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은 '1번 손가락'

비토리오 몬티-차르다시

by 강펜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모양이다.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듣고 느낀 것이 아니다. 며칠 전 바이올린 교습소에서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합주를 위한 악보를 내주실 때 비로소 체감했다. 우리 교습소는 연말에 모든 학생들이 캐럴 등 다양한 곡을 함께 연주하는 전통(?)이 있다.


이 합주 장면은 비디오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선생님은 완성된 합주 영상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시는데, 그 파일을 받을 때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든다.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올해도 잘 버텼구나’ 하는, 작은 자기만족에 가깝다.


이번에 연주할 곡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실버벨>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등을 엮은 곡들이었다. 한눈에도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아 안도했다. '바이올린 풍월 7년에 이 정도쯤이야...' 하는 거드름도 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한 말씀 덧붙였다.


아, 그리고 <차르다시>도 연습해 오세요. 모든 원생들이 함께 연주할 거예요. 악보 가지고 있죠?


선생님은 웃고 있었지만, 나는 좀 어지러웠다. 비토리오 몬티의 그 현란한 <차르다시>를 말씀하시나? 지금? 왜? 이 헝가리 집시 음악이 크리스마스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예수님이나 산타가 헝가리 출신인가? 열심히 사고 회로를 돌려봤다. 결론은 '아무 연관도 없다'였다.


사실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어떤 곡을 연주하든, 그게 무슨 큰 문제이겠는가.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에 〈차르다시>를 연주할 명분부터 찾고 있는 내 모습은, 이 곡에 대해 내가 여전히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수년 전, 이 곡을 붙들고 끙끙대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날 집에 돌아와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던 악보집을 꺼내 <차르다시>를 다시 펼쳐 들었다. 음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왼팔에 묵직한 통증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 곡이 주는 부담을 설명하기 위해, 이번에는 바이올린 연주와 관련한 기술적인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야 할 것만 같다.




몬티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그의 곡 <차르다시>가 집시 특유의 애수와 흥을 동시에 품도록 작곡했다. 초반부의 가늘고 섬세한 음색은 듣는 이의 심금을 단번에 뒤흔든다. 바이올린이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다.


이어지는 폭발적인 바이올린 선율은 방금 전의 슬픔을 지워버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게 할 만큼 격정적으로 흐르는 게 후반부의 매력이다.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아름다움과 열정이 또렷하게 공존하는 명곡임은 분명하다.


몬티는 1904년경 살롱용 기교 소품용으로 헝가리 민속 춤곡 형식 바탕의 이 곡을 썼다. 19세기말 유럽 음악계에 만연했던 헝가리·집시 음악 열풍 속에서 <차르다시>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차르다시>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기교와 감정을 한껏 드러내기에 최적화된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어설픈 실력으로는 연주가 만만치 않다. 나는 이미 수년 전 이 곡을 접하고 그 점을 톡톡히 느꼈다. 특히 도입부의 고난도 '포지션 이동' 때문에 나에게는 아름다운 음색보다도 몸의 고통이 먼저 기억하는 곡이었다. 아, 포지션 이동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다.


바이올린을 처음 손에 쥐는 순간, 하나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 여정에서 악기를 창밖으로 던지고 싶은 충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구간이 있다. 바로 이 포지션 이동을 배울 때다. 나는 확신한다. 입문자들에게 “포지션 이동 어땠어요?”라고 물어보다면 분명 눈물의 간증들이 쏟아질 것이다.


포지션 이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면 누구나 ‘1 포지션’에서 출발한다. 1 포지션은 왼손을 몸에서 가장 멀리 있는 지판 끝에 두고 현을 누르는 기본 위치다.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에 1번부터 4번까지의 손가락 번호가 붙는데, 1 포지션에서 각 음계에 대한 손가락 번호가 정해진다.


그런데, 몸 쪽과 가까운 현을 눌러야 할 때가 있다. 고음을 연주하거나, 독특한 음색을 내기 위해 손가락 위치를 옮겨 연주하는데 이것이 바로 포지션 이동이다. 보통 1 포지션 외에도 2 포지션, 3 포지션, 4 포지션 등이 있다. 같은 현에서 연주하더라도 포지션이 높아질수록 음역이 높아진다. 대개는 1 포지션 다음으로 중요한 3 포지션을 먼저 배운다.


