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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지 Dec 01. 2020

My~ Love~ AOC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제목은 신화 노래 <T.O.P.>에 맞춰 불러주길 바란다. 난 사랑에 빠졌다. 컷마다 울컥울컥 하더니 선거 결과 발표 장면에서는 AOC와 그 지지자들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됐다. AOC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별칭이다. 2018년 미국 하원 의원 선거에서 최연소로 당선돼 정치 지형을 뒤흔든 그 비백인 여성 말이다.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2019)은 2018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여성 네 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뉴욕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웨스트버지니아의 폴라 진, 미주리의 코리 부시, 네바다의 에이미 빌레라까지. 기업 후원 없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으로 원외 새로운 인물들이 민주당 경선에 나섰다. 후보 추천부터 경선 과정까지 지역사회 운동가들의 힘이 컸다.


크라우드 소싱으로 후보를 모은 정의 민주당원(Justice Democrats)과 새로운 국회(Brand New Congress)는 정치계 부패 세력과 자금 제거가 목적이라 말했다. 지금까지 누군가 미국 국회에 진출하려면 로비스트와 특수 이익단체를 통해야 했다. 그렇게 구성된 국회는 81%가 남자고 대부분이 백인, 백만장자, 변호사였다. 바뀌지 않는 정치에 신물 난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새로운 대안을 끌고 왔다.


잠깐 영화 밖 얘기를 하자면, 한국 국회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21대 국회는 남성이 81%를 차지해 저 당시 미국과 같다. 국회의원 300명의 평균 나이는 54.9살, 평균 재산은 21억 8천만 원, 출신 직업은 정치인(220명), 법조인(20명), 교수 등 교육자(19명), 기업인(9명)이다. 한국 사회 평균 나이가 42.6살이고, 가구 평균 자산은 4억 3천만 원이며, 성비는 물론 반반이라는 사실을 보면 국회의 국민 대표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선거 때마다 이런 문제 지적이 나오고 선거제 개혁 방안도 논의되는데, 제대로 진행된 건 없다. 지난해 통과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야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면서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새로운 인물을 뽑아보겠다는 경선 시스템도 졸속이라 문제 많은 후보들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정당 내에서 인재를 교육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부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도 미국처럼 풀뿌리 방식으로 다수를 대변하는 후보를 추천해야 하지 않을까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각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남동생의 추천을 받아 시민 후보로 뽑힌 AOC는 정치 경력이 짧았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버니 샌더스 캠프에서 봉사 활동한 것과 DSA(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회원 활동이 전부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식당 종업원과 바텐더로 일했다. 이러한 경험은 경선에 도움이 됐다. 18시간을 서서 일한 탓에 고된 노동 강도에 단련돼 있고, 뜨거움을 잘 참으며, 예의 없는 사람을 잘 상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대 후보. AOC가 도전장을 내민 뉴욕 선거구는 민주당 조 크롤리 하원의원의 텃밭이다. 그는 14년 동안 경선에서 도전자가 없었다. 크롤리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대신 권력 투쟁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민주당 서열 4위에 올랐다. 그는 경선 내내 자신의 공약보다 '트럼프에 대항하는 민주당'을 강조했다. 자기처럼 힘이 있어야 트럼프에게 맞설 수 있다는 뜻이다.


경선을 준비하며 AOC 캠프에서는 '권력이 센 의원(크롤리)을 약한 사람(AOC)으로 대체하는 이유'를 논한다. 이에 AOC는 현재 기득권이 권력으로 무엇을 하는지 봐야 한다고 답한다. "그들은 우릴 위해 권력을 쓰지 않는다. 우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니 손해가 아니다." 오만한 크롤리에게 날리는 한 방이다.


AOC는 노동자 계층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자신도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노동자, 즉 미국인 다수를 대표한다. 동시에 그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라틴계이자 아메리칸 원주민의 후손인 AOC는 캠페인 문구에도 스페인어식 느낌표를 쓰고, 연설을 다니며 스페인어로 말한다. 찾아보니 뉴욕 브롱크스의 대다수 인구는 라틴계와 흑인이 차지한다고 한다. AOC는 보편적 의제를 내세우면서, 같은 정체성 집단에게 특별히 호소력 있는 캠페인을 펼쳤다. 크롤리가 실은 버지니아에 산다는 점을 꼬집은 것도 통쾌했다.


크롤리는 브롱크스 후보 토론회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토론회에서 카리스마 넘치게 할 말 다하는 AOC에게 반한 것 같은데, 그보다 눈길 가는 건 주민들의 반응이다. 열심인 후보가 나오니 주민들도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작은 학교 강당 같은 곳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는 AOC의 모습은 누가 봐도 희망적이다. 진정성 있게 시민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후보의 모습... 정석이다.


