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전과가 있는 일본 중개업자와 한국 중개업자가 만났을때..
수입 중개업자 박사장이 후쿠시마에 유조선 승리호(가명)를 한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임시항해검사를 신청하였다. 검사를 신청한 중개업자 박 사장은 검사기관에서 기피인물로 알려졌다. 왜냐하면 그가 가져오는 배들이 일본인 양식장을 침범하여 손해를 입힌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상적으로 운항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니고 2척을 묶어서 이동하다가 조종 불량으로 양식장을 침범하여 양식장 그물을 찟어지는 사고가 났고, 이 사건으로 담당 검사원은 참고인으로 일본 법정에 출두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검사원들이 기피 1호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승리호의 임시항해검사는 경험이 많은 김 검사원이 담당을 하게 되었다. 박 사장은 일본어를 하지 못해서 항상 통역을 하는 김 이사와 동행을 하였다. 김 이사는 동경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라고 소개하였다.
승리호는 배 길이가 24미터가 되지 않는 소형유조선이었다. 일본에서는 주로 항구 안에서 기름을 운송하던 선박이었다. 후쿠시마 승리호 검사를 위해 김 검사원과 박 사장, 김 이사 세 명이 일본행에 동행하였다. 검사를 위해 후쿠시마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겨울이어서 상당히 추운 날씨였다. 선박이 접안해 있던 곳은 후쿠시마 어느 철공소였다. 철공소에서는 폐선박에서 중고 부품을 분해해서 판매도 하고 중고 선박도 판매하였다.
첫째 날, 철공소에 도착했을 때 철공소 사장과 공장장이 있었다. 검사를 위해 일본 측 중개업자와 선원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늦어진다고 연락이 왔고, 둘째 날 도착한다고 하여 첫째 날은 공장 위치만 파악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둘째 날, 일본 측 중개업자 “요시무라 상“과 선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후 4시가 다 되어서 나타났다. 그런데 선박 레이더가 작동되지 않았다. 김 이사가 수리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했고 그날 저녁 늦게까지 기다렸으나 수리가 되지 않았다.
셋째 날, 아침까지도 레이더 수리가 되지 않았고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검사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을 하였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후 박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승리호 검사 준비가 되었다고 다시 검사를 신청하였다. 이번에 자기는 갈 수 없으니 김 이사와 같이 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 이사는 해양에 대해서 문외한이어서 검사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였더니 일본 측에서 전문가들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였다.
다시 승리호 검사를 위해 후쿠시마로 떠났다. 정박지가 있는 장소는 번화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까운 주택가에서 숙박하였는데 그 여관은 예전 1990년대 여인숙과 비슷하였다. 방이 8개에서 10개인데 화장실과 욕실은 하나였다. 아침과 저녁은 추가 요금을 내면 제공하였는데 일본 가정식 이었다. 나물 반찬이 몇 가지 상보로 덮여 있었고 보온밥솥에서 밥을 떠서 먹었다. 후쿠시마 내에서 숙소는 방사능 오염지역은 아니었지만, 인근에 공사 현장 노무자 투숙객 외에 여행객은 없는 것 같았다.
김 검사원이 검사를 위해 철공소에 도착하여 일본 중개업자와 선원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일본 중개업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통화 시도한 끝에 통화가 되었는데 그는 병원에 있다고 하였다. 건강검진 결과 “암”이 발견되어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였다.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그래서 본인은 갈 수 없으니 선원을 보내었으니 검사를 마치고 배를 한국으로 이동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전에 약속했던 선박 레이더도 수리가 되지 않았다.
철공소에서도 빨리 배를 한국으로 보내어야 선박 보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철공소 사장은 거래처 레이더 수리업자에게 연락하여 수리하도록 하였다. 수리를 마친 후 김 검사원은 기관 시동, 항해 장비 작동상태를 점검하고 임시항해검사 증서를 발행하였다.
일본에서는 대리점에서 일본 내 행정 처리를 담당하여 선박 통관 처리를 대신 하여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행정사가 이러한 일을 대신하여 줄 수 있으나 해사 업무에서는 행정사를 통하여 통관 처리를 대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김 검사원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김 이사가 말하기를, 세관 담당자가 선박 통관 서류를 제출할 때 검사원 참석을 요청하였다고 하였다. 여태까지 그러한 일이 없었기에 거절하였으나 김 이사가 간곡히 요청하여 세관을 방문하였는데 특별한 질문 없이 검사원을 확인만 하고 통관 서류를 처리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김 이사가 선박 통관할 때 대리점의 통관 수속비를 아끼려고 본인이 직접 서류를 작성하였고 세관은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통관 서류를 제출하니 미덥지 않아서 여러 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고, 또 검사원이 입회한 사실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방문을 요청한 것 같았다.
p.s : 일본에서 선박 통관 수속은 대리점에서 담당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특히 규모가 큰 대리점이 통관 수속을 맡으면 일본 항만국 검사도 수월하게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승리호가 항해하여 한국으로 무사히 도착하리라 생각하였는데, 며칠 후 해양수산부로 일본 항만청에서 메일이 왔다. 그 내용은 승리호가 일본에 무단정박하고 있으니 빨리 한국으로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확인 결과 승리호는 후쿠시마에서 조금 떨어진 항구에 접안되어 있었다. 선원들이 겨울철 기상이 악화하자 장거리 항해에 겁을 먹고 가까운 항구에 배를 접안해 놓고 떠났던 것이었다.
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승리호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비용을 포함해서 매매계약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이유를 추측해 보면 선원들에게 착수금, 이동 완료 시 임금 등에 대해 구체적인 계약하지 않았거나, 선박 이동 계약금이 턱없이 낮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몇 달 후 다시 승리호의 임시항해검사 신청이 접수되었다. 이전에 담당했던 김 검사원이 다시 승리호 접안된 항구로 갔다. 접안장소에 도착했을 때 선원도 없었고 기관실의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김 이사가 철공소 사장에게 전화하여 이전 기관장을 불러준다고 하였다. 나중에 기관장이 왔고 기관 시동, 항해등 작동 검사를 마쳤는데, 일본 항만청에서 검사관들이 여러 명 왔다. 그들도 빨리 이 배를 가져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담당자는 일본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개업자 박 사장이었다. 검사관들은 김 이사와 김 검사원을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문제가 되면 증거로 사용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난 후 한국에서 선원들을 고용하여 배를 한국으로 이동하였다. 마지막 검사를 할 때는 가을이었다. 겨울에 검사를 처음 시작하여 가을에 검사를 마치게 되었다. 처음 검사를 하고 개월 수로는 아마 9개월이 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배가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 2년이 지난 후에 김 이사에게 일본중개업자 요시무라 상에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암에 걸려 사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요시무라 상은 일본에서 사기전과가 3번이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 사장도 작은 소송으로 전과가 2번 이상 있다고 하니 사기꾼이 사기꾼을 만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배는 수입 부대비용을 제외한 선박 가격이 불과 5,000만원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고철처리하는 선박을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10년이 지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