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즈맨 Jul 25. 2021

미용실 위클리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하루라면 몰라도, 오늘처럼 4시에 머리 커트 예약이 잡혀있고 6시에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에는 오전부터 부지런하지 않으면 도저히 글쓰기를 위한 시간이 나지 않는다. 이럴 경우에는 웹툰 작가처럼 '오늘 연재 분은 내일 연재될 예정입니다'하고 공지를 띄우고 도망치거나 내일 글을 오전에 올리면서 '아차, 저는 오늘이 금요일인 줄 알았네요.' 하며 능글맞게 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기세 좋게 이런 습관을 만들고자 남들에게 공표한 지 2주 만에 그래버린다면 말 그대로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라 그러지는 못하겠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3주가 조금 지난, 거의 4주에 가까운 시간만에 머리를 자르게 되었다. <체크>에서는 내가 머리를 잘라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머리를 자르고 나면 얻는 효과에 대해서 방대하고 자세하게 작성했으나 -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 살이 익는 폭염 덕에 외출을 줄이게 되니까 왠지 머리 커트 비용이 아까워졌다. 학생일 당시에는 8,000원을 내고 머리를 싹둑싹둑 했는데, 어느새 동네 미용실 물가도 많이 올라서 자르는 데 30분 정도 걸리는 일반 남성 커트가 17,000원이 되는 시대가 도래해버렸다. 무척 슬프다. 흑흑. 그래도 머리카락이 소멸되는 편보다는 한 달에 34,000원을 내더라도 머리를 관리하는 쪽이 훨씬 좋으리라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동네 미용실은 예약제로 운영 중인데 오늘 가면 벌써 34번째 이용이다. 지금껏 500,000원이 넘는 돈을 이곳에서 써버린 것이고, 만약 내가 대전에서 1년을 더 살게 된다면 간단한 계산으로 거의 백만 원이라는 돈을 쓰게 되는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가. 쌓이고, 모이고, 응집하는 것들은 역시 소름 끼친다.



그러나 나의 돈이 가게의 잔고에 쌓이는 만큼, 나는 미용실 아주머니와 친분이 꽤 생겼다. ​지난번 방문, 그러니까 33번째 방문에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생겨버려서 내가 겪었던 황당한 면접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대화 내내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러곤 머리를 자르고 나오는 길에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하면서 꽤 비싸 보이는 쿨링 샴푸를 주셨다. 집에 와서 제품명을 검색해보니 2만 원이 넘는 제품이었다. 차라리 다음번 방문에 공짜로 해주셨을 면 더 좋긴 했겠다,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요즘 눈에 띄게 두피가 시원해졌다.



사실  미용실은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다. 아저씨도 계신데 머리부터 신발까지 굉장히 하라주꾸를 추구한(?) 스타일과 '찾아오신  머리는 별로예요.' 혹은 '마스크 답답하니까 잠깐만 벗어도 되죠?' 거침없이 말하는 솔직한 입담(?) 매력적인 분이시다. 그것이 프로의 자세라면 프로의 자세겠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와는 거리를 두는 편이라서 34번의 가벼운 만남이 있었어도 그분께  머리를 맡기지는 않았다. 나야  분과는 목례 정도밖에 하지 않는 사이고, 가벼운 대화조차 나눠  적도 없으니 철저히  입장에서만 이렇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그분에게 자신의 머리를 기꺼이 맡기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뭐랄까. 이는  편견일  있지만 대개 기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 '마스크  잠깐 벗을게요'라고 하면 ' 코로나 걸려서 죽으면요?'라고 받아치고, 그러고 나서 서로 깔깔거리는 대화를 옆에서 듣다 보면 내가 긴장하게 되어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굉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양분된다. 참으로,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다양하고 그렇기에 상호 보완적이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면 4시 반쯤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할 것이고, 마음에 드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세종시에서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곱창을 먹으며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혹여나 기분이 좋아져 이 이 글에 곱창 사진을 추가할 수도 있다. 온통 머리 얘기뿐이었지만, 뭐 그래도 주말이니까 찡긋하고 넘어가 줄 수 있는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느리고 반복적인 카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