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클래식

루트비히 판 베토벤-바이올린 로망스 2번 F장조, Op.50

by 강펜치

어머니는 내가 청소년 때 꽤 조숙했다고 하신다. 불과 수년 전인 유년 시절에 까불고 돌아다니던 그 아이가 맞냐면서. 어머니의 이런 평가에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절 내가 들었던 음악을 떠올리면 어머니의 관찰이 정확한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1995년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였다. 용돈을 털어서 산 음반은 <가을로 가는 클래식>이었다. 초록색 바탕의 CD 케이스 겉표지에는 단풍나무 사진과 ‘AUTUMN with CLASSICs’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가을에 어울릴법한 클래식 곡 14개를 모아 놓은 컴필레이션 음반이었다.

그때 국내에서는 김건모가 <잘못된 만남>으로 전국을 뒤흔들었다. 그 대단한 기세는 나의 생활에도 깊이 파고들었다. 집 근처 에어로빅 교습소에서 날마다 이 곡을 틀어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투맨의 <One Sweet Day>가 빌보드차트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팝송에 해박했던 친구들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워크맨을 꺼냈다. 워크맨 안에는 새로 구입한 머라이어 캐리의 테이프가 담겨 있었다.

나도 그 시절 유행하던 가요와 팝송을 즐겨 들었다. 동시에 클래식 음악에도 남다른 애정을 품었다. 왜 이 어려운 음악에 끌렸는지는 스스로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면 낯선 풍경과 인물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음악이 나를 현실의 경계 밖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 클래식을 즐겨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음악 감상 시험이 치러졌는데, 여러 곡을 들려주고 제목과 작곡자를 맞히는 방식이었다. 아마 이 시기에 반강제로 클래식에 노출된 경우를 빼면, 나처럼 직접 CD를 사서 들은 친구는 드물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고상한(?) 취향은 나를 다소 특이한 중학생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발 더 나아가 애늙은이 취급을 받았으리라. 특히 거의 모든 가요 가사를 줄줄이 꿰고 있었던 내 동생에게서 말이다. 같은 배에서 나온 남매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하루는 동생이 물었다.

"오빠는 도대체 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거야?"
"다양한 악기의 음색이나 선율이 아름다워서지."

동생의 질문에는 이미 '이 따분하고 재미없는 음악을 왜 듣는 거야?'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동생은 나의 대답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2층짜리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부모님이 결혼 7년 만에 마련한 집이었다. 아버지가 철강 회사에서 일하며 모은 돈에 할아버지의 유산을 보탰다고 했다. 붉은 벽돌로 만든 아치형 대문에는 아버지의 한자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빛났다. 봄이면 2층 베란다에서 어머니가 가꾸신 철쭉이 붉은 물감을 떨어뜨리며 만개했다.

1층 두 집에는 세를 놓고, 우리 가족은 2층에 살았다. 2층 현관문을 열면 합판 마루의 거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실을 중심으로 방 두 개와 주방, 화장실이 배치됐다. 주방과 작은방 사이에는 다락방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 나는 그 다락방을 내 방으로 쓰기 시작했다. 1인용 침대 하나에 책상을 들여놓으니 공간이 꽉 찼다.

이 다락방의 중심에는 일제 아이와 미니 컴포넌트가 있었다. 베트남 신발공장에서 일하던 외삼촌이 귀국하며 선물해 주신 것이었다. 검은색 본체와 좌우로 분리된 스피커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전원을 켜면 공간이 가볍게 떨릴 만큼 빵빵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중앙에는 카세트 데크와 라디오 튜너, CD 플레이어가 층층이 자리 잡았다.

압권은 맨 위쪽의 3연식 CD플레이어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 아래서 세 장의 CD가 담긴 트레이의 회전 모습은 늘 나를 매혹시켰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CD가 빙글빙글 돌며 불빛을 반사했다. 그 빛은 음악보다 먼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미니 컴포넌트 앞에서라면 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객석도 부럽지 않았다.

이 기계는 알람 기능도 있었다. 내가 설정한 시간에 트레이에 담긴 CD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해 가을 아침마다 <가을로 가는 클래식> 첫 곡과 함께 눈을 떴다.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 알비노니의 <현악기와 오르간을 위한 G단조 아다지오>였다. 마치 등교하는 중학생의 슬픔과 비참함을 이 음악이 웅변하는 듯했다.


나의 다락방에 놓였던 아이와 미니 컴포넌트가 이 모델인 것 같다. 외국의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이 사진을 찾았다.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본 적이 있는가. 주인공인 소믈리에는 잔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그러자 그는 어느새 온갖 꽃이 만발한 들판 한가운데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고작 와인 한 모금에?’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어쩌면 그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도 말이다.


