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의 시작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새벽에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지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하였다

by 강나루

2003년 6월 11일 밤 노조위원장 김주익은 85호크레인으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하였다. 크레인 주위로 수십명의 한진중공업 사수대가 호위를 하였다.


2003년 10월 새노조가 설립되면서 노조원이 이탈하여 노조조합원이 200명으로 줄었다. 사측은 김주익 외 노조간부들에게 수억원의 업무방해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압박을 이기지못해 2003년 10월 17일 김주익 위원장은 크레인 기둥에 목을 매달아 자결하였다.


노조에서 노조위원장 장례식을 노동조합 상으로 치렀다. 노동자들이 노조위원장의 상여를 메고 영도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그 후로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이어지던 때, 2011년 1월 6일 새벽 전 조합원 김진숙이 크레인으로 올라가 해고 철폐 농성을 시작하였다.


김진숙은 1981년 10월 대한조선공사(후 한진중공업으로 사명 변경) 에 입사한 여성 최초 용접공이다. 1986년 7월 14일 노동조합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이유로 징계해고되었다.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가자, 노동자들이 크레인을 지켰다.

노조 사수대는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을 위해 식량을 밧줄에 매달아서 조종석 위로 올려주었다.


농성이 길어지자, 뉴스에 보도가 되고 이슈가 되었다.

크레인 맞은편 도로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크레인을 향해 매일 절을 올리는 사람도 생겼다.


한진중공업 사측에서는 건설 노동자와 같이 조선 노동자도 강압적으로 압박하면 이기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압박하면 할수록 한진 노조는 더 격렬히 저항하였다.

노조에서 크레인 기둥에 노동자가 힘차게 깃발을 흔드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크레인 기둥을 덮을 만큼 큰, 대형 걸개그림을 걸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형 걸개그림은 전쟁 반대, 자본가 노동자 착취 반대를 외치던 목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그림처럼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법무부에서 영장을 가지고 크레인 진입을 시도하였다. 노조에서 몸으로 막아서자, 여러 명이 팔과 다리를 잡고 끌어내었다. 투쟁가를 부르며 저항하는 노동자와 경찰, 법무부 직원들의 대립이 이어졌다.


크레인 농성이 시작되자 전국의 민주인사들이 지원을 시작하였다.

2011년11월6일 각지 응원 세력을 싣고 한진중공업 정문 앞으로 희망 버스가 도착하였다. 응원 군중들은 크레인 주변으로 모였고, 확성기를 틀며 정리해고 반대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총 노동자, 운동가들이 한진중공업 담벼락을 넘어 민주 광장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박기완 어른도 여기 참석하였고 민주당 정동영 의원도 희망 버스 집회에 참석하였다.


2011년 7월 2차와 3차의 희망 버스가 도착했다.


2011년 7월 30일 3차 희망 버스가 지원을 시작할 때, 희망 버스를 반대하는 보수단체 어버이연합의 집회가 영도에서 열렸다. 어버이연합과 희망 버스 단체와 충돌이 있었다.


나중에 언론보도는 어버이연합이 국정원의 지원으로 설립되고 육성된 단체라고 하였다.

2011년 11월 10일 노사 합의로 85호크레인 농성이 종료되었고, 2011년 1월 6일부터 시작된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김진숙은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다.


김진숙이 내려오자, 한진중공업 윗선에서 85크레인을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한 많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스가 프로젝트로 대기업 조선소와 중견기업 조선들의 일감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14년이 지난 지금 2025년 조선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많이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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