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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Nov 05. 2020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작게 실패하고 크게 배우자

요즘 심심치  않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글을 보게 된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반면 실패를 두려워말고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이자는 글을 보았다. 이 말에도 백 번 천 번 공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글에서는 주로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장애물인 것처럼 표현한다. 그렇기에 그 인식만 이겨낼 수 있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실패도 좋은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요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실제로 실패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두려워하는 것에 가깝다. 당장 취업에 실패하면 생활고에 시달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연봉이 깎인다. 그러니 실패가 곧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현실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란 어렵다. 그럼 우리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미 실패한 후라면 이것이 과정이라 여기고 다시 도전해야 되겠지만 만약 시도하기 전이라면? 여기서 과거 나의 실패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런 패기로 여러 가지를 도전했고 당연하게 실패도 있었다. 20대 중반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누군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직업은 변호사라고 생각했다. 즉시 한국사이버대학교 법학과에 등록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공부를 했다. 그 당시 경험했던 아르바이트 중에는 법무사 사무실 업무보조도 있었다. 변호사가 될 테니 미리 법에 관련된 일을 해보자고 도전한 그 일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장기 채무자들에게 내용증명을 작성하여 보내는 일이었는데 처음 접해보는 단어들과 은행과의 협업은 법에 무지한 나에게는 너무나 큰 벽이었다. 게다가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해 집에서까지 서류를 들고 끙끙거리며 공부를 해보았지만 서류를 파악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이후 법 공부도 그만두게 됐는데, 한동안 아무 의욕 없이 집에만 처박혀 시간을 보냈다.


가장 큰 실패의 경험은 20대 후반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부터 꾸준히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꿈을 물어보면 언제나 만화가로 빈칸을 채웠다. 그러던 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게임 그래픽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만화를 그리고 싶은 사람이 왜 게임 그래픽 학원을 다니는지 의아하지만 그때는 그림을 잘 그려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실제로 학원에서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집에서 과제를 할 때마다 부족한 창의력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항상 모작에 익숙했던 난 무언가를 상상해서 그리는 능력은 한참 모자랐다. 학원 자체는 필사적으로 다녔지만 3개월의 수업이 끝난 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를 뽑아낼 실력도 없을뿐더러, 노력할 생각도 없다는 걸.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였지만 가장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때까지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 진짜 제대로 했을 때, 진정으로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한동안 방황했다. 이전에 했던 일이 쇼핑몰 관련 일이었기에 비슷한 업계의 회사에서 일하며 세월이 흘러가기만을 바랬다.


최근의 실패는 30대 중반에 겪었다. 그때도 아직 세상에 대해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나는 대세인 앱 제작을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학원에 문의하니 앱을 만들려면 일단 C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당장 C언어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첫 수업까지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수업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수업은 어려워졌다. 수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수업을 절대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암기도 아니고 문장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논리 구조를 익히고 응용해야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평생 마스터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만 맛보고 중도포기를 하게 되었다. 


이런 실패들로 스스로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난 특별하지 않다. 나에겐 한계가 있다. 그것을 깨달은 것 자체로 분명 의미 있는 일이고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변호사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에는 도전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면 최저시급에 가까운 박봉을 받으며 일하게 된다. 도전을 하고 싶어도 한번 삐끗해버리면 빚더미에 앉게 되니 사업도 쉽게 시작할 수 없다. 


그러니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되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실패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일이 하고 싶다면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작게 도전을 해보라. 무작정 하던 일을 관두고 뭔가를 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사회보장이 탄탄해서 일을 하지 않아도 기본소득으로 최저생계가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무직인 상태로 도전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간이 모자라 직장을 관둬야 한다면 최대한 돈을 모은 후 도전이 잘 안 됐을 때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퇴사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감당할 만큼만 실패하자. 작게 실패하고 크게 배우자.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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