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오케스트라 '멘털 관리' 생활
프로 오케스트라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차이점 중 하나. 프로 악단에서는 단원들이 급여를 받지만, 아마추어 단원들은 회비를 낸다는 것이다. 나 또한 최초 입단 이후로 매월 회비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
오디션? 물론 없었다. 악기 연주 경력 등을 묻는 간단한 서류 작업으로 오디션을 갈음했다. 악기를 조금이라도 다뤄본 모든 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다.
그렇다고 실력이 형편없을 거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바이올린 파트만 하더라도 악장을 비롯해 몇몇은 음악 전공자다. 게다가 음대를 졸업한 뒤 다시 악기를 잡은 단원,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계속 연주한 이들의 실력도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나처럼 뒤늦게 악기를 익혀 악단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굴욕’이라는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 나의 대표적 굴욕 하나를 소개하겠다. 올해 여름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두고 진행된 연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악단 소속의 여중생—어쩌면 초등학생이었을지도 모를—연주자와 한 폴트를 이루게 됐다. 우리가 연습한 곡은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와 반야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엮은 <탱고 바이러스>였다. 지휘자 선생님이 편곡한 작품이었다.
이 곡의 시작 부분은 <리베르탱고>의 첫 패턴과 동일했다. 바이올린이 8분음표를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며 흐름을 이끈다. 그렇다. 16분음표도 아닌, 고작 8분음표의 무한 반복이다. 그런데도 지판 위의 내 왼손과 활을 쥔 오른손은 글자를 더듬거리며 읽듯 더디기만 했다.
옆자리 연주자를 힐끔 바라봤다. 활이 일정한 속도로 매끈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 학생의 머릿속에는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연주하던 아저씨로 각인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 친구는 내가 연주를 잘하던 못하던 1도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굴욕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막상 겪어보면 충분히 견딜 만한 순간도 적지 않다. 게다가 다른 단원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라면, 내가 굴욕이라 여겼던 일도 사실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바이올린 조율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전문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을 턱과 어깨 사이에 끼운 채 왼손으로 펙(줄감개)을 휙휙 돌린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활을 쥐고 현을 그으면서 제소리를 찾아간다. 나에게는 이런 장면이 여전히 '넘사벽'이다. 그래서 혼자 조율할 때는 튜닝 앱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를 스스로 조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악기 파트별 연습 시간에 그 착각이 단번에 깨졌다. 어떤 단원은 악장에게 자신의 악기를 덩그러니 맡기며 조율을 부탁하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나 역시 내 바이올린을 악장에게 통째로 맡겼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그랬던가.
처음부터 겁먹지 말자. 막상 가면 아무것도 아닌 게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그녀의 말은 오케스트라 새내기 단원에게도 통했다.
종합하면 나의 오케스트라 입단 첫날 목표, 생존의 방법은 '멘털 관리'에 있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합주 중 틀리거나 못 따라갈지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굴욕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신념을 내재화한다고 할까. 일부 단원들의 사례도 이를 입증했다.
어느 날은 바이올린 파트에 새 단원이 합류했다. 30대 남성인 이 분을 오케스트라 사무장님이 특별히 내 옆자리에 앉히셨다. 바이올린 파트에서 남성 단원은 특히 귀하다. 제1, 2바이올린을 통틀어 남성 단원은 나를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나에게 잘 대해주라고 특별히 부탁하셨다.
그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다가 “한 번쯤 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놀랍게도, 우리 단체를 추천해 준 것은 챗GPT였다. 이제는 취미 활동도 AI의 도움을 받는 시대가 됐구나 싶었다.
더 놀라웠던 점은 그가 바이올린을 손에 쥔 지 겨우 수개월 됐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레슨을 받는 것도 아니라 독학으로 익히는 중이라고 했다. 이날 우리는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1번 G장조, K.313> 1악장을 처음 연습했다.
사실 협주곡은 솔로 연주자가 주인공인 만큼, 다른 악기 단원들에게 쏠리는 관심은 자연히 줄어든다. 이 곡도 당연히 모든 조명이 플루티스트에게 향하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제2바이올린 반주 파트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합주가 이어지는 내내 그의 당혹스러움과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첫 한 시간이 지나자 그는 악기를 정리해 들고 조용히 합주실을 빠져나갔다. 그 후로는 오케스트라에서 그를 보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아 남은 연습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수개월째 참여 중인 나조차 흔들렸으니, 첫날이었던 그에게는 얼마나 벅찬 시간이었겠는가.
그는 모를 것이다. 제2바이올린 파트에서는 이 곡에 대한 원성이 점점 높아졌다는 사실을. 모차르트는 졸지에 우리들의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다. 결국 지휘자 선생님은 악보를 간소화해 다시 내주셨고, 그제야 부담이 한결 덜어졌다. 부디 언젠가 다시 그를 합주실에서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반면 정신줄을 단단히 잡는 것을 넘어 즐기는 경지까지 도달한 단원도 있었다. 나도 이 스토리를 전해 들었을 뿐 주인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지금은 아마도 그 단원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잠시 멈췄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정기 공연을 마친 뒤 한 삼겹살집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나는 집게로 불판 위의 삼겹살을 뒤집으며 오케스트라에서 수시로 뒤집혔던 나의 유리 멘털에 대해 털어놨다. 그러자 한 단원이 위로하듯 말했다.
어떤 분은요,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았지만, 정기 공연까지 너끈하게 참가하시기도 했어요. '활싱크'를 하더라도 본인은 무척 즐겁게 하더라고요. 연주하실 때, '다른 사람들도 나하고 똑같다'는 마인드로 당당하게 하세요.
프로 오케스트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풍경이다. 실력이 다소 부족해도 문은 열려 있고, 단원들은 서로를 기다려주며 함께 성장한다. ‘아마추어’는 라틴어 amator, 곧 ‘사랑하는 사람’ 혹은 ‘어떤 것을 열정적으로 좇는 이’에서 비롯된 말이다. 어쩌면 음악을 향한 그 애정이 이런 너그러움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승자는 두 번째 단원이다. 지금 부족해도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다 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시작해 보려는 태도—그 자세가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가수 싸이는 그의 노래 <챔피언>에서 이렇게 열창한다.
소리 지르는 니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니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니가 (챔피언)~
그의 노래는 오케스트라 새내기 단원에게도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