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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지 Dec 31. 2020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2018년 12월 25일, 11년을 함께 산 개가 죽었다. 한 동안 아프다 세상을 떠났다. 병은 오래됐을 텐데, 제때 치료해주지 못했다. 개는 몸에 병이 자라는 동안 티를 내지 않았다. 종양이 드러나고 피부가 짓물러질 때까지 밥을 잘 먹었다. 평소처럼 곁에 와 가만히 누워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침대 밑에 누워있다가 조용히 혼자 갔다.


나이가 들어도 고양이 쫓는 걸 좋아하고 식탐이 많은 개였다. 개가 걷지 못할 때까지 같이 밖에 나갔다. 멀리 가진 못했지만 천천히 걷고 땅 냄새 맡으며 바람을 쐤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걸 다 먹었으면 해서 북엇국도 끓여줬다. 밥을 그렇게 좋아하던 개가 사료를 먹지 않을 때였다. 개는 북어 냄새를 맡고 조금씩 국을 먹었다. 얼마 뒤에는 북어도 입에 대지 못했다.


나는 개로부터 얻는 행복이 참 컸는데 개는 어땠을까 생각하면 미안하다. 더 오래 살 수 있었는데 내 탓으로 일찍 병에 든 것 같았다. 어렸고, 잘못된 선택을 했고, 원하는 만큼 개에게 잘해주지 못했다. 죽음을 미루기 위해 끝까지 치료하지 않은 데도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개를 포기했던 걸까. 죽음이 다가올수록 몸이 안 좋아지는 개를 보며 무력감과 절망에 휩싸였다.


개는 원래 죽음이 가까워지면 몸을 잘 움직이지 않고, 음식도 끊는다고 한다. 어쩌면 개가 산책을 나가고, 북어 몇 점을 먹은 건 나를 위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 사랑하는 개의 죽음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다. 삶은 너무 중독적이어서 사는 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부랴부랴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개의 죽음 전후로, 그러니까 가을, 겨울 내내 울었다. 아픈 개를 지켜보는 것도, 개가 죽고 나서도 괴로웠다.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겪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남겨진다는 상실감. 아프고 쓸쓸한 냄새. 부채감과 죄책감. 이런 이미지가 죽음을 둘러싸고 부유했다. 죽음에 관해서는 감정이 앞서서 찬찬히 들여다보기가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커스틴 존슨의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용감한 작품이다. 감독은 나이 든 아버지, 딕 존슨의 죽음을 뜯어본다. 아버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영화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관객이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고 느끼게끔 한다. 각본 속 죽음을 이행하는 동안 아버지의 실제 알츠하이머병은 악화한다. 영화에서 죽음은 가짜면서 현재 진행형이다.



부녀는 짐짓 유쾌한 방식으로 죽음을 예행연습한다. 딕 존슨은 길을 가다 건물에서 떨어진 물건에 맞아 죽고, 계단에서 떨어져 죽고, 차 사고로 죽는다. 가짜긴 하지만 영화 첫 장면에 아버지가 실제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사고가 날 때 심장이 철렁한다. 스턴트맨을 써서 다양한 죽음을 연출하며 메이킹 필름도 섞어서 보여준다. 죽은 딕 존슨은 카메라 바깥에서 다시 살아난다.


영화는 사후 세계도 상상해 보여준다. 색깔과 반짝이가 가득한 천국에는 초콜릿 분수와 유명 인사들이 있다. 빌리 홀리데이와 프리다 칼로 같이 '고통을 창의성으로 승화한' 이들이다. 그곳에서 딕 존슨의 소원 두 가지가 이뤄진다. 기형 발에 발가락이 생기고, 9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 케이티 조가 나타난다. 딕과 케이티 조가 같이 춤추는 장면은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케이티 조는 알츠하이머병을 오래 앓았다. 영화에 담긴 유일한 영상 기록에서 그는 딸을 기억하지 못한다. 감독은 어머니의 따뜻하고 총명했던 모습은 왜 찍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한다. 어머니를 신경 쓰느라 생각지 못한 아버지까지 병에 걸리자 감독은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에도 시기가 늦었다. 치매가 심해지는 아버지를 보며 감독은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한다. 그리고 견디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딕 존슨은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다. 자식들이 어릴 때 안식교 교리를 어기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간 그는 "천국은 이 땅에서 너희들과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내내 딕 존슨은 삶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는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인생은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 홀로 설 수 없는 시기에 딸과 함께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딕 존슨에게 용기가 됐을 듯하다.


감독은 죽음에 반항하려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아버지가 계속 살기를 바랐다며. 가짜 장례식 때까지만 해도 죽음을 멈추는 방법을 찾은 줄 알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엔 죽음을 받아들인다. 딕 존슨이 시설에 들어가기 전, 집으로 부른 돌봄 간호사는 환자 10명의 죽음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받아들이면 쉽다고 말한다. 질병이나 몸 상태는 어찌할 수 없다. 죽음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냥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한다.


책 <삶의 마지막 공부를 위하여> (김이경, 2020)에 인용된 종교학자 기시모토 히데오의 말을 재인용한다.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그가 삶의 끝에서 한 말이다.


특별하지만 죽음도 결국은 '헤어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준비란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일이며, 자신의 살아온 세계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며 죽어가는 일이다. 죽음이란 그런 이별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공포를 견디는 방법은 억지로 죽음에서 눈을 떼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작은 죽음의 이별을 되풀이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삶에 대한 미련을 실컷 드러내면서 삶과 조금씩 이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딕 존슨은 사랑하는 가족과 가까이서 함께 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삶을 음미한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작은 죽음의 이별을 되풀이한다. 가짜 장례식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친구들의 추도사를 듣고, 자립심을 상징하는 차는 팔고, 평생 근무한 사무실에서 나온다. 죽음이란 수많은 이별 방식 중 하나다. 어찌 하든 후회와 미련은 남겠지만, 내가 맞을 다음 죽음은 사는 동안 조금씩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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