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8. 로까 Loka 三界


이전 글에서 지옥에 관해 말씀드렸지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업을 염라대왕이 평가해 선업이 많은 사람은 천상으로, 악업이 더 많은 사람은 지옥으로 보낸다 했습니다. 천상 세계는 스와르가svarga loka 그리고 지하 세계는 빠딸라 로까(patala loka)라 하고 가운데 놓인 지상 세계는 부로까(bhuloka)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셋을 모두 묶어 로까(loka)라고 부르니, 모두 연계되어 있습니다. 스와르가에는 인드라(Indra), 아그니(Agni), 수리야(Surya) 등 여러 신, 압사라(Apsara), 간다르와(Gandharva)와 같은 신과 인간의 중간 존재나 영웅들, 공덕을 많이 쌓은 축복받은 조상, 몇몇 위대한 리쉬가 삽니다. 천상은 선한 업보가 다 소진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한시적인 곳입니다. 부로까, 지상계는 인간과 짐승들이 사는 곳이고, 대부분의 리쉬와 방황하는 혼령 그리고 이슈와라 신의 여러 아와따라들이 강림하여 활동하는 곳입니다. 대홍수 신화에서, 비슈누의 화신이 물고기(Matsya)로 나타나 경고한 덕분에, 인류의 조상 마누(Manu)가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홍수 이후 마누는 부로까를 다시 정착시키고 인류 문명을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는 부로까가 창조와 파괴 그리고 다시 창조를 반복하는 세계임을 보여줍니다. 지하 세계는 악업을 많이 쌓은 존재들이 사는 곳인데, 야마와 그 부하인 저승사자들이 그곳에 체류하여 형벌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부로까는 천상과 지옥 사이의 중간 세계인데, 전체 로까의 중심이지요. 신들이 인간 세계에 내려오기도 하고, 아수라들이 인간 세계를 침범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신화의 주요 사건 대부분이 부로까에서 일어나지요. 비슈누의 화신 라마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악마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인데, 그 과정에서 지하 세계까지 내려가 악마의 아들과 싸우기도 하지요. 이 장면은 지상에서 시작해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라마에게 돌아오는 모험 구조입니다. [마하바라따]에서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아르주나는 쉬바와 인드라의 가호를 받기 위해 천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요. 거기서 신들의 무기를 지원받고 지상으로 내려와 전쟁을 치러 이기지요. 이 이야기는 인간이 천상으로 올라간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대표적 신화예요. 지하로 내려가 다시 올라오는 이야기도 있어요. 끄리슈나와 그 형 발라라마(Balarama)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 나가 왕들을 제압하고 보물을 되찾아옵니다. 끄리슈나의 삶은 대부분 부로까에서 펼쳐지지만, 천상에서 내려오고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도 함께 있어 삼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지요.


인간은 그가 행한 행위에 따라 지상에서 천상 혹은 지하로 끝없이 윤회합니다. 그 기준은 지상의 법인 다르마를 얼마나 잘 지켰는지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특정 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수행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도 그 판결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마르깐데야(Markandeya)는 태어날 때부터 16세에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쉬바 신의 열렬한 신자였습니다. 16세가 되자, 염라대왕의 저승사자가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는데, 마르깐데야는 시바 링가를 껴안고 쉬바의 가호를 빌었고, 그러자 쉬바가 나타나 야마를 물리치고 마르칸데야에게 불멸을 주었다고 전합니다. 지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명상과 수행을 통해 지혜를 얻어 신과 교감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영적 수준에 도달하면 지상에 살지만, 신들조차도 그들을 찾아 와 조언받을 정도의 존재입니다.


힌두교 신학자들은 인간이 다르마를 실천하고, 까르마를 쌓는 곳은 부로까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해놓았습니다. 천상에서는 쾌락을 누리지만 새로운 까르마를 만들 수 없고, 지하는 고통의 결과일 뿐 특정한 까르마를 선택할 수 없지요. 부로까는 끄리슈나, 라마 같은 신의 아와따라가 태어나 중생을 구원하는 유일한 곳이지요. 즉 신이 인간과 직접 관계 맺는 세계라는 말인데, 인간이 신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의무로 설정하여 그것을 윤회의 중요 기준으로 삼는 거지요. 따라서 인간은 세 로까를 윤회하면서 살지만, 그 가운데 부로까 즉 지상 세계가 윤회의 중심점이 되는 겁니다. 즉, 지상 세계는 윤회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거지요.

9-8. 로까.jpg

부로까는 고통과 변화를 겪는 세계인데, 거기에서 받는 사람들이 고통과 불평등을 업(karma)의 결과로 받아들이게 우주론을 만든 거지요. 따라서 카스트 차이나 그로 인한 사회적 차별 혹은 빈부와 권력의 차이는 이 우주론으로 완벽하게 정당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주입해 놓은 거지요. 철저히 사회의 변화 혹은 개혁을 막는 지독한 종교 이데올로기입니다. 거기다가, 비슈누 신이 여러 아와따라로 이곳 부로까에 강림한다는 이야기는 정치 권위를 신성화했습니다. 그를 통해 라마는 이상군주가 되고, 끄리슈나는 왕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대의 왕들은 자신을 신 특히 비슈누의 대리인으로 정치를 했고, 그 대가로 브라만 신학자와 제사장을 물질적으로 열렬히 지원했지요. 그러니 힌두교 사원의 규모는 엄청나게 컸고, 그 재정의 원천이 되는 토지 하사가 왕들에 의해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행되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