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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Nov 10. 2019

우린 슬프지 않을 권리가 있어

행복해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목표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글은 스승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시야를 열어주고 좁았던 식견을 스스로 꾸짖게 해준다. 그런 훌륭한 글을 만날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최근 가르침을 준 책은 정희진님의 '낯선 시선'이다. 좋은 문장들과 머리를 뒤흔드는 여러 시각 중에서 가장 오래 나를 상념에 빠지게 했던 문장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모두가 혹은 다수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배제된 사람이 없는 사회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다음 페이지를 읽을 수 없었다. 30년이 넘도록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틀린 것이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심지어 헌법에도 쓰여 있는 이 말은 말 그대로 법처럼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문장이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하게 살아야지. 행복하자. 행복해야 해.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자주하는 말이었다. 행복해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목표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저 문장을 접한 후 인생에 있어 진심으로 '행복하다' 라고 느낀 순간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승려의 베스트 셀러를 읽고 감화되어 세상만사가 전부 좋아보였을 때가 있었다. 그때가 제일 행복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 책의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지금 내가 숨쉬고 있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굉장하고 행복한 일인지 돌아보자는 것. 다른 사람의 말에 영향을 잘 받는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은 행복하다라는 감정을 되새기며  '행복'을 느끼며 지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거짓 감정이었다. 지금이 '행복'하고 만족하면 그 다음은 없다. 나를 움직이게 한 건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요즘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런 상태가 가장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은 몰려오는 스트레스에 곧잘 예민해지고 우울해지고 화가 난다. 그런 감정이 지속되면 살아갈 의욕도 사라지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때 알게 됐다. 아,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가 가장 좋은 거구나. 그럴 때 내 삶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는 ‘아무 감정 없음’ 상태가 아닐까? 그러니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지언정 우울하고 슬픈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정말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우린 모두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해. 이건 사치스러운 말이었다. 우린 모두 슬프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이제부터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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