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바이올린 입문자의 생존기
초등학교 때 잠시 피아노를 배웠을 뿐, 내 팔자에는 더 이상 악기와 인연이 없을 거라 여겼다. 물론 교회에서 형들 어깨 너머로 기타 기본 코드를 익힌 적은 있다. 하지만 그건 속된 말로 ‘야메’였으니, 악기를 배운 경험이라 치기도 민망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상상도 못했던 악기와 7년째 동거 중이다. 그것도 ‘악기의 여왕’,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 정말 어려운 악기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어땠을까. 자신 있게 배우겠다고 나섰을지 장담할 수 없다.
바이올린 교습소 문을 처음 두드린 건 2018년 3월이었다. 만 세 살 아들을 데리고, 아이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클래식 공연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변 아이들이 울고 뛰어다니는 산만한 분위기였지만, 그 공연은 나에게 특별했다. 내 생애 첫 오케스트라 관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나는 클래식을 ‘듣는’ 음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연주자들의 손과 표정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전혀 다른 경험이 찾아왔다.
‘아, 음악은 눈으로도 들을 수 있구나.’
그날 이후 집에만 오면 홀린 듯 유튜브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찾아봤다. 예전에도 심야 시간대 TV를 보다 우연히 클래식 방송을 스친 적이 있다. 늘 몇 초 만에 다른 채널로 넘겼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특히 그날 공연장에서 들었던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몇 번이고 반복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결심이 찾아왔다.
‘바이올린을 배워야겠다.’
오케스트라에 악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하필 바이올린이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지휘자의 왼쪽에 듬직하게 자리 잡은 바이올린 파트가 제일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주 멜로디를 품고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들이 내 눈엔 주인공처럼 보였다.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바이올린 교습소를 찾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가지 질문을 하자 학원에서는 일단 와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대로변 상가 3층. 긴장하며 다소 가파른 계단을 한 걸음씩 올랐다. 현관문에 가까워질수록 희미하던 바이올린 소리가 선명해졌다. 조심스레 문을 밀자 딸랑, 종이 울렸다.
“며칠 전에 바이올린 레슨 문의드렸던 사람인데요.”
“아,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사람 좋아 보이는 원장 선생님은 나를 맞아주었다. 단순 상담이었지만 나는 꽤 진지했다. 어쩌면 사춘기 소년이 고민을 털어놓는 것보다 더 진중했을지 모른다.
막상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어도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이 나이에 가능하긴 할까? 악기 값은 얼마나 할까? 레슨비는? 일하면서 시간이 나기나 할까? 육아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아내에게 혼나겠지….’
솔직히 말하면, 그날 선생님이 “바이올린은 활과 현의 마찰로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입니다”라는 설명만 해줘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선생님은 갑자기 악기를 들어보라 하셨다. 그리고 내 어깨 위에 바이올린을 얹어주셨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 손이 스칠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선생님은 악기를 몸에 고정하는 자세까지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다음은 손가락을 짚지 않은 개방현을 긋는 순간이었다. G, D, A, E 선의 순수한 울림이 내 턱 아래에서 진동했다.
당혹스러웠다. 아직 준비도 되기 전, 바이올린이 너무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열심히 하시면 오케스트라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오케스트라 입단을 목표로 배워보세요.
오케스트라!
나는 그날 활도 제대로 쥐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라는 한마디에 머릿속에서는 이미 조명 아래에서 연미복을 입고 연주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 순간, 망설임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날 바로 레슨을 등록했다.
보통 바이올린에 입문하면 두 가지 교재 중 하나를 선택한다. 피아노에 <바이엘>이 있다면, 바이올린에는 <스즈키>와 <시노자키>가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두 교재의 저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바이올린 현이 4개라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았던 나에게는, 어떤 교재를 고르든 큰 차이가 없었으리라. 다만 선생님은 성인 입문자라면 <시노자키>가 조금 더 알맞을 것이라고 했다. 악보·리듬·기술을 단계적으로 익히는 구성이라 논리적 학습에 익숙한 성인에게 적합하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나는 ‘시노자키 센세’의 방식대로 악기를 잡고 기본기를 익히는 여정을 시작했다. 왼손 손가락은 현을 정확히 짚고, 오른손은 활을 움직여 현을 긋는다. 이게 바이올린 연주의 전부다. 얼마나 단순한가!
하지만 첫 레슨부터 나는 진땀을 흘릴 만큼 당황했다.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눈부신 바다에 마음을 빼앗겨 덜컥 뛰어든 것처럼, 밑도 끝도 없는 공포가 몰려왔다.
