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탕이 또 생각나는 계절이다

에피소드 2. 추운 어느 겨울날

by 고강훈

*어묵이 맞지만 이 글에서만 오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오뎅탕 생각이 많이 난다.

오늘같이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더욱 그리워진다.


애주가라면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술과 안주 이야기하면 사연이 구구절절 흘러나오겠지만 그만큼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음식이다. 오늘, 같이 바람만 불어도 생각이 날 정도이니 말이다.

한때 나에게 오뎅이 생계 수단으로 효자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2010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도 12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 생활을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겠지만 이야기를 조금 보태려 한다.


당시 나의 직업은 개발자였다. 남들은 프로그래머 혹은 연구원이라고 불러주기도 했지만, 지금의 처우와는 달리 당시에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보장되지 않는 영역에서 열심히 일만 했던 기억이 난다.

우스갯소리로 개발자의 최종 목적지는 치킨집 사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기승전 치킨집 사장님이 꿈이었다.



오래전 'H카드사' 광고 패러디 물이 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이야기지만 당시 IT 종사자들은 밤새며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종일 코드와 씨름을 하면서 일과를 보내던 시절을 떠올리면 매우 공감이 가곤 했다.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면 종료될 때까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일주일의 일정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나마 프로젝트가 끝나고 신규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이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재충전 휴가는 갈 수 있었다.


일할 때는 댕댕이처럼 말을 잘 들어요


쳇바퀴처럼 도는 다람쥐처럼 열심히 뛰고 있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뛰니 먹을 것을 주더라. 내 볼과 내 주머니에 먹을 것이 쌓이고 있었다.

심지어 바닥이었던 잔고가 불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놀고 싶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다른 삶도 바라보고 싶었다.




그렇게 난 쳇바퀴를 멈추고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지방으로 내려왔다. 몹시 추웠다.

아~ 젠장 다시 돌아갈까?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내 발로 나와서 다시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한참을 방황하고 있을 때쯤 친구의 권유로 대학가에서 마주방(너와 나 마주 보며 술 한잔)이라는 간판을 걸고 주점을 하게 되었다.

사연은 많지만, 그 당시에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이 일을 선택하고 만다.


너와 나 마주 보며 술 한 잔 마주방


당장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두 살 때쯤이었다.

평소 요리를 즐겨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선보일 정도의 실력은 없었다.

역시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오픈 전 무슨 메뉴를 선정할지 고민하던 때 나의 절친인 친구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당시 친구는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하는 맛집 사장님이다.


훈아, 수제오뎅탕 어때?
요리법은 내가 알려줄게



고맙게도 친구는 나에게 모든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주력메뉴로 거듭나 소문이 날 정도로 붐빈 시절을 추억해 본다.

열심히 배워서 몸에 육수가 흐를 정도로 바쁘게 일을 했던 기억이다.

지금도 그 친구는 항상 곁에 있다. 지금은 아주 바르게 돈가츠를 만들고 있는 멋진 친구이다.


그렇게 오뎅탕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얼큰한 육수 속에 수제오뎅들이 춤을 춘다.

쑥갓과 팽이버섯이 함께 사우나를 하면 그 맛은 일품이 되었다.


마주방 인기 메뉴 수제오뎅탕


누구에게는 지친 몸을 따뜻하게 몸을 녹여 줄 안주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허기진 배를 채워 줄 든든한 간식거리일 것이다. 나에게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해 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당시에는 얼어붙은 나의 마음을 녹여준 불씨의 시작이었다.


오늘도 눈이 내린다.

지금은 회사에서 여러 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그중에 인사업무를 맡고 있다.

오늘 한 직원이 내게 전화해서 요청하였다.


부장님, 경력증명서랑 재직증명서 발급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 친구도 오늘 수제오뎅탕을 만들러 가려나?”

내가 비법을 전수해 줄 수 있는데...


난 눈치가 조금 있는 편인지라 금세 알 수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려나 생각했다. 면담을 해보니 내 생각은 적중했다.


이런저런 조건과 상황을 듣고 내가 붙잡으려 해도 돌아선 마음을 잡기는 힘들다.

궁지에 몰리면 사람의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역시나 앞에선 좋은 말만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오늘은 왜 그렇게 오뎅탕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몸을 녹여줄 오뎅탕이 아닌 마음을 녹여줄 오뎅탕이 먹고 싶다.


아직 추운 겨울이다.

다시 오뎅탕을 만들러 나도 가야 하나?

우리같이 잘 버텨보자. 추워도...


친구야 오늘 오뎅탕에 소주 한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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