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나는 게으른 결정장애자

이제는 남편이 이야기들을 풀어봅니다. -결정-

by 고강훈

chapter 3. 알고 보니 나는 게으른 결정 장애자(선택불가증후군)


누구나 완벽에 가까운 온전한 삶을 꿈꾼다. 살아오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맞서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고민을 했으며 내가 아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거나 전문 서적을 찾아보기도 하였고, 지식인에게 물어보고 답변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시간은 지체되고 있었고 내 심정만큼 빠른 답을 찾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망설임, 초조함,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과 책임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의 첫 결정의 시기는 성인이 되고 나서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지방에 소재한 경상국립대학교 컴퓨터과학과 4학년 졸업반 재학 시절이었다.

2004년 2월 졸업 시기가 다가오고 동기 녀석들은 이력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는데 분주하다. 모두 휴가 날짜를 기다리는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면접 회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회신이 오기는커녕 텅 빈 메일함을 바라보며 습관적으로 나의 오른손은 쥐 잡듯이 새로 고침만 하고 앉아 있다.

취업이 안 되면 어쩌지? 전산직 공무원 공부 준비를 시작해야 하나? 말이 전산직 공무원이지 공무원 시험이 만만하지 않은데……. 입버릇처럼 취업 안 되면 공무원이나 하지하면서 위안으로 삼았다.


졸업을 2주일 앞두고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일정에 맞춰 최선을 다해 면접에 임했다. 며칠 후 최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두 곳 모두…….

전 상황이라면 뒤도 안 보고 면접 잘 보고 취업하는 게 맞을 터인데……. 두 곳이라니…….

사람은 참 간사하다. 취업도 못 할 상황이었는데……. 이 전의 내 처지는 잊고 재고 있었다.

쉽게 결정을 할 수 없는 나는 평상시보다 많은 것을 따지며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였다.

스스로 결정을 못 내린 나는 재학 중인 컴퓨터과학과의 프로그래밍 언어 연구실의 4학년 지도교수를 맡고 계시는 배종민 교수님께 조언을 듣기 위해 진로상담을 요청하였다. 교수님께서는 바쁜 일정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어 주셨다.


“교수님, A 회사는 연봉이 높은데 객지라서 주거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B 회사는 연봉이 낮은 대신에 기숙사 제공이 되고 있어요.”


“어느 회사로 취업하는 것이 나을지 고민이 됩니다. 스펙을 더 쌓아서 더 나은 회사를 준비하는 것이 나을까요?”


지도교수님의 답변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돌아온다.

“ 글쎄…….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끌리는 쪽으로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두 회사에 대해서는 네가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 넌 아직 젊으니”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살아가는 방법이 있어. 난 네가 꼭 전공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이 들어. 겁먹지 말고 그냥 시작해 보려무나.”


그리고 내가 문밖을 나서기 전에 나의 가슴속에 비수를 꽂는 한 마디를 첨언해 주셨다.

“ 넌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 놓고 날 찾아온 것 같구나?”


교수님의 말씀이 끝난 후 나는 부리나케 도망치듯 연구실을 나섰다.

나의 뒤통수가 부끄러웠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조금 더 끌리는 쪽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 정답이다. 내 인생을 교수님이 선택해 주실 수 없는 것인데 나의 책임을 교수님의 조언을 핑계 삼아 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전에 두 회사의 정보는 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사원서를 넣기 전부터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하기까지 내 범주 안에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던 이유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상황과 지리적 위치 등을 고려하여 차 떼고 포 떼면 내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초년생이 직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개인의 희생과 노력으로 열정 페이도 감수한다는데 당연한 거겠지 하면서 뭔가 내키지 않은 심정으로 이미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 결정이 나중에 후회가 될지 만족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도 확신이 안 섰다. 자신의 결정에 얼마나 자기만족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가 없다.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단어 "익숙함"

선택의 갈림길에 매 순간순간이 옳은 결정이라고 믿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 자신이 결정할 문제인데 타인의 도움과 조언을 바랄 때가 많았다. 이는 어쩌면 결정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한 비겁한 자기 합리화 일지도 모른다.

항상 옳은 결정만을 원하고 내 결정이 맞을 거야 하는 바람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내가 쉽게 결정을 못 내렸던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였다.


살아보니 옳은 결정이라는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을 믿고 따를 것,

그 결정에 대해 후회가 없을 것,

너무 시간을 지체하지 말 것.


어떻게 대처를 잘할 것인가에 더 집중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중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선택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고민하는 동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며 결정의 순간마저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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