금속 프렛이 있는 기타와 달리 바이올린 지판은 밋밋하다. 오롯이 귀와 손의 감각으로 음정을 맞춰야 한다. 손가락 위치가 조금만 어긋나도 음이 흐트러진다.
활 긋기도 만만치 않았다. 내 활은 마치 모터라도 단 것처럼 덜덜 떨렸다. 팔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엉뚱한 현을 건드렸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그 집 아니에요, 옆집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럴 때면 내 오른팔은 더욱 굳어졌다.
가장 큰 충격은 레슨이 끝나면 어깨·손목·팔·허리 등 온몸이 쑤셨다는 점이다. 악기를 연주한 게 아니라, 한바탕 레슬링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결국 문제는 ‘힘 빼기’였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악기도 힘을 빼야 순조롭게 연주할 수 있다. 나의 몸은 그야말로 돌덩이처럼 뻣뻣했다.
틈틈이 기록한 바이올린 배움 일지는 한탄과 원망으로 점철돼 있다. 왜 이런 난해한 악기를 선택해 고생인지라고 말이다. 다음은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이 되었을 때인 2019년 3월에 쓴 글의 일부다.
지금 <시노자키> 3권에서 하이든의 <장난감 교향곡>을 배우는 중이다. 트릴(두 음을 빠르게 오가며 연주하는 기법)과 뒷꾸밈음이 나오는 구간만 들어가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여기에 활을 한 번에 이어서 써야 하는지, 혹은 업·다운을 반복해야 하는지조차 헷갈려 헤매고 있다. 결국 선생님이 연주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바이올린은 소리만 들으면 그렇게 매혹적인데, 막상 배워보니 세상 어려운 악기아닌가. 완전히 속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가 첫 번째 고비였다. 바이올린을 정말 그만둘지, 아니면 계속 버텨볼지 갈림길에 놓였던 시기다.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고, 교재는 갈수록 어렵고, 나는 늘 좌절해 있었다. 지금이야 바이올린을 배운 지 겨우 1년 된 초보자가 절망한다는 게 더 웃긴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만두지는 못했다. 이 악기를 다루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오기가 끓어올랐다. 1년 동안 들인 시간과 레슨비에 대한 아까움도 한몫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지금도 내가 얼마나 제대로 된 소리를 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꾸역꾸역, 오늘까지도 계속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차례 레슨 공백기도 있었다. 가장 길었던 쉬어간 시간은 2022년 5월부터 약 30개월에 달했다. 미국 연수를 준비하면서 어학 공부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레슨을 잠시 접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1년 동안 나는 바이올린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가족과 현지에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바이올린조차 가져가지 않은 상태였다. 귀국 후에도 회삿일에 치여 악기 잡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2024년 12월, 다시 교습소에 등록했다. 그즈음 오랫동안 묵혀둔 바이올린을 꺼냈다. 우리집 악기의 여왕은 주인을 잘못 만나 1년 넘게 케이스 안에 갇혀 빛 한 번 보지 못했다. 다행히 그럭저럭 소리가 났다.
문제는 악기가 아니라 나였다. 연주를 중단한 지 너무 오래돼 악보나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은 내게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연주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익숙한 곡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 한겨울인데…’ 하는 망설임이 스쳤다. 그래도 일단 악보부터 펼쳤다.
많이 들었던 멜로디라 초반은 따라갈 수 있었다. 악보를 조금 더 넘기니 오선 위쪽을 뚫고 나온 덧줄 음표들이 나를 기다렸다.
연주 중 난관을 마주하면 늘 그랬듯 몸이 먼저 굳기 시작했다. 이번 고음 구간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은 압박감에 나는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내 손가락이 재빨리 그 파도 위에 올라탄 것이다. 물론 예쁜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음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나는 그 덧줄 음표들의 계이름을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손가락은 그 위치를 찾아갔다. 마치 두뇌와 근육이 따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내가 짚은 음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확인해보았다. 바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음, 오선 맨 윗선에 놓인 ‘솔’부터 하나씩 위로 짚어가며 더듬어야만 비로소 그 고음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우리는 운전할 때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 대로 자연스럽게 차량을 몰고간다. 어느새 바이올린을 잡은 내 손도 그런 단계에 조금씩 다다르고 있었다.
이날 나의 비발디 연주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마음만큼은 곡 이름처럼 봄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오래 쉬었음에도 내 몸이 여전히 바이올린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한때 고비 앞에서 멈춰섰다면 결코 닿을 수 없었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