기도 있는데, 종교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면 그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성지로 비슈누 관련한 ‘다마’만 있는 건 아닙니다. 쉬바 관련 신화에서 나온 곳도 당연히 성지가 되지요. 쉬바 신화에 따르면, 한때 브라흐마와 비슈누가 누가 더 우월한지 한창 논쟁을 벌였는데, 논쟁이 끝이 나지 않자 쉬바가 세 로까를 관통하는 거대한 빛의 기둥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브라흐마와 비슈누 둘 다 그 빛으로 된 거대한 링가 기둥의 양쪽 끝을 찾는 시합을 벌이기로 했는데, 브라흐마는 찾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비슈누는 못 찾았다고 진실을 말했답니다. 이후 쉬바가 브라흐마는 사람들로부터 잊힐 것이라고 예언했답니다. 그 빛 혹은 불로 된 기둥이 나타난 곳이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데 모두 성지가 되었지요. 원래 64개였고 그 가운데 열두 곳이 특히 길한 성지로 숭배됩니다. 쉬바를 믿는 신자들은 매일 아침 뿌자 때 64곳의 성지 이름을 운율을 넣어 암송하지요. 성지 그 자체가 성스러운 힘을 가지기 때문에, 그 이름만 암송하는 자는 지난 일곱 생애에 지은 모든 죄를 씻어내고, 이들을 참배하는 자는 소원이 이루어지며, 나아가 쉬바 신이 그 예배에 만족하면 그 사람의 모든 업이 소멸한다고까지 할 정도지요. 비슈누와 신화뿐만 아니라 그 외의 많은 신들과 관련 성지가 전 국토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지역의 아주 작은 신에 관한 것도 부지기수지요. 전국이 더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짜르 담 가운데 북쪽에 있는 히말라야의 바드리나트는 엄청나게 높은 높이에 사원이 있습니다. 2019년에 그곳을 답사했습니다. 네팔 노동자 넷이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가마로 날라다 주는 풍경을 자주 봤습니다. 처음에는 인권의 문제로 보여 짜증이 났지만, 그들과 이야기해보니, 생각이 좀 바뀝디다. 그 종교 신앙이 옳든 그르든, 늙은 어머니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힌두교 최고 성지에서 비슈누를 알현하는 것이라, 그를 위해 평생 모은 돈으로 온 것이라면, 더군다나 그 가난한 네팔 노동자들도 그 일을 통해 밥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라면, 거기에서 인권 운운하는 나의 태도는 과연 정당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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