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 살던 촌놈에게 ‘물회'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집안 사정으로 학기 중 군대를 자원입대하였다.
해군의 세일러복이 멋있어 보여서 해군에 지원했다.
그런데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데 병무청 직원이 해군지원자 중에서 해양경찰 전경으로 지원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였다.
그때 TV에서는 SOS 해상구조대 드라마가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었는데 해난구조대원의 구릿빛 살결과 멋진 근육, 그리고 항상 구조대원의 옆에는 팔등신의 쭉쭉 빵빵 풍만한 여자 대원들이 있었다. 그 드라마가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에 겹치면서 여름 피서철 부산 해운대의 날씬한 비키니 여성을 구출하는 멋진 해양경찰의 그림이 머릿속을 스쳐서 갔고 나는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진해 해군 신병훈련소에서 해군과 같이 훈련을 받았는데 해군은 흰색 세일러복, 푸른색 군복 등 멋진 유니폼이 너덧 벌이나 지급되는데 해경 전경은 바지폭이 커서 허리가 헐렁하고 색깔도 푸르죽죽한 군복만 달랑 2벌 지급이 되었다.
고된 6주간의 훈련소를 수료하고 드디어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는데 내가지망한 부산이 아닌 강원도 속초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해양경찰 전경은 함정에 배치되면 졸병이 처음 하는 일이 식사 당번이었다. 식사 당번은 보통 중형 선박에서는 2인 1조로 식사 당번을 하게 되는데 취사장에서 말단졸병은 설거지 담당, 윗 선임은 요리를 하였다.
해경에서 제일 고된 생활이 식사 당번이었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9시 점호가 끝날 때까지 설거지와 요리, 배식, 청소업무로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거기다가 잠도 부족한데 선임들은 수시로 새벽에 집합(정의:작은 원소들의 모임)을 시키는 통에 더욱 잠이 부족하였다.
주된 집합의 원인은 졸병이 기합이 빠졌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루는 당직근무 중인 선임이 새벽에 식사 당번인 나를 깨우는데 잠결에 내 입에서 “아이 씨 bal”이라는 욕이 나와서 내 위로 선임들 집합해서 얼차려를 받았던 일이 있었다.
더구나 집안에서는 장남이라 군대에 적응하기는 더 힘들었다. 그중에서 제일 악질적인 선임은 포항 출신의 김상경(놈) 이었는데 지역특산물인 해산물을 선물 받은 날에는 온갖 솜씨를 발휘하여 선임들에게 요리를 대접하여 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졸병들에게 집합과 기합을 심하게 하여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김상경이 냉장고에 몰래 꼬불쳐 두었던 돼지고기(그 당시 명절 때면 가끔 지구대장님께서 함정에 돼지 반 마리를 하사하시곤 하였는데 그중에서 제일 맛있는 갈비 부위를 꼬불쳐 둠)를 누군가 구워 먹었는데 범인을 찾는다며 추운 겨울에 2시간 동안 원산폭격 얼차려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김상경(놈)은 몸매는 빼빼한 데 비해 식탐은 많아 자기가 특별히 챙겨둔 음식이 없어지면 그날은 식사 당번을 맡은 졸병은 초상날 이었다. 그러나 식사 당번이 냉장고를 자물쇠로 채워두어도 병사 중 누군가 자물쇠를 풀고 야간에 냉장고를 털어가는 데는 나도 미칠 지경이었다. 김상경이 챙겨둔 음식이 없어지는 날은 냉장고 관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식사 당번은 매번 얼차려를 받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상경이 외출해서 돌아온 날에 어선 출입항통제소(지금은 해양파출소) 의 후배에게서 문어 한 마리를 얻어 가지고 왔다. 얻어 온 문어를 내 앞에 툭 던져놓으며,
"오늘 선임들 소주 한잔하도록 물회를 맛있게 요리해서 가져와라”
하였다.
매번 요리 솜씨를 자랑하던 김상경(놈)이 그날은 왜 나한테 그 요리를 시켰을까? 아마도 그날은 피곤했었나 보다. '물회…'나는 군대 가기 전 뭍에서만 살던 완전 경상도 보리 문둥이, 촌놈이다. 입대 전 가끔 붕어탕, 메기 매운탕은 먹어 본 적이 있지만 바다 생선을 회로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더군다나 문어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문어는 또 얼마나 징그러운가? 만지는 느낌도 물컹물컹한 문어…
물회는 얼마나 생소한 단어인가?
회라면 촉촉한데 물하고 같이 먹다니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졸병이 선임에게 감히 물어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것도 모르냐고 또 맞을 일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계속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김상경은 다 되어 가냐고 함 내 전화로 독촉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결국 문어를 살짝 데쳐 접시에 담고 초장도 만들고….
그 요리, “물회”를 쟁반에 들고 갔다.
그런데 선임들 표정이 황당함, 당혹감 그 자체였다. 특히 김상경은 “ 어 이 새끼가 나한테 개기나?” 하는 표정을 하더니 “야 너 당장 올라가서 식당 창고에 꼬라박고 있어” 했다.
그 날 나는 쟁반에 삶은 문어와 초장, 그리고 국사발에 ‘물 한 그릇’을 담아서 갔다.
내가 곰곰이 생각했던 물회의 결론은 '물+회'였다. 순간적으로 회를 먹다가 보면 목이 메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물과 회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그렇게 그날의 물회가 탄생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독종 김상경에게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았다.
요즘은 누군가 점심때 물회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좋다고 따라나서는 걸 보면 인간은 정녕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포항 물회, 인천 물회, 삼천포 전복물회, 부산 물회를 다 섭렵하였으며, 가끔 물회를 먹다가 그때 생각을 하면 실실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