2018 년 AOC 선거 영상. AOC는 기업 후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자금이 별로 없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경선을 치렀는데 이 선거 영상이 올라가고 후원금이 빵 터졌다.


선거 결과는 아는 대로다. 82%(경선 투표율), 15%(경선에서의 득표율 차이), 78%(본선거 득표율). 어마 무시한 수치로 완승을 거뒀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확대, 대학 무상 등록금, 부유세 공약 등 파격 공약을 내세운 미국 진보의 새로운 얼굴이 나왔다. 마지막엔 AOC가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웃통 벗고 조깅하는 청년이 옆으로 지나가며 "I LOVE YOU!"하고 AOC에게 소리치는데 내가 다 신났다. 나를 대변하는,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국회에 가면 저런 느낌일까.


국회의사당 앞 벤치에 앉은 AOC는 어릴 적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살배기 AOC와 워싱턴에 로드 트립을 온 아버지는 워싱턴 기념비와 연못 등을 가리키며 이게 다 우리 거라고 말한다. "우리 정부니까 이 모든 게 네 거다." 아, 최연소 하원의원이 될 AOC는 떡잎부터 달랐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AOC와 파트너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킬킬대며 전동 킥보드를 탄다. 진국이다.


AOC 말고도 폴라 진, 코리 부시, 에이미 빌레라 이야기 모두 인상 깊었다. 특히 웨스트버지니아 탄광 지역에서 출마한 폴라 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광부의 딸인 그는 차로 동네를 지나가며 암에 걸린 주민들 집을 손으로 가리킨다. 대다수다.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건강을 앗아간 석탄회사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가 우리 산을 폭파시키고 물을 오염시키면 전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런 짓을 할 수 있다." 폴라 진은 석탄 회사들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은 상대 후보에게 패배했다.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코리 부시도 2018년 경선에서는 패배했다. 1969년부터 클레이 부자가 맡아온 지역이라 관성의 벽에 부딪힌 듯하다. 그러나 올해는 클레이 의원을 제치고 공화당 후보도 이겼다. 그는 올해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MLB 운동을 이끌었다고 한다. 보통의 흑인 삶을 더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하원에 들어왔다.


AOC도 올해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2년 전에는 시민 후원금이 30만 달러였는데 올해는 170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한다. 그의 인기는 소셜 미디어에서부터 비롯된다. 경선 과정에서도 소셜 미디어를 활발히 사용했는데, 국회에 입성하고도 다양한 모습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최근에는 올해 유행한 '어몽어스' 게임을 스트리밍하며 대선 투표를 독려했다. 3시간, 6시간씩 게임을 하는 동안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시 접속자가 몇 십만 명이었다고 한다.


혹자는 이러한 AOC의 소셜 미디어 행보가 트럼프의 포퓰리즘과 다를 바 없어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AOC의 메시지에는 진정성과 근거가 있다. 시민들과 소통하며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고, 국회의원으로서 행동할 줄 안다. 아무렇게나 가짜 뉴스를 써대는 트럼프와는 다르다. AOC는 미국 기후위기 대응 단체 '선라이즈 무브먼트'가 제안한 그린 뉴딜을 받아들여 처음 제도권 정치로 끌고 온 인물이기도 하다. 말로만 듣던 AOC였는데, 다큐멘터리를 보고 푹 빠졌다.


뼛속부터 아이돌인 사람이 있듯이 AOC는 정치인 DNA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대본 없이 끄적인 메모 가지고 저런 명연설을 한담. 그것도 정치인 교육도 따로 안 받은 사람이.


But you have to be fearless. Nobody owns you yet. You don't owe anybody anything yet. So run.

당신은 용감해야 합니다. 아직 아무도 당신 위에 있지 않아요. 당신 역시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출마하세요.

- Rev. Darryl Gray


For every ten rejections you get one acceptance. And that's how you win everything.

열 번의 거절마다 한 번의 승낙을 받는 거야. 그게 우리가 이기는 방식이야.

- AOC


“I am experienced enough to do this. I am knowledgable enough to do this. I am prepared enough to do this. I am mature enough to do this. I am brave enough to do this.”

난 충분히 경험이 있어. 지식도 충분해. 준비도 충분해. 충분히 성숙해. 충분히 용감해.

-AOC


It's just the reality that in order for one of us to make it through, 100 of us have to try.

우리 중 한 명이 성공하려면, 100명이 도전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 AOC



제목: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Knock Down the House>

연출: 레이첼 리어스

장르: 다큐멘터리

제작 연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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