그렇다면 손가락 번호는 어떻게 될까? 맞다. 포지션이 바뀌면 손가락 번호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1 포지션에서 A선의 시, 도, 레를 켤 때 손가락 번호는 1(검지), 2(중지), 3(약지) 번이다. 3 포지션에서 연주한다면 D선 3(약지), 4(새끼) 번, A선 1(검지) 번으로 바뀐다.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뀐다고 할까.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지금까지는 익숙한 'QWERTY' 키보드로 타이핑을 해왔다. 손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생각보다 먼저 손가락이 반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키보드 배열이 통째로 바뀐다. 'ㄱ'을 누른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글자가 찍힌다. 손가락은 그대로인데, 기준이 되는 배열이 달라진 것이다. 나에게 <차르다시>가 바로 그런 곡이었다.




차르다시 악보. 'G-----'로 표시된 다섯 번째 마디 Largo부터 셋 째줄까지가 오로지 G선에서만 연주하는 구간이다.


내가 가진 <차르다시> 악보를 보면, 첫 음부터 9마디까지 오선 위에 ‘G---------’라는 표시가 길게 늘어져 있다. 이 구간을 4개의 현 중 가장 낮은 음역인 G선 위에서만 연주하라는 뜻이다. 문제는 G선에서 3 포지션으로 이동하더라도 손가락이 최고음인 '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악보는 나에게 팔, 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가제트 형사'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왼손을 악기 악기 몸통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야 한다. 처음엔 악보를 따라가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도약이라고 느꼈다. 이어 왼팔의 날카로운 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바이올린을 켜는 동안 왼팔은 원래부터 자연스럽지 않은 각도로 지판을 떠받친다. 음이 높아질수록 그 비틀림은 더 깊어지고, 손목까지 함께 꼬인다. G현에서 시를 짚으려는 순간, 누군가 팔뚝을 붙잡고 억지로 돌려놓는 듯 아팠다. 이런 상태에서 곱고 맑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 활을 그을수록 들려오는 것은 선율이 아니라, 철판을 못으로 긁는 듯한 소리였다.


게다가 3 포지션을 넘어서는 고음의 위치를 과연 무슨 재간으로 정확히 짚어낼 수 있겠는가. 연습 중이라면 현의 울림을 들으며 손가락을 미세하게 옮겨 맞출 수도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이런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공연 중에 연주자가 그런 식으로 음을 더듬는 순간, 관객은 즉각 반응한다. 당연히 좋은 반응일리 없다.


나는 전문 연주자들이 이 구간을 연주하는 영상을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들의 손가락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정확한 자리에 내려앉는 체조 선수 같다. 망설임 없이, 한 번에 정확한 현의 위치를 짚어낸다. 물론 그 짧은 순간은 말 그대로 피나는 연습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 것이다.


다행히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올린 사부님은 포지션 이동 때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칙이 있다고 강조하셨다.


기준은 1번 손가락, 검지입니다. 1번 손가락만 제 위치를 잡으면 나머지 손가락도 따라갑니다. 기억하세요. 1번 손가락!


검지가 정확한 자리를 잡아야 다른 손가락의 간격과 형태도 그 지점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정렬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검지가 어긋나면 모든 음정이 흔들린다. 그래서 고음으로 도약할 때도 ‘1번 손가락만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비단 바이올린 연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 또한 수많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다. 일이 한꺼번에 몰리고 정신없는 상황이 펼쳐질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의 분명한 기준, 가장 중요한 원칙에 기대야 한다. 이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또렷하게 가리킨다. 허공에서 헤매는 손가락들을 제자리로 이끄는 1번 손가락처럼 말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머리가 멍했다. 기획 기사 아이템 발제에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글도 써야 했다. 취재원과의 인터뷰 약속도 잡아야 했고, 못다 한 취재를 하다 마감 시간까지 겹쳐버렸다. 1월에 계획한 가족 여행 숙소 예약도 나의 몫이었다. 할 일은 넘쳐났고, 마음은 방향을 잃고 있었다. 나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기준은 1번 손가락.


https://www.youtube.com/watch?v=vflWkL8yg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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