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로 ‘49명 사망‘

1963년 여주 신륵사앞 남한강 조포 나룻배 침몰로 49명 익사

by 강나루

1963년 10월23일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 조포 나루터

찢어진 일기장

“내일 소풍을 간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륵사에 가면 참 재미있을 거야. 부처님도 있다고 하는데 무슨 소원을 빌까? 중학교 합격? 그렇지 않으면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무슨 선물을 사다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잠이 안 온다.”

일기장은 안양 흥안국민학교(초등학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녀

-1963.10.24. 경향신문 보도 자료 중에서-

1963년 10월 23일 신륵사 소풍을 마치고 귀가하던 흥안초등학교 5, 6학년 학생, 교사, 학부모 158명이 남한강 하류 조포나루에서 나룻배에 타고 가던 중 나룻배가 침몰하면서 4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원인에 대해 뱃사공은 아이들이 배에서 내리기 10미터 앞두고 몰리면서 뒤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뒤로 가면서 배가 기울어져 침몰했다고 했으나, 배에 승선했던 교감은 모터보트가 과속하였고 승선 인원도 70명인데 초과하여 158명으로 초과 승선한 것이 원인이라고 하였다.


배가 침몰했다는 통신이 알려지자, 의용 소방대 30명이 인명구조 활동을 하여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구조하였으며, 보건소 직원들도 출동하여 인공호흡을 통하여 절명 위기에 처한 어린이들 14명을 살려내었다. 또 인근에 주둔하던 미국 미사일부대에서 수색 등 구조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소풍’, ‘수학여행’이란 말은 모두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는 단어인데 왜 이런 슬픈 일이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을 분석한 일본 경찰은 이러한 평가를 하였다.

“한국인은 서류 작성 미비로 민원서류를 보완하라고 반려하면 억지를 쓰거나 떼를 쓰는 사람이 많다.”


우리 민족에게는 숱한 좌절과 고통이 있었다. 안 된다고 생각하던 것들도 기필코 해내는 의지의 민족이다. 그래서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이 쌓여서 안 되는 것도 떼를 쓰면 된다는 나쁜 습속이 생겨난 지도 모르겠다.

조포 나룻배도 70명 승선 정원인데 158명이 승선하려면 3번을 왕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뱃사공이 이 당시에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예전의 뱃사공은 전통적으로 천대받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뱃사공은 대부분 뱃일 외에 주막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생업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는 학교 교감이나 교장이 초과 승선을 요구한다면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여객선 선장은 운항 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운항을 중지하거나 운항하고 있더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회항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회사 사정이나 주변 상황들이 이러한 판단을 막고 있는 요소는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루'는 순우리말이며, 강이나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드나드는 곳을 의미한다. '나루터'와 함께 쓰이며, 과거 나루터가 있던 자리의 지명에 '나루'가 붙은 경우가 많다 (예: 잠실나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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