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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Feb 26. 2021

과잉노력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

저는 제 속도로 걷겠습니다

고바야시 사토미의 새 작품 소식을 들었다. 제목은 '펜션 메챠'.




고바야시 사토미 주연의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번 드라마도 내용이 없다. 주인공이 펜션을 운영하면서 방문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 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래서 좋다. 아무런 갈등 없이 숲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슬그머니 입 주변이 당겨지고 광대뼈가 솟아오른다. 


여유로운 삶에 집착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기 싫고 게을러지고 싶다고. 그런 내가 어느새 일을 몇 개씩 벌리고 있다. 게을러지고 싶었던 게 아닌가? 열심히 사는 게 싫다고 했잖아. 의문은 있으나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그 질문을 잊고 살았다. 


레시피 검색을 하다가 어떤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다. 레시피 내용이 몇 줄 이어지고 광고, 몇 줄 이어지고 광고. 마지막에도 광고가 붙어있었다. 오른쪽의 하얀 여유공간마저도 광고가 차지했다. 왠지 눈살이 찌푸려져서 만개의 레시피에 들어갔다. 언제부턴가 이곳도 광고가 많이 붙기 시작했다. 레시피를 보여주기보다 물건을 팔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보였다. 포털을 열었다.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역시 광고 자리다. 그뿐인가. 오른쪽 사이드는 전부 크기만 다른 광고로 가득이다. SNS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든 '팔리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개인은 스스로의 바닥까지 긁어모아 사진이든 글로든 자신을 내보이며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모든 걸 피하고 싶다. 좋아서 하는 것, 즐거워서 하는 것, 자연스러운 것을 보고 싶다. 진짜 좋아서 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열정과 기쁨, 여유가 좋다. 하지만 대다수의 온오프라인의 공간엔 이제 그런 즐거움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다른 사람은 이 정도로 간절한데, 너는 지금 여유나 찾으려고? 날아가는 사람을 쫓아 달려도 모자랄 시간에 즐거움을 찾다니 배가 불렀구나. 


그 피로감에서 깨달았다. 나만 여유롭고 싶기보다는 여유로운 사람과 함께 여유로운 환경에 둘러싸이고 싶었다는 걸. 모두가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전전긍긍하지 않고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고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는 일을 많이 시키지 않으면 좋겠고 야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장인이라면 사이드 프로젝트 한 두 개쯤 하고 있어야 하고, 취준생이라면 퍼블리를 구독하며 신입 시절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배워야 하고, 직장인 10년 차 이상이라면 자신의 콘텐츠를 정리한 포트폴리오 페이지를 가지고 강의 정도는 다녀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지 뭐. 


하루에도 몇 개씩 업데이트되는 신제품, 매일 만들어지는 새로운 밈, 끝없이 쏟아지는 콘텐츠, 홍보용 SNS 계정들. 멈춰있는 나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쌩쌩 달리는 차들을 향해 외치고 싶다.


"여러분 잠깐만요. 잠깐만 멈춰보세요!"


그런다고 멈출 수는 없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출 수 없다는 건 나도 아는 사실이다. 나는 가까스로 갓길로 피해 천천히 걷는다. 그러다가 먼저 걸어가고 있던 다른 사람을 발견한다. 그때만큼 기쁜 순간이 없다. 수다를 떨면서 천천히 걸어가다 또 걷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한참 놀다가 다시 걷고.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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