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당당하게, 우아하게 틀릴 수 있도록
지난 글에서 내가 겁도 없이 바이올린을 잡았던 이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 오케스트라 입단을 위해서였다. 올해 3월 바이올린을 잡은 지 정확히 7년 만에 나는 그 꿈을 이뤘다. 인생이 그렇듯이 한 번 성취한 목표는 또 다른 목표를 불러온다. 나는 오케스트라 입단 첫날 새 목표를 설정했다.
처음 바이올린 교습소 문을 두드리던 때처럼, 나는 조심스레 합주실 문을 밀었다. 약간 텁텁한 공기 속을 청소년 단원들의 연주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오케스트라는 청소년과 성인 단원이 함께 활동하는 곳이었다. 성인 단원 합주 시작 30분 전, 오케스트라 분위기를 미리 익혀보려고 조금 일찍 찾아온 참이었다.
‘ㅇㅇ심포니오케스트라’는 아마추어 악단이지만, 이름값 그대로 완전한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이었다. 지휘자를 중심으로 ‘좌바이올린·우첼로’가 첫 줄을 이루고, 그 뒤로 목관과 금관까지 층층이 배치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귀를 흔들어놓는 장엄한 음색에 나도 모르게 압도됐다.
'아, 정말 오케스트라에 들어왔구나.' 그 생각이 스치자 긴장감이 서서히 밀려왔다.
성인 합주 시간이 되었다. 나는 제2바이올린 파트에 배정돼 자리에 앉았다. 악보를 펼치는 순간, 잠시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의심했다. 나의 기를 한순간에 꺾어놓은 곡들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슈베르트 <교향곡 3번>, 그리고 로시니 오페라의 <윌리엄텔 서곡>이었다. 악보 위에서 어지럽게 춤추는 음표들을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속으로만 비명을 질렀다. ‘이걸 연주하라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바보였다는 사실을. 교향곡을 영어로 '심포니(Symphony)'라고 한다. 심포니오케스트라라면 당연히 교향곡을 연주해야 한다. 치킨집 간판을 걸어놓고 치킨을 팔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단순한 이치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우리 오케스트라는 매년 정기 공연 때 교향곡 한 곡을 연주 목록에 꼭 넣는다고 했다.
지휘자 선생님의 지휘봉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훗, 7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여기서 드디어 보여주겠군’ 같은 회심의 미소는, 물론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현 위에 활을 갖다 대는 것조차 두려웠다. 정확한 음을 내지 못해 큰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마 그 순간 내 바이올린 소리는 모기 날갯짓보다도 작았을 것이다.
최악의 순간은 눈으로도 악보를 따라가지 못할 때였다. 정말로 음표의 미로 속에 갇힌 듯했다. 머릿속에서는 ‘난 누구, 여긴 어디?’만 맴돌았다. 그럴 때면 나는 활을 현에 붙인 채 부동자세로 악보만 뚫어져라 노려볼 뿐이었다.
물론 지금도 연주 중 파트를 종종 놓치지만 그때처럼 완전히 얼어붙는 것은 아니다. 활을 계속 움직여 마치 연주하고 있는 듯 보이게 만드는 고급 기술, ‘활싱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악보에서 길을 잃는 일은 여전히 오케스트라에서 나를 괴롭히는 난제다.
이쯤에서 앞서 말했던, 오케스트라 입단 첫날 세웠던 목표를 밝혀야겠다. 제2바이올린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솔로 파트를 맡아 화려하게 무대에 서는 것? 더더욱 아니다.
내 목표는 단 하나, 이 악단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일단 어떻게든 버틴 뒤에, 그다음 목표는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우리 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앞머리 쪽에 브리치를 넣은 듯한 몇 가닥의 흰머리였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은발의 웨이브로 유명하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철회색 머리와 인상적인 구레나룻을 지녔다. 두 사람 모두 헤어스타일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휘자들이다. 문득 ‘지휘자들의 헤어스타일에는 저마다의 카리스마가 스며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케스트라를 주제로 제작된 드라마를 보면 호랑이 같은 지휘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예사고 인격 모욕에 가까운 말을 서슴지 않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 지휘자 선생님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처럼 단원들에게 “똥. 덩. 어. 리.”라고 부르진 않으셨다.
물론 그는 단원들의 연습이 부족하다고 느끼실 때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더욱 그랬다. 특정 구간을 짚어 반복해서 주문하고, 악기 파트별 연주를 여러 차례 시키는 일이 잦았다. 한 번은 “계속 연습을 안 해오시면 한 명씩 따로 연주를 시켜볼 겁니다”라고 엄포를 놓으신 적도 있었다. 내가 참석한 연습에서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 안도했다.
새내기 단원인 나로서는 지휘자와 가까운 곳에 앉아 연주하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없었다. 당연히 실력이 월등한 연주자들부터 앞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악장이 지휘자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다. 나는 세, 네 개의 폴트(2명씩 앉는 한 줄 데스크) 중 맨 마지막 폴트를 선호했다. 그런데 간혹 너무 일찍 도착하거나 단원들의 출석이 저조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은 합주실에 평소보다 5분 일찍 도착했는데, 제2바이올린 단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늘 그렇듯 가장 뒤편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날은 사람이 적다며 더 앞으로 옮겨 앉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마치 교회 예배에서 뒤쪽에 앉았다가 목사님의 권유로 앞으로 이동할 때 느끼는 묘한 어색함과 비슷했다. 결국 그날은 두 번째 폴트까지 전진해 앉게 되었다.
또 다른 날에는 2시간짜리 연습 중 개인 사정으로 절반만 연습하고 나가는 단원들이 몇 명 있었다. 자연스럽게 앞자리가 비었고, 나는 처음으로 지휘자 바로 앞에 앉게 됐다. 그의 시선이 온통 내게 향하는 듯해 활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뒤로 나는 이런 상황을 교훈 삼아 합주실에 너무 일찍 도착하지 않으려 했다. 간혹 조금 일찍 도착하면 합주실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천천히 들어갔다.
그래도 우리 지휘자 선생님은 연주 실력과 상관없이 연습 때만큼은 소리를 최대한 크게 내라고 늘 강조하신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습 때 틀려도 괜찮아요. 자신 있게 하세요. 어차피 다 틀리고 있잖아?”
이 말에 나는 속으로 빵 터지고 말았다.
“실제 공연에서 틀릴 거예요? 연습할 때 틀려봐야죠.”
듣고 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다음번부터는 조금 더 당당하게 틀려보려고 한다. 물론 그전에 개인 연습부터 성실히 해야 한다. 그래야 감이라도 잡고, 눈이 악보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