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2022)를 읽고
정말이지 오랜만에 읽어보는 공포소설이었다. 초등학생일 때 도서관에 시리즈로 진열되어 있던 어떤 외국 작가의 공포소설집에 꽂혀 매주 읽던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때 느꼈던 공포의 느낌은 신선함과 반전이었다. 처음 읽은 공포소설은 밤에도 생각이 나지만 두 번 보면 덤덤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시시해진다. 취향이 변해 소설에서 영화로 매체가 바뀌어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Jump-scare는 유치한 짓이고 기어코 그런 장면을 넣는 양산형 텍스트에 질려갔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던 공포소설이 부커상 후보에 오르다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고, 꽤나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주토끼는 반전에 기대지 않는다. A에서 B, C로 이어가다 갑자기 Z로 튀어나가는 일 없이 정성스럽게 인과에 맞춰 서술하며, 모든 단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함을 도입부에 모두 쏟아내고 시작한다. 변기에서 솟아오르는 머리가 있고 피임약 부작용으로 임신을 하는 등 현실에 없는 일이 일어나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주인공이 현실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면서 그 부조리한 바탕에서 시작된 일이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닮아갈 때, 그 지점에서 공포가 시작된다. Jump-scare의 세계에서 날뛰는 존재의 두건 아래에는 괴물이 있지만, 저주토끼의 세계에서 침습하는 존재의 두건 아래에는 나와 닮은 누군가가 있다. 내게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괴물의 두건을 벗기는 것이 차라리 쉽다고 말할 것이다.
단편집이라 꼭 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책을 우울함으로의 초대라고 부르고 싶다. 대게 공포소설은 귀곡산장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저주토끼는 반대로 기형도의 빈집으로 다가가는 이야기다. 그 시는 화자가 방 안에 갇힌 “불쌍한 내 사랑”을 연민하며 끝나지만, 타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장르가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왜곡되고 파괴적이며 비윤리적이지만 관찰자의 마음 깊은 곳에 닮은 구석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바로 저주토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