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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지 Sep 28. 2020

완벽하지 않아도 채식하고 싶어

그 태풍, 그 산불, 그 코로나... 다 뭐 때문이게요

*무중력지대 양천 '2030 라이프매거진' 2020년 10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마트 진열대 앞에 30분을 서 있었다.


저녁 메뉴는 카레. 자전거 타고 마트에 와 필요한 재료를 카트에 골라 담았다. 카레 코너에는 30여 종이 넘는 소스 제품들이 있었다.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대부분 육류가 들어갔다. 대놓고 쇠고기 카레라고 쓰여 있지 않은 경우에도, 뒤집어보면 쇠고기나 닭고기 분말이 포함됐다. 게다가 말레이시안 팜유를 썼다. 팜유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숲에 불을 지르고 생산하는 기름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심각한 뉴스 기사를 읽듯 소스를 들고 한참을 쳐다봤다. 손님 두어 명이 옆에서 보고 카레 소스를 집어갔다. 주말마다 제대로 된 채식 요리를 해보려 한 첫 주.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심사숙고한 결과, ‘인도식 마크니커리’ 소스를 골랐다.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였다. 휘핑크림과 버터 때문에 비건은 아니지만 육류가 들어가지 않았고, 팜유가 아닌 콩기름을 썼다. 배송시키지 않고 직접 간 마트에서 찾을 수 있는 최선이었다.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였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집에 도착해 두부와 옥수수, 버섯과 각종 채소를 넣어 카레를 끓였다. 당근은 별로 안 좋아해 조금 넣고, 감자는 맛있어서 하나를 다 넣었다. 코코넛밀크와 두유로 풍미를 더했다.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맛이 아주 좋았다. 두부와 옥수수 씹는 맛이 대비돼서 식감이 재밌었다. 버섯 향은 입맛을 돋웠다. 소스양이 3~4인분이라, 가족과 나눠 먹고 다음 날 아침에도 남은 카레를 데워먹었다. 재료를 사고 요리하는 데까지 두 시간 넘게 걸렸다. 그래도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일주일에 한 번은 채식하기로 선언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동물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지만, 지난해 채식을 결심한 데에는 기후위기 탓이 크다.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 날씨와 잦은 산불로 기후위기를 뼈로 느꼈다. 이대로라면 한반도에 사는 나는 30년 뒤 기후난민이 될 터였다. 유튜브 영상에서 환경 전문가는 채식을 권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이기 때문.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18%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배출된다고 한다. 가축이 뿜어내는 메탄가스가 지구가열을 가속화한다.


외식을 많이 하는 이상, 바로 비건이 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화요일에는 의식적으로 고기를 안 먹겠다고 다짐했다. 요일은 내 마음대로 정했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고 현재는 평소에도 비건을 지향하는 플렉시테리언이다. 개인의 행동이 얼마나 의미 있을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지금도 매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밀림이 사라진다. 가축에게 먹일 콩과 옥수수 재배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가축은 많아지는데, 탄소를 흡수하는 지구의 자정 능력은 줄어든다. 구조적 악순환이다.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려면 채식을 멈출 수 없다.


자연 파괴가 죄라면, 육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소비자는 공동정범이다. 당황스러운 범죄자 취급이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과한 육류 소비가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알면서 거부하지 않는다면, 과실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윤리적인 제품 생산과 소비는 연결돼 있다. 전 지구적 분업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멀어진 게 문제다. 소비자는 본인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어떤 과정으로 생산되는지 모른다. 공동정범의 책임은 붕 떠있다.


각자의 책임을 어느 정도 인지하는 게 우선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고, 합리적인 채식을 지향하면 좋겠다. 강박적 도덕관에 빠져서 자신을 옥죄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직접 경험해봐서 안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알바트로스 영화를 보고 깊은 우울감에 빠진 적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유연하게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카레 소스를 고를 때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한동안 내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는 ‘화요일엔 채식’이었다. 자주 보는 메신저니, 스스로 쓴 메시지를 보며 각성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친구들이 채식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쉽다고 말하니 본인도 해보겠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서너 명이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안다면, 행동을 시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채식 선배들과 새로 생긴 동료들 덕에 힘을 얻는다.


하지만 같은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다. 여전히 채식인은 소수자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채식인은 존중받기 어렵다. 메뉴 선택권이 적고, 유난스럽다는 비난을 받는다. 인스타그램은 육류 소비 전시전이다. 빨간 고기 사진을 찍어 올려 자랑하는 문화가 만연하다는 것은 그만큼 육식문화가 주류라는 뜻이다. 친절한 육식주의자는 채식인을 '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 채식인이 배려 대상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같은 지구에 살고 있다.


비거니즘의 외연이 넓어지길 바란다. 모든 이가 투사가 될 필요는 없다. 채식을 시작하는 동기도 기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본인의 건강이나 재미를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육식문화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채식의 장점을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서울시 인구 천만 명이 채식인이 되는 날을 상상한다. 되도록 빨리 와야 할 듯한데, 어쨌든 우리 삶을 파괴하는 기후위기를 늦출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 확산도 환경파괴와 공장식 축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 도시 확장 때문에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많아져 바이러스가 변이되고, 밀집된 가축 사육환경으로 전염병 확산이 빨라진다. 고기를 덜 먹고 채식을 해야 할 이유는 끝이 없다. 하지만 길든 입맛을 끊기란 어렵다. 오래된 육식문화로 우리의 입맛은 고기에 맞춰져 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렇기에 시민 연대가 필요하고, 정부와 기업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채식하고 싶다. 매일 영양 균형을 맞춘 비건식으로 챙겨 먹는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점심으로 고기를 먹었다면 저녁때는 조금 더 식단에 신경 쓰는 방식으로 육류 소비를 줄여 가면 어떨까. 같이 밥 먹을 때 누구에게나 “채식으로 먹자”고 쉽게 권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엉성하게 행복하게 채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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