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가 Jan 04. 2025

언론 - 탄생

https://gangga.co.kr/2025/01/04/journal-birth-gangga/


    개인 역사에 있어 언론의 설립은 중대한 기로다. 모든 것의 기초는 생각이다. 하나의 언론사. 의미있는 모든 탄생엔 풍성한 역사와 담론이 배경한다.




    단상 1. 속보의 속사


   현재 언론의 제1과제는 실시간으로 급한 소식을 국민에게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보는 속사한다.(속히 쓰인 생각은 속히 죽는다.) 현재 언론의 한계는 무엇일까. 정치적 편향이 분명한데 반해 언론 기사들 전체가 가지는 의미의 지속성과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 매일이 전투적이고, 매일이 급하다. 쓰인 기사들은 의미를 상실한 체 다음날 폐기된다. 오늘 언론은 오늘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용직 막노동꾼으로 전락하는 듯 보인다. 일용직 막노동꾼으로서의 언론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새롭게 필요한 언론은 하나의 궤를 형성하며 중요한 몇 가지의 담론을 충분히 넓고 깊게 지속적으로 다루는 언론이다. 한 해에 일어난 국가의 일들 중 중요한 것들을 붙들고 의미에 도달할 때까지 시야를 놓쳐선 안된다.


    내일 폐기될 것이지만 소식을 전하는 속보의 역할과 국가적 담론을 지속시키는 역할 사이에 언론은 서야 한다.




    단상 2. 역사학과 한국현대사


    한국에 설립될 언론사는 한국현대사를 피할 수 없고 피해선 안 된다. 설령 예술, 문학, 국제정치를 주로 다룬다 하여도 그러하다. 한국의 언론사로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시각과 정리는 필요가 아닌 필수다.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역사와 정치의 본질과 거시와 가능한 모든 자료를 논의한다. 그곳이 언론의 시작점이다. 풍성한 담론들의 충돌 속에 정신의 궤를 형성하고 균형을 맞춘다.


    언론이 가진 역사에 대한 시각은 중요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에게 빚진다. 두 학문 - 역사학, 정치학에 평생을 바친 중요한 인물들 중 한국에서 배출된 3명의 서로 다른 시각의 충돌 가운데 고뇌할 필요가 있다. 3명이라는 숫자는 상징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출판물과 논문 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고, 대부분 국회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단상 3. 한국현대사


    이미 역사학자들에 의해 시도된 한국현대사들을 읽어 볼 필요가 있으되, 가능하면 2020년까지, 문재인 혹은 윤석열까지 다룬 책이 필요하다.




    단상 4. 한국현대사의 변곡점


    조선과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를 한국현대사의 시기로 잡을 필요가 있다. 오늘 필요한 언론은 과거를 기억함과 동시에 오늘과 내일을 위해 더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먼 바다로 나가면 부둣가 음성이 들리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직관으로 보이는 변곡점은 4곳이다.

    

    1 박정희의 죽음 - 이승만부터 박정희까지

    2 독재의 죽음과 민주의 태동 - 이승만부터 김영삼까지

    3 민주의 성장 - 김대중부터 윤석열까지

    4 그 다음


    한국이라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볼 때에 건강한 모습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꾸준히 발전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주관적 질적 가치 판단이 필요한 정치와 사회 외에 경제와 문화는 수치로서 어느정도 증명이 가능하다. 극심한 성장통들은 어느 국가에서나 현존한다. 다만 독재로의 회귀, 전쟁의 발발은 다른 차원의 심각한 이야기다.




    단상 5. 언론의 무게


    거시적 관점을 시사하기 위해 존재할 언론은 경거망동해선 안되며 할 필요도 없다. 이미 고도로 발달된 국가를 앞에 두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일순간 흔들릴 것처럼 말하는 지성인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침략, 전쟁, 혁명, 쿠데타, 테러, 사고가 인류에게 낯선 것이 아닌만큼, 이성은 현재 상황들을 거시와 미시를 오가며 침착하게 바라보아야 하며, 필요에 따라 열정을 가지고 빠른 참여를 독려해야 하며, 동시에 큰 역사적 흐름 가운데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과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지성과 무게를 상실한 언론의 기사들은 소모되며 폐기되며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게 10년을 쌓아간들 거기에 남겨진 의미는 초라함 뿐일 수 있다.


    10년 후에 읽어도, 후대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기사는 드물다.




    단상 6. 예술과 역사


    예술가는 예술의 한계를 인식한다. 예술이 정치와 경제보다 인류에게 더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의 몸은 빵이 없으면 죽지만 예술이 없다고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은 어떠한가. 인간의 진정한 삶은 어떠한가.


    역사는 예술보다 큰 개념인가.

    예술의 존재의의는 과거와 현재에 어떠하며, 미래에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 것인가.

    예술로서의 문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언론은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언론의 담론 지속성이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언론은 사상의 흐름으로서 역사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단상 7. 철학과 역사학


    생각의 씨앗이 거대한 생명으로 자란다면,

    그 씨앗의 단초는 철학과 역사학에 있다.


    언론사의 탄생을 고민하며,

    나는 그 씨앗이 될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평생을 그 고뇌에 바쳤던 인물들을 찾는다.




    생각의 수준이 결정되면,

    그에 걸맞는 사람들이 모인다.


    들을 가치가 있는 생각이 탄생하면,

    사람들은 모여와 듣는다.


    그러나 많은 이가 모였다해서,

    들을 가치있는 생각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탄생할 필요가 있는 언론이 있거나,

    아니면 탄생할 필요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