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선체 파공으로 기름이 유출되었다.
부산항에 정박 중인 유조선에서 선저 파공으로 기름이 유출되었다.
정박 장소에서 가까운 여객선부두로 기름띠가 흘러가서 가까이 정박 중인 여객선에 기름이 오염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해경이 출동하여 방제작업을 하였고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그 선박은 사고 1주일 전에 정기검사를 하여 합격 판정을 받았다. 배 길이는 24미터가 안되고 선령이 30년에 가까운 선령이 오래되고 크기가 비교적 작은 유조선이었다. 조선소에서 배를 상가 하여 검사를 하고 노후된 부분은 수리를 하고 배를 물에 띄워 검사를 꼼꼼히 하였는데, 기름유출사고가 나니 담당검사원 ‘김’(김모 검사원을 ‘김’으로 한다)은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하였다.
기름유출사고로 항만청에서는 사고 유조선 선주에게 수리 명령을 하였다. 선주가 수리에 대한 임시검사를 신청하여 조선소에 상가 된 배를 ‘김’은 검사하러 갔다. 기름유출된 부위를 보니 미세한 구멍이 있었다. 구멍 난 부분을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철판을 신환(새로운 철판으로 교환)을 하도록 소유주에게 지시하였다.
나중에 해양심판원에서 출두요청이 있었다. 조사관은 조금 키도 크고 풍채도 있는 인상이 좋아 보이는 분이었다. 먼저 차를 권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도하였다. ‘김”은 조금 편한 마음으로 조사를 받았다. 먼저 조사관은 ’ 김'에게 정기검사 때 어떤 항목을 검사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김’은 상가 해서 외판을 점검하고 갑판상태도 확인한다고 하였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난 후 조사관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정기검사 때 두께 계측은 하지 않나요?”
‘김’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24미터 미만 선박은 선체두께계측을 하지 않습니다.”
라고 답하니, 조사관은 ‘김’을 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김’은 선박안전법의 책자를 펼쳐 해당 조문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조사관은 선체 두께 측정을 하지 않고 어떻게 검사를 하는지 물었고, ‘김’은 망치로 외판을 두드려서 결함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하였다.
조사관은 조심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구멍 난 부분이 얼마 정도 크기였나요?
‘김’은
”구멍의 크기가 샤프심 크기 정도... 직경이 0.5밀리미터 정도 될 것 같아요 “
라고 말했다.
조사관은 다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벙커씨유 0.5 밀리미터로는 누유가 되지 않는데... 혹시 5밀리미터가 아닌가요? “
라고 재차 물었다.
‘김’은 0.5밀리미터이든 5밀리미터이든 상관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런가요? 그럼 그런 거 같습니다 “
라고 대답하였다.
모든 질문이 끝나고 마지막에 조사관은 이렇게 물었다.
”해야 할 검사가 많죠? “라고 물었고,
‘김’은 검사 업무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 같아서 반갑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럼요. 얼마나 검사 업무가 많은데요, 거리가 멀어서 운전하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많이 힘듭니다 “
나중에 조사가 끝나고 진술서를 프린트해서 ‘김’에게 보여 주었는데 구멍의 크기가 5 밀리미터이라고 했었던 부분과 바빠서 검사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진술서에 적혀 있었다. 바쁘다고 한 부분은 조사 외 여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이 진술조서에 적혀 있었다. 그전에 경찰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받을 때는 ‘김’은 빨간펜으로 하지 않은 말은 토씨하나 다 고쳤었는데 해양심판원 조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고치지 않고 그대로 서명을 하였다.
그런데 사무실을 나가는 순간, 조사관은 100리터 이상의 기름유출사고는 본심에 청구되며 ‘김’이 본심에 출두해야 한다고 하였다. ‘김’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고 배신감이 들었다.
재판 출두요청서가 우편등기로 배송이 되었지만 근무시간 중이라 우편을 받을 수 없었다. 퇴근 후 현관문에 우편물을 직접 찾으러 오라는 포스트잇 메시지가 붙여져 있었다. 회사를 마치고 우체국으로 등기를 찾으러 갔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우편물을 받았는데 몇 월 며칠까지 재판정에 출두하라는 출두요구서였다. 그 날짜에 맞춰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출두요구일이 다 되어서 약 2주 전에 다시 일정이 바뀌었다는 우편물이 접수되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김’은 우편물을 직접 수령하러 우체국으로 갔다.
이 날 이후 한번 더 재판 기일이 연기되었다.
드디어 재판일이 되었다. 좌석배치가 피고인 좌석에 나와 선주가 나란히 옆자리로 배정이 되었다. ‘김’은 참고인이 아니고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하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해양심판원은 재판정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재판장이 계셨고 재판장 우측에 주심판사, 좌측자리에는 부심판사가 좌석 배치되었고 재판관 앞에는 속기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맞은편자리에는 나를 조사했던 조사관이 앉아있었고 그 옆자리에는 재판을 진행하는 간사가 있었다.
먼저 주심판사가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피고인이 유조선 선저 파공부 구멍의 크기가 5밀리미터라고 했는데 맞나요? “
‘김’은 호흡을 가다듬고 단호하게 미리 준비한 대답을 하였다.
”조사받을 때 조사관님이 구멍의 크기에 대해 물어서 처음에는 0.5 밀리미터라고 말하였는데, 조사관이 벙커씨유는 그 정도 크기는 유출이 될 수 없다고 하며 5밀리미터가 아닌지 재차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
”그런데 상가 당시 찍어둔 사진파일을 열어 확인해 보니 0.5밀리미터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현상한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
그랬더니 주심판사가 재판정으로 가져오라고 하여 피고인석에서 걸어 나와 주심판사에게 제출하였다.
마지막으로 주심판사는 이렇게 물었다.
”검사업무가 바빠서 천천히 조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하였는데 맞나요? “
‘김’은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말하였다.
”그때 바쁘다고 한 것은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한 것이었고 이 유조선을 검사할 때는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검사하였습니다. “
라고 조사과정에서 실수로 잘못 말한 부분을 교정하여 대답하였다.
그다음에는 유조선 선주에게 질문하였다.
”그 배를 정박한 장소가 다른 배들과의 충격이 많나요? “
선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정박지가 평온하여 다른 배의 충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
라고 대답하였다.
‘김’은 유조선 선주의 답변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냐하면, 부산항은 겹겹이 배들을 정박하여 부두에 가까운 배가 출항을 하려면 다른 배를 부딪치며 밀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불안한 생각이 계속 들었다.
몇 달이 흘렀을까? 드디어 해양심판원에서 우편물이 왔다. 아마도 판결문인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결과서 처음에는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서술하였다. 그다음 피고인의 진술을 토대로 조사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재판 결과를 서술하였다.
판결문에서 판사는
"유조선의 깨진 구멍 부위가 0.5 밀리미터로 매우 작고 배 길이 24 미터 미만의 선박이기 때문에 선체두께계측의 의무가 없어, 검사원이 망치로 두드려 미세한 구멍을 찾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담당 검사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고 판결하였다.
‘김’은 약 1년의 기간 동안 마음 졸이며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아왔는데, 재판관이 현명한 판결을 해서 그동안의 고난과 힘든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