<가을로 가는 클래식> 음반에 담긴 14곡 모두 가을에만 들어야 할 음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두 번째 곡, 피아노로 연주된 바흐의 칸타타〈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되시니, BWV 147〉는 봄을 떠올리게 했다. 새싹이 돋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처럼, 소망 없는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럼에도 앨범 전체는 가을의 정취와 제법 잘 어울렸다. 클래식은 역시 클래식이었다. 어느 계절에 들어도 좋은 그 보편성이 오히려 이 음악을 더 빛나게 했다. 마치 비발디의 〈사계, Op.8〉가 어떤 계절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처럼 말이다.


곡의 제목이 가을과 직접 닿아 있는 곡은 세 번째 순서에 있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연작곡집 <사계> 중 10번째 곡, <가을의 노래, Op.37a No.10>였다. 제목에 ‘가을’이 박혀 있으니 이 음반에 포함된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실제 멜로디에서도 가을의 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우수에 잠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면, 나의 좁은 다락방에도 낙엽이 뒹구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싸늘한 가을날 벤치에 앉아 다크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이 음반에는 특이하게도 베토벤 곡이 3개나 실려 있었다. 4번째 곡인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로망스 2번 F장조, Op. 50>8번째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Op. 27>, 12번째 곡인 피아노 독주를 위한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 WoO 59>였다. 나는 이중에서도 바이올린 로망스에 푹 빠져 있었다. 이 곡은 나에게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음색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보석 같은 곡이었다.


서정적인 도입부는 찌는 듯한 여름의 고생을 한 번에 잊게 해주는 청량감을 선사했다.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즐거운 가을날의 본격적인 전개였다. 차이콥스키의 가을과 다른 얼굴을 가진 가을이었다. 쓸쓸한 가을이 아닌 풍요의 가을이었던 것이다.

나는 바이올린 로망스를 듣는 내내 황금빛으로 영글어가는 가을 들판을 걸었다. 들판에 난 길은 불타는 듯한 단풍나무 숲 속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 숲 속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베토벤은 1798년에 이 곡을 작곡했다. 그 해는 베토벤에게 매우 잔인했다. 그의 음악 경력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청력 이상 문제가 이때 발생했다고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 음악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이런 절망을 딛고 쓴 바이올린 로망스는 200년 뒤 나의 다락방에서 환상적인 가을을 선물했다.


역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발견한 <가을로 가는 클래식> CD 케이스의 앞면과 뒷면의 모습이다.




몇 년 전, 1년간의 미국 연수를 앞두고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던 집은 세를 놓아야 했고,기존 가구나 살림따위를 어디에 보관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집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부모님은 아직 처분하지 않으셨다. 마침 옛 집에는 세입자가 없었다. 어머니는 돈 들이지 말고 모든 짐을 그곳에 옮겨놓으라고 하셨다. 짐을 옮기기 전 몇 개월간 비워놨던 집을 먼저 청소할 필요가 있었다.


지은 지 40년이 다 돼 가는 집은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이 완연했다. 배수구에는 이끼가 돋고, 지붕 기와 몇 장은 떨어져 나가 있었다. 곳곳에 벗겨진 페인트와 듬성듬성 드러난 얼룩은 노인의 검버섯처럼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내가 살던 때보다 공간이 너무 작게 느껴져 당혹스러웠다. 아내가 내 손에 걸레를 쥐어주었다. 나는 걸레를 들고 나도 모르게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희미한 곰팡이 냄새와 나무 냄새가 났다. 나는 나무 창틀에 앉은 먼지부터 닦아냈다. 다락방 창 밖으로 보이는 옥상 너머 풍경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로 가득 매웠던 길거리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 집을 포함해 이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는 이 집도 헐리고 내가 뛰어놀던 골목에는 번듯한 아파트가 세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다락방에 있던 아이와 미니 컴포넌트의 최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마도 어머니가 내다 버리신 것 같다. <가을로 가는 클래식> CD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그 CD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어머니의 대답도 "모른다"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조금만 더 아꼈더라면, 내 삶의 흔적이 배어 있던 물건들을 오래 곁에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으리라. CD와 미니 컴포넌트는 내 곁을 떠났지만, 가을빛 다락방에서 느꼈던 진한 여운만큼은 해마다 이맘때 되살아난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바라봤다. 아파트 정원의 메타세쿼이아들이 오렌지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리클라이너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중얼거렸다.


“거, 바이올린 로망스 듣기 딱 좋은 날씨네.”


https://www.youtube.com/watch?v=emuin7_A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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