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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수 Apr 18. 2019

사진으로 긷는 인문 25

새해가 밝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껏 치장하고 구경나왔다. 젊은 새댁들은 특히 몸가짐을 아주 조심조심한다. 그래도 한창 설레이는 마음은 감추지 못한다. 구경을 하러 들어가기 전에 인원 점검 차원인지 바닥에 앉아 뭔가를 기다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있고,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있다. 그러던 중, 총을 든 경호원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 앞에 선다. 총을 들었지만, 그들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장면이다. 순간 한 커트 누른다. 누가 봐도 총과는 관련이 없는 그 장면이 내 카메라에는 총을 든 남성 군인이 여성을 억압하는 장면으로 찍힌다. 세계를 내 뜻대로 전유해버린 것이다.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같이, 역사적 의미를 탈각시켜버리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현대 사진은 사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해프닝을 연출하곤 한다. 연출까지는 아니지만, 장면을 의도적으로 어떤 해프닝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 근대성으로부터 벗어난 감각의 추구다. 실재의 재현이 아니고 의미의 전유로서 문학의 성격이 짙어지는 사진이 된다. 이 경우 사진이란 있는 실재를 넘어 창작해내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장면은 실재를 보는 사람은 전혀 예상할 수는 없고, 오로지 사진가의 뜻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창작 행위는 대상을 접하면서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그 장면을 순간적으로 기획한 결과다. 사진이 우연의 소산이긴 한데, 이런 방식을 통해 생산된 사진은 필연의 의미 부여가 된 사진이다. 사실 사진은 기계가 만들어낸 이미지라서 사진가가 창작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진가와 대상과의 관계는 매우 일률적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진은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하는 신화에 사람들은 빠져 있다.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모두 사실 그대로라고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 이 신화를 말하고 싶어 나는 셔터를 눌렀다. 당신이 보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는 특이한 것, 생뚱맞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맥락의 소산이고, 그 맥락을 이해하면 그 속에서 다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진가들은 유독 생뚱 맞는 대상을 좋아한다. 탈역사적인 장면이나 순간과 우연을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눈에 거슬리는 것들, 낡아 버려진 것들,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버려 다 변해버린 것들, 다수로부터 외면당한 소수, 저항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쏟는다. 그런 장면을 찾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장면을 프레임을 뒤틀어버리거나 시간과 빛을 이용해 기이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나 그들이 사는 풍경을 찍기를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풍조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이다. 세계를 기록하는 것이란 심한 단순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찾는 대상은 항상 기이함 속에서 나온다.      


왜 그럴까? 문제는 우리가 하나로 단일하게 재현할 수 없는 이질적인 복잡계의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회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이미지가 무한 복제되고, 생성되는 곳이다. 존재는 사라지고 생성만 있는 그 현대 사회의 성격이 저런 태도의 뿌리다. 그 사회는 맥락과 해석을 공유하지 못하면 소통이 단절되어 버린 곳이다. 겉과 속이 다른, 절대 고독과 상대 소외에 둘러싸여 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터져 나오는 뉴스들을 접하면 기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상식이라는 낡은 테두리는 전혀 우리 삶을 좌우하지 못한다. 근대주의의 소산인 전형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정주로부터 벗어나 어디론가 탈주해버리고 싶은 꿈을 꾼다. 그 어딘가는 심지어 죽음도 된다. 전형으로부터 벗어날 때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를 부인 당하는 투명 인간이 되어 버린다. 사진은 이제 사진은 사실 그대로를 복제한 것이라는, 그래서 역사를 가장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매체라는 전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매체가 된다. 그런 사회를 말하고 싶다. 그들의 추세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런 사회 속에 내가 서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는 존재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되어 가는 것들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어떤 것에도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형상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며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금강경》

인도, 웃따르 쁘라데시, 아그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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