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후 처음으로 취업한 조선소
공과대학교 조선공학과 4학년, 내신성적이 좋은 친구들은 대기업 중공업에서 추천서를 받아서 취업하였다.
성적순으로 취업하다 보니 성적이 조금 모자란 학생들은 뒷순위로 밀렸다. 내게도 3순위로 추천서가 왔다. 마산에 있는 중견 조선소 였다..
서류심사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조선소에 미리 취업을 한 선배의 연락처를 받아 들고 무작정 전화를 했다. 면접을 보는데 미리 정보를 얻고 싶다고 했다.
집으로 오라는 선배의 허락을 받고 찾아갔다. 선배의 조언이 조금 도움이 되어 면접을 볼 때 예상 질문이 적중했다.
그때 아마 배수량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설명하며 잘 답변하였다.
몇 달 후 자취방에서 쉬고 있는데 주인집에서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전화를 받았는데,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고 너무 기뻤다.
입사해서는 우리 회사가 국내 최초의 군함 제조사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외주업체 사무실이 있었고, 왼쪽에는 잔디밭이 있었는데 잔디밭에는 시험용으로 제작된 모형 공기부양선이 나뒹굴고 있었다. 잘 보관하면 좋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냥 잔디밭에 아무 보호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가끔 공기부양선이 수리를 위해 입항할 때가 있었는데 요란한 비행기 소리를 내는 공기부양선이 입항할 때면 주변 작업자들이 양동이를 들고 가는 이유를 몰랐다. 알고 보니 공기부양선의 공기 가림막 안으로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하고 육지 밖으로 끌어올려지면 그것을 줍기 위해서였다. 제법 씨알이 굵은 고기가 올라오곤 했었다.
그리고 잠수정을 ‘돌고래’라고 불렀는데 ‘돌고래’가 상가하면 천막으로 둘러쳐서 보안을 유지하여 특수선공장으로 조선소 바닥에 설치된 미끄럼 레일을 이용해 유압잭으로 밀면서 ‘돌고래’를 이동하였다.
조선소 야드에는 잠수정의 내압 동체 시험을 위한 시험수조가 있었다.
알루미늄공장에서는 공병대에서 교량을 설치하는 데 사용하는 보트를 양산하였다. 그 당시 알루미늄선박 유일한 제조사 였다.
알루미늄보트를 양산하기 위해 특수제작한 크레들을 이용했는데 작은 아이디어였지만 보트를 양산하기 굉장히 적합한 크레들이었다. 보트를 걸대에 걸면 보트를 2명이 함께 뒤집을 수가 있었다. 매번 크레인을 이용해야만 뒤집을 수 있었는데 그 크레들이 있어서 2명이 가볍게 뒤집는 것은 굉장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당시 여객선의 수리조선 소로도 유명하였는데 홍도를 오가는 여객선 중에 수중익선 ‘엔젤호’가 있었다.
수중익선은 고속으로 항해하면 선수에 설치된 활주대가 부양하면서 날아가듯이 고속으로 항주하였다.
엔젤호가 입항하면 기관을 수리하기도 하지만 선체에 붙어있는 따개비, 어패류를 씻어내고 도장을 새로 한다.
그런데 새로 깨끗이 도장을 한 후에 그 배가 속도가 이전보다 떨어진다는 항의가 있었다.
제작사에 연락을 취해 해결 방법을 모색하였는데 원인이 아마 스프레이도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작사 기술부에서는 스프레이도장 후에 선박의 길이 방향으로, 붓으로 결대로 도료를 도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다시 배를 들어 올려 붓으로 새로 도장을 한 후에 항해시운전을 해보니 이전과 같은 고속으로 항주할 수 있었다.
지금은 조선소가 사라지고 그 장소에 건물이 지어지고 도로가 들어섰지만, 기능공들과 설계 인력은 지금의 ‘HJ중공업’에 남아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진그룹에서 매각하여 H J 그룹에서 인수하여 지금의 ‘HJ중공업’이 되었다.
내가 은퇴하면 포장마차에서 오래된 친구와 술 한잔하면서 내가 옛날에 ㅇㅇ에 근무했는데 말이야…. 하면서 옛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겠다. 제일 꼴불견이 “내가 왕년에….”라고 하는데, 그래도 좋았던 기억을 되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가끔 마산에 지나가면 그 장소를 가보지만 그곳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쓸쓸히 엘리베이터도크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