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남편이 이야기들을 풀어봅니다. - 다름 -
나는 이곳 진주에서 계속 살고 있다. 직장생활을 위해 타지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 곳 나의 생활 터전이 이곳인 셈이다.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지 모른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은 대도시에서 벌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선택했기에 나는 지금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고향인 진주에 살면서 곁에 있는 부모님을 항상 마주할 수 있고 주위를 돌아보면 친구들이 있는 것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내 아내는 다르다.
나의 아내는 진주를 처음 접했을 때 지도 한 장으로 만난 도시라고 나에게 말했다.
혼자서 한국 생활을 시작할 때쯤 결정할 시기가 도래했다.
또래 동기들은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정착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다.
“따뜻한 남쪽이 좋겠어~ 아주 아래쪽으로”
아마도 아내에게는 진주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들어 본 적도 없는 낯선 도시, 하지만 그녀의 결정 순간에 대한민국 지도에 검지 손가락으로 짚었다고 한다.
“여기 가서 살게요”
“알고 가는 거니?”
“아뇨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요. 남쪽이라 따뜻하겠네요”
그렇게 아내는 진주라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국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분명 아내와 나는 시작점이 다르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느끼는 가치관과 문화적 감수성도 다를 것이다.
살아가면서 눈으로 피부로 절실히 느낄 테지만 잘 극복하고 왔고 잘 생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처음부터 다름을 알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해 만났기에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 부부는 맞춰나가는 거지”
“여느 부부와 다를 게 없어”
성격과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어느 집이나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기에...
하루아침에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바꾸며 맞춰 나간다는 생각은 애초에 어림없는 욕심이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생각의 온도가 전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성격 차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 생활양식과 너무나 달랐기에 극복하기에는 힘든 부분이었다.
내가 맞출 것인가? 맞추기를 바랄 것인가에서 비롯된 잘못은 아닐까?
아내를 이해하려는 노력 부족과 아내와의 가치관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다툼을 하기도 하였다.
나와 아내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나와 아내는 35년이 넘도록 서로를 모른 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다른 경험을 하며 각자의 인생을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경험을 하며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바보같이 그런 삶을 알고도 잊은 채 인정하지 못하고 지냈었다.
“우리는 차이를 넘어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인간관계, 사고방식, 대화방식, 생활양식, 사소한 습관들은 뼛속 깊숙한 곳부터 피부로 와닿는 체감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면, 나와 상대방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대방의 모습도, 틀린 것이 아니며 상대방의 잘못이 아님을 나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도 서로를 인정하며 아름답게 삶을 그리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