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것이었다가 내 것이 된 바이올린
작가 김훈이 쓴 <자전거 여행>에서는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자전거가 등장한다. 바람을 가르는 바퀴라는 뜻이다. 풍륜의 페달을 힘껏 굴리면서 전국 산천을 누비던 김 작가가 부러웠다. 풍륜은 수명을 다 할 때까지 그의 듬직한 벗이었다.
나 또한 그런 멋을 한 번 부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바이올린을 '장금'으로 명명했다. 긴 장(長) 자에 거문고 금(琴) 자다. 내가 이 녀석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아무쪼록 오랫동안 함께 가자는 의미다. 드라마 <대장금>처럼 이 악기와의 인연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악기는 고등학교 시절에 산 포크기타였다. 하지만 흥미가 식어가자 그 기타는 방 한구석에서 점점 잊혀 갔다. 결국 몸체가 상해 채 10년도 버티지 못한 채 요절하고 말았다. 그런 불행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 바이올린에 ‘장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 중 하나다.
레슨에 처음 등록했을 때는 교습소에 비치된 공용 바이올린을 사용했다. 이 까다로운 악기를 배우다가 성질만 버리고 중간에 그만 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선생님은 <시노자키 1권>을 뗀 뒤에 나에게 선물하는 셈 치고 악기를 구입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작은별>을 연주해 낸 뒤 마침내 그때가 찾아왔다.
사실 장금은 중고 바이올린이다. 실력도 변변치 않은데 처음부터 값비싼 새 악기를 살 이유는 없었다. 장금은 효정악기사가 제작한 'HV-100' 모델로 대표적인 입문자용이었다. 그러니 전 주인도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분명했다.
왠지 주인을 한 번 갈아탄 장금의 운명이 기구하게 느껴졌다.
"첫 주인은 왜 장금을 내놓았을까? 바이올린이 너무 어려워 중도에 포기했을까? 아니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레슨을 이어갈 수 없었던 걸까?"
별의별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영화 <레드 바이올린>처럼 장금이 어떤 저주를 품고 있어 나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뭐 가끔 이 녀석 때문에 수차례 좌절은 했다. 하지만 원래 예술의 길이 멀고 험하지 않던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장금을 조심스레 꺼낼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앞뒤 표면은 전형적인 황갈색 계열이었지만, 목 부분만은 유독 밝은 톤이 눈길을 끌었다. 매끄러운 상판에는 유광 코팅이 고르게 남아 있어 은은한 광택을 뽐냈다.
교습소의 공용 바이올린은 많은 사람이 쓰다 보니 현이 지판에 거의 붙을 듯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장금의 현은 적당한 높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울릴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활 역시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았다. 활털 조임쇠를 돌리자 털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f홀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봤다. ‘스리랑카에서 수제로 제작됐다’는 글귀가 적힌 라벨이 눈에 띄었다. 보통 바이올린의 앞판은 가문비나무, 뒤판과 옆판에는 단풍나무를 사용한다. 가문비나무는 북반구의 한랭·온대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스리랑카에서 구할 수 없다.
나의 추측은 이렇다. 아마도 장금의 앞판 제작은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가문비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스리랑카의 한 악기 제조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독일산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를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지판이나 목 부분에는 현지의 열대수목이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장금은 선생님의 ‘소리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날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를 손에 넣었더라도 이 만큼 기쁘지 않았으리라. 나는 마치 전문 연주자가 된 듯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턱을 당당히 치켜들었다. 새 식구를 집에 맞아들이는 듯한 설렘도 가득했다.
하지만 곧바로 아내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악기 구입 과정 자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 왔기 때문이다. 세 살배기 아들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활이라도 부러뜨리는, 끔찍한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결국 한동안 집 안의 ‘비밀 장소’에 조용히 숨겨뒀다.
나는 연습을 하다 딱 한 번, 장금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화장실에 가려고 크루아상처럼 말린 소용돌이 장식 부분을 보면대에 걸쳐 뒀다. 다시 악기를 집어 들려다 그만 손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수직 낙하하고 말았다. 그때 나는 아이를 떨어뜨린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응급실을 찾는 마음으로 교습소 근처 악기사에 장금을 들고 갔다. 사장님은 턱받침을 분리한 뒤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의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네요. 그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장금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지금도 악기를 들 때마다 늘 마음에 걸리는 곳이 있다. 왼쪽 f홀 아래에 생긴,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금. 못난 주인을 만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가슴이 짠해진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초보자인지 단번에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바이올린 지판에 가로로 붙어 있는 ‘포지션 스티커’의 유무다. 초보자의 악기에는 보통 4개의 평행한 선이 붙어 있다. 이 선들은 가장 낮은음을 내는 현(G)부터 최고음 현(E)까지 특정 음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다.
물론 초보도 정도가 조금씩 다르다. 네 줄 모두 붙여 두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실력이 어느 정도 붙으면 '3포지션'의 기준이 되는 세 번째 선만 남겨두는 경우도 있다. 입문자에게는 오로지 손과 귀의 감각으로 정확한 현을 짚기가 쉽지 않다. 이 스티커는 바로 음정을 찾게 도와주는 보조장치 역할을 한다.
처음 장금의 지판에도 4줄의 노란색 스티커가 선명했다. 그런데 수년간 사용해서 그런지 4개의 스티커 중 펙(줄감개)에서 가장 가까운 놈이 먼저 떨어져 나갔다. 이어 두 번째와 세 번째 스티커도 절반이 뜯겨 나갔다. 온전한 선은 네 번째 스티커뿐이다.
처음 스티커가 하나둘 훼손됐을 때, 다시 이어 붙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스티커가 떨어졌다고 해서 연주가 불가능해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참에 모두 떼어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저 아직 초보예요"라고 외치는 듯한 표식을 달고 있는 것도 탐탁치 않았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면 ‘초보운전’ 딱지를 떼어내는 것과 같은 심리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 연습하다 음정이 이상하게 들리면 본능처럼 지판을 흘끗 바라보게 된다. 손가락이 정확한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평소대로 장금을 사용하다가 스티커가 자연스럽게 모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빠진 유치를 억지로 다시 끼워 넣지 않듯 스티커도 더는 붙이지 않기로 말이다.
스티커가 떨어져 나간 자리는 검정 코팅이 벗겨져 허연 속살이 드러났다. 언젠가 이 녀석 지판을 다시 코팅해 줘야겠다. 이 상처들이 그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새겨진 흔적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마저도 우리 동거의 기록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