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다고 위로하였다

이제는 남편이 이야기들을 풀어봅니다. -나를 위로하다-

by 고강훈

chapter 1. 오늘도,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다고 위로하였다.


절망 속에서 헤매지 마라.


또 다른 희망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너는 이만큼 잘 해내고 있다. 남의 삶을 동경하지 마라. 내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다. 수많은 글귀가 오고 갔지만 그중에 내 마음속을 다시 후벼 파는 다짐의 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의 낡은 일기장을 다시금 열어 보았다. 마음이 흔들릴 때 한 번씩 지난 다짐들을 생각하며 과거 속의 나를 만나게 된다. 20대 나의 청춘 시절은 그야말로 혈기 왕성한 시기였다.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였지만 그래도 앞을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아니 희망이 보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실패를 많이 경험할수록 더 단단해지며 성공의 길로 안내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실패의 거듭은 즉 성공을 의미한다. 이 말은 나의 도전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삶은 성공 가도로 지속해서 달려갈 수 있다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꾸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성공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달리고 달려왔다. 성공한 삶을 꿈꾸며 앞만 보며 달렸다.


성공의 잣대는 누구나 다를 것이다. 성공의 의미와 잣대의 모호성, 내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타인과 비교해서 달라지는 기준 때문에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삶은 기준은 다르다. 부와 명예도 좋지만 그냥 보통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일 거라 생각했다.


그냥 보통사람...


보통사람처럼 자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연인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나 닮은 자식과 아내와 함께 행복을 꿈꾸는 삶... 그런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 되기마저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출발선이 다르며 종착역도 다르다. 인생에 있어 무임승차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임을 알고 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일궈낸 이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

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예전에는 본인의 노력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사회구조였지만 지금은 학벌·경력 등이 상향 평준화되어서 노력 이외 것들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면 내가 꿈꿔 온 목표를 이루기 더욱 좋은 환경일 것이다.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는 못했다. 집 안 구석구석 밥을 먹을 수 있는 쇠 수저가 분명히 있는데도 세상은 나를 흙수저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밥만 잘 먹는데 가끔 금수저가 부럽기도 한 건 사실이다.

수저 계급론이 등장하면서 부모가 자식을 뒷받침해주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같은 신조어는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하였다.


어릴 때는 나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생각은 못 했다. 물론 내가 부모덕을 봤더라면 좀 더 일찍 안정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겠지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핑계일까? 맞는 말일까? 아무도 모른다. 미래에 다녀와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경제적 상황과 여건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존감도 높아질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 통념상 부모가 든든하게 받쳐 줄 능력이 있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초콜릿 같은 달콤한 유혹으로 상상할 뿐이다.

부모의 큰 덕을 바라고 자라지 않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착하게만 살아왔다. 그저 나와 똑같은 사람 똑같은 사람들만 보고 자라 왔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배웠고 큰 문제없이 자라 온 것이 다였다.

어릴 적 6~7세의 나의 모습을 잠깐 떠올려 보게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야무지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옆집 할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훈아, 넌 작지만 다부지고 총명해서 뭘 해도 될 녀석이구나...”

“바른길만 걸어가면 된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이렇게 나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


사실 어릴 때 기억을 다 할 수 없겠지만 이 말씀은 뇌리를 스쳤고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착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였다.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굳건한 아이였다.


내가 태어난 이곳 진주는 아주 작은 시골 도시다. 반 도시, 반 농촌인 복합적인 친환경 도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문화와 교육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6세 때 공립 유아원 시작으로 초, 중, 고, 대학교까지 운 좋게도 이곳에서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대학교는 진주를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은 꿈을 꾸었지만, 등급 경쟁사회에서 첫 패배를 느끼게 되었다.


‘등급이 실력이다.’ 이 말을 들으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낮은 등급으로는 좋은 대학과 흔히 말하는 인 서울 대학마저도 못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고 삶의 끝자락에 와 있는 것도 아닌데 나 자신에게 부끄럽게 짝이 없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 그리고 선생님께는 볼 면목이 없었다.

월등한 수재는 아니었지만 노력한 만큼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에 큰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지만 나에게만큼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많이 뒤처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작은 상처일 뿐이었는데 왜 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졌었는지 아쉬운 시간이 많았다.


우여곡절이라 표현하기에는 과하지만, 노력 끝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 사는 곳의 지방 국립대에 진학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절망 속에서 헤매고 또 다른 희망을 찾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신세 한탄이나 하며 한량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 한번 딱 감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데 그게 뭐가 그리 무섭고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앞서 말한 성공의 길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처의 딱지가 무서워 다시 일어설 수 없다면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나를 한 없이 응원한다.

나만의 인생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가다 보면 방지턱도 만날 것이고 돌발 사고도 일어날 것이다. 그때마다 일어나서 말할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이제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