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강하 Sep 09. 2020

30대가 20대보다 좋은 이유

나를 알고부터 혼란과 외로움이 사라졌다

친구 윤과 함께 살던 20대 중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란히 누워 우리는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는


“왜 사는 걸까. 어차피 죽을 건데. 인생이 너무 허무해.” 


이 질문은 20대 시절의 화두였다. 인생의 목표,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간절히 알고 싶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다. “당신은 왜 살고 있어요? 삶의 목적이 뭐예요?” 지금 생각하면 무례하고 어이없는 질문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이런 걸 잘도 묻고 다녔다. 이 질문의 답으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대에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떠올라서 뇌를 빼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울과 외로움은 항상 따라다녔고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에 쌓이는 것이 괴로워서 인간으로 태어난 건 형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날 태어나게 한 부모가 싫었다. 신이 있다면 찾아가서 죽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평생의 고민이었던 '왜 살아야 하지?'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20대 내내 나를 괴롭혔던 외로움도 사라졌다. 인생이 너무나 평온해진 것이다. 난 언제부터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


최근 윤이 시장 조사를 위해 오늘의 집에서 배포하는 심리테스트를 공유하면서 우리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테스트 명은 ‘나는 전생에 어떤 집에 살았을까?’. 우리는 심리테스트 결과지의 위트 있는 문장에 감탄했다. 마케팅을 하려면 이 정도 문장은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며 극찬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런 심리테스트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심리테스트며 사주카페, 타로 등등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준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는데 말이지. 


심리 테스트를 하게 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30대 후반이 된 우리는 더 이상 누가 날 설명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20대에는 어떤 심리테스트의 결과든 전부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정반대의 요소들이 결과로 나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집 결과지에서는 '이 부분은 맞고, 이 부분은 정말 안 맞네.' 하고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결국 20대까지 힘들었던 건 자신에 대해 잘 몰라서였구나. 그래서 모든 게 혼란스럽게 느껴졌구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었구나. 결국 나를 이해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나의 성향을 경험으로 알아가야 하는구나.


아직 나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모르던 20대 중후반에는 멘토를 찾아다녔다. 삶에는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정답을 줄 스승을 열심히도 찾았다. 지금에야 부끄럽지만 그 당시에는 책 한 권, 강의 하나가 모두 구원의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경제력도 불안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20대까지의 나는 정말 가난했다. 일주일 내내 계란 프라이로 끼니를 해결한 적도 있고, 돈이 없어서 미용실도 자주 가지 못했다. 돈을 벌고 있어도 최저 생계비였기 때문에 저축도 못했다. 그런 상황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게 만든다. 영원히 그 굴레에 갇혀 살 거라는 좌절을 안겨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아주 조금이지만 20대보다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심리상태에도 영향을 주었다. 여윳돈을 투자하며 미래를 꿈꾸고, 집을 살 계획을 짠다. 20대까지 필사적으로 찾고 싶었던 삶에서의 정답. 이젠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누가 알려줄 수도 없다. 그때그때 옳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하며 살아갈 뿐이다. 과거의 내 선택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건 어리석은 게 아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10년 전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싸이월드 제목이 ‘내 갈 길 간다’ 였는데 더 이상 이 제목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내 갈 길을 가지 못해서, 자꾸 옆 사람과 비교하던 내가 10년 전 드디어 나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순간에 쓴 일기였다. 내 갈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이나 그 제목을 달고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싸이월드가 사라지긴 했으나 만약 제목을 붙였더라면 ‘잘 살고 싶다’였을 거다. 윤에게 최근 10년간 가장 많이 한 말이다. 그 의미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서 변하지 않고 원했던 단 한 가지다. 이 문장은 아마도 한동안 내 인생의 제목으로 남아있을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