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벽이슬 마시며 달린다

틀림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 백수 탈출-

by 고강훈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이다. 새벽 3시에 어김없이 휴대전화는 울어대고 있다.

아내가 깰세라 난 조용히 고양이 세수만 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5분만 더…. 5분만 더...... 하는 이불속 전쟁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예전에는 잠이 모자라 이불속 나의 육체와 정신이 벌이는 사투는 제법 길었었다.

몸이 익숙해지니 내가 오히려 알람을 깨울 때가 많았다. 그만큼 나의 의지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컴컴한 도로는 너무나 조용하다. 간혹 보이는 택시와 물류 기사들의 차량이 보이기도 하지만 껌뻑거리는 신호등의 주황색 연등은 더욱 적막한 분위기를 만들곤 한다.

이 시간에는 라디오만 한 좋은 친구는 없다.(만나면 좋은 친구)


이른 새벽 시간은 잔잔한 음악과 함께 방송국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일터로 가는 나를 외롭지 않게 한다.

나에게 희망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곤 하였다. 덕분에 금세 일터에 도착하였다.


일했던 새벽 시장


이 시간 이곳에 오면 배달용으로 개조된 시티-100 오토바이의 힘찬 엔진소리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저기 전등불들이 켜져 있고 멀리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이것이 아침을 깨우는 소리이다.


새벽시장을 여는 사람들......

세상엔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 생동감이 넘치고 나 역시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정신이 번쩍 든다. 또 다른 삶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국립대학교 비정규직 조교 생활을 5년을 한 적이 있었다. 조교 임기가 계약직이라 계약이 종료되는 시기였다. 하필 이 시기에 나의 연인을 만났다.

안정된 여건 속에 예비 배우자를 맞이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대학원 학위를 취득하고 바로 취업한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의 신념에 대한 믿음으로 그녀는 나와 동행을 결정했지만, 현실의 난관에 부딪히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마치 혼자 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길 잃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2016년 2월 29일 따뜻한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로 나는 늦깎이 백수가 되었다.


결혼생활은 시작이 되었고 아내는 나름 믿고 있는데 나는 초조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력서를 넣고 답 메일을 확인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잠이 들면 몰래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오지도 않는 메일함을 열며 연신 새로고침만 누르고 있는 나였다. 하루에 입사 지원은 수십 통을 하였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런 아내는 나의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 마음을 모른 채 달력은 자꾸 넘어가고 있었다.

그까짓 학위가 뭔 대수라 하겠지만 그래도 관련 직종에 재취업을 하고 싶었다.

내 욕심이었을까?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순간 덜컹하고 눈앞에 있는 취업사이트 창과 메일함을 부리나케 닿았다.

무언가를 훔쳐보다가 걸린 기분이랄까? 나의 당당함은 모니터의 검은 화면 속으로 부리나케 숨어버렸다.

“여보, 이제는 좀 힘드네...”

“언제까지 방에서만 있을 거야? 집에만 있는다고 일이 생겨?”

“전에 일하러 오라고 한 것 같은데 거기라도 나가는 게 어때?”


“어...... 그게….”

나는 답변은커녕 말을 얼버무리고 만다.


아내는 나와 같이 동네 마트에 가는 동안 나에게 걸려 온 전화를 엿들은 모양이다.

아는 형이 내가 쉬고 있는 동안 일손이 부족한 지인에게 소개해주려 했었다.

딸기 농사를 짓는 농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주는 작업이다. 나름 기술과 힘이 필요하다. 일당을 많이 주는 만큼 일머리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나는 석사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막노동 판에 나갈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곧 취업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보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안 될까?”

아내는 이런 답변이 탐탁지 않았겠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내는 방문을 쿵 하고 닫고 나가버린다.

그렇게 냉전의 시간이 흐르는 나날이었다.




결혼 전에는 온갖 아르바이트며, 수많은 일들을 해봤지만, 이제는 고정적인 수입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야 할 시기이기에 고민만 늘어 갔다. 대출이자도 갚아야 하고 훗날 2세 계획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오로지 내 생각이었다.


몇 날 며칠 나의 귓가에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배가 덜 고팠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느냐?
그깟 학위 종이가 무슨 대수냐?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생활비로 준 퇴직금이 바닥이 났다.

더 이상 아내를 힘들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직업에 귀천은 없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때론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난날 아내가 나에게 한 말이 큰 힘이 되었다.

“난 언제든지 밑바닥부터 일어설 수 있어”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나보다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임은 분명하다.


새벽 3시 무렵의 시장 풍경


그렇게 결심하고 인근의 새벽시장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하는 일이 제일 빠르기 때문이다. 양파 도매점에서 새벽 오토바이 배송 기사를 구인하여 당분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새벽 3시 30분까지 출근을 하여 오전 8시에 퇴근, 오후 4시에는 2.5톤 트럭에 가득 실은 양파를 하역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20킬로가 넘는 양파 5망을 싣고 오토바이를 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통 좁을 골목길을 중심을 잡고 운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바닥에 파 껍질이라도 만난다면 굴러 내동댕이치기 일쑤였다. 다시 중심을 잡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지매~~ 뒤에서 좀 밀어주세요~”

이 말 한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끙끙대는 내 모습을 본 사람이 기특한지 아지매 두 분이 뒤에서 잡고 힘껏 밀어주신다.


“총각 ~ 새벽부터 나와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네~”

“요즘은 보기 드문데 말이야.”


젊은 사람들은 쉽고 편안한 일들을 찾고 기피 업종을 피해서 그런지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난 단지 먹고살기 위해 뛰어든 것뿐이다. 그런 거 따질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새벽시장은 늘 활기가 넘친다. 그리고 많이 배우게 된다. 열심히 사는 이웃들을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냥 열심히 살고 싶었다. 아무리 잔머리를 굴린 들 그건 잠시뿐 절대 성실을 이길 수 없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더 단단히 먹게 된다.

어느덧 몸이 익숙해져 버렸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니 항상 허리에는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시간을 짬을 내서 작은 선술집에 아르바이트도 같이하였다.

몸이 버틸지는 모르지만, 그냥 달렸다. 그냥….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부끄러운 남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첫 월급날 두 곳에서 받은 흰 봉투를 아내에게 조용히 건네주었다.

역시 시장은 현금이다. 눈으로 돈맛을 느껴본 순간이다.

봉투 속 액수는 정확하게 300만 원의 현금이었다.

한 달간 새벽공기와 먼지를 마시며 땀으로 일군 값 진 대가이다.

아내는 나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난 기다려준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여보 오늘 삼겹살 구워 먹을까?” 아내가 말을 건넨다.

"그래~"

이날 먹은 삼겹살은 인생 최고의 삼겹살 파티였다.

인생 최고의 삼겹살





어느 정도 시장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그 해 취업이 되어 나의 자리로 떠나고 만다.

새벽시장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준 또 다른 세상 속의 인생 학교였다.


고기사~ 언제든지 일없으면 다시 찾아와~


여긴 니가 할 일 많은께네~


나를 찾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나의 인생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최고로 힘이 되는 말이었다.


썩어도 준치


이 말을 여기에 빗대도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쓸모 있는 존재라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자.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나의 길이다.




*긴 글 읽어주신 이웃 작가님 그리고 구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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