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연재 끝, 마지막 회
IX. 이야기로 만민을 교화하라. 11. 비자야 Vijaya 승리
힌두교 경전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서사시 [마하바라따]와 [라마야나]일 겁니다. 서사시라 부르지만, 서사 즉 이야기지요. 그 두 이야기는 주제가 같아요. 악과 싸워 이겨, 사회 질서 다르마를 회복하는 겁니다. 신화에서 그 질서 회복을 맡은 이 즉 악과 싸워 이기는 이는 비슈누 신이고, 그가 질서 회복의 사명 완수를 위해 내세운 이는 다르마 위에서 통치하여 사회 질서를 세우는 왕입니다. 왕은 누구든 왕권을 넘보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이 질서를 흔드는 자로 간주하겠지요. 그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브라만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왕실 차원에서 사원을 물질적으로 크게 후원하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왕과 브라만은 연합 권력이 되는 거고, 사회는 그들이 세운 법과 도덕 안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성격이 팽배해지는 거지요.
왕이 이 다르마 사회 질서 유지라는 목표를 세우기 위해 행한 여러 행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싸움이지요.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나, 영토를 보존하는 것이나,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통제하거나 왕권을 넘보는 세력을 처단하는 게 모두 왕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 중의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모두, 왕이 치르는 모든 싸움은 다 다르마를 세우고 사회 질서를 굳건히 세우는 일로 치환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쓰는 여러 가지 전략, 예컨대, 동맹의 안정적 확보와 유지, 여러 가지 전술로 사용하는 외교술 등 모든 관계는 모두 다르마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치환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아군을 배신하고 적과 손잡아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거나, 상대를 거짓으로 속여 자국에 유리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거나, 비도덕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것조차도, 모두 다르마를 지키려는 전술로 치환할 수 있겠지요.
결국, 인도에서도 최종 목표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겁니다. 바로 그 목표, 승리를 산스끄리뜨로 비자야(vijaya)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비자야’는 전쟁 같은 물리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아직도 현재 인도 사회에서 큰 사회 문제로 갈등을 빚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인권 유린을 생각해 봅시다. 힌두 극우 봉건주의자는 불가촉천민은 옛 경전에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으니, 그들을 핍박하는 게 바로 다르마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것이고 그 싸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살인을 행사하더라도, 싸워 이기는 게 우리가 달성해야 할 비자야다, 라고 말하겠지요. 무슬림에 대한 핍박과 학살 또한 마찬가지지요. 무슬림은 힌두의 적이니, 그 적을 물리치는 것, 그것이 악을 물리치는 것이고, 그들을 깡그리 죽이는 것이, 곧 비자야다, 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면 이들 반대편에 선 진보적인 사람들은 역으로 불가촉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을 우리와 함께 사는 시민으로 인정하는 게 곧 다르마 정신이고, 그래서 저 극우 파시스트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곧 비자야다, 라고 말하겠지요. 무슬림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어느덧, 보수와 진보는 이 ‘비자야’ 안에서 오월동주의 꿈을 꾸게 됐습니다. 깊게 들어가면 서로 다른 꿈을 꾸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각자의 꿈을 꾸는 거지요. 그런 건 축제에서 많이 목격됩니다. 힌두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이 악을 물리치는 사건 즉 ‘비자야’가 이루어지는 사건을 축하하는 축제를 많이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라마야나]에서 라마 신이 악마 라와나를 물리친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 다셰흐라(Dashehra)가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벵갈 지역에서 많이 치르는 축제, 두르가 뿌자(Durga Puja) 또한 그 좋은 예입니다. 이 축제는 여신 두르가가 악마를 무찔러 승리한 걸 기념하는 축제지요. 둘 다 모두 비자야 즉 ‘승리의 (열흘) 날’이라 불리지요. 이 힌두 축제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목표를 기원할 겁니다. 불가촉천민 인권 운동가들은 그들의 신이 보수 봉건 세력을 물리쳐 줄 것을 기원할 것이고 보수 봉건주의자들은 불가촉천민을 억누르고 카스트 질서를 회복하는 꿈을 간절히 소망하겠지요. 뿐만 아닙니다.
힌두 철학에서 ‘비자야’는 단순한 물리적 승리뿐만 아니라, 정신적·영적 승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욕망, 분노, 자만심 같은 내면의 적을 이기는 것, 또한 비자야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 인도인들에게 ‘비자야’는 삶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는 희망과 용기의 상징으로 작용하기까지 합니다. 이 비자야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현대 사회에 맞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연대와 도덕적 리더십이 좇는 것으로까지 승화시키기도 하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마하뜨마 간디입니다. 간디는 영국 제국주의를 비폭력의 수단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면서 승리하려고 했고, 그 승리를 단순한 정치적 독립이 아닌 영적 내면적 승리로 연결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간디의 투쟁 전술은 현대 인도 시민운동의 좋은 모델로 자리 잡았고 이후 많은 시민운동이 전통적인 힌두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폭넓은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서구에서 어떤 담론을 끌어들여 운동의 기초로 삼는 것보다 자기 전통 안에 있는 세계관을 새로운 시대 정신에 맞게 해석하여 운동의 기초로 삼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그 방편이 옳은지, 그른지, 그건 따질 수 없다고 봅니다. 그들은 그렇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