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떠난 스토리텔링 여정

프롤로그

by 강펜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차로 2시간 북쪽으로 가면 세도나(Sedona)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붉은 바위산들이 장관을 이루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종처럼 생긴 ‘벨락(Bell Rock)’입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종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꼭대기 부분이 사람 얼굴 형상을 하고 있어 놀라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종이라 여겨온 바위가, 어느 순간 ‘큰바위 얼굴’로도 읽히는 순간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 한국 저널리즘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미디어 빅뱅 시대,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사람 사는 다양한 모습과 경험을 오롯이 담아내야 합니다. 언론인들의 관행적인 취재와 글쓰기는 우리 사회를 하나의 이미지로만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치 벨락을 종 모양만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기자가 갖춰야할 기본 중의 기본이 역삼각형의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 신문이나 온라인 뉴스로 접하는 대부분의 기사가 이런 형태입니다. 우선 글의 핵심 주제를 처음 한 두 문장에 압축해서 씁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중요한 팩트의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2009년 기자로 입사한 뒤 저는 숙명처럼 이 스트레이트 기사만이 전부인줄 알고 기사를 써왔습니다.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담기는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 스트레이트 기사는 정보전달에 최적화됐다는 장점이 분명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런 상황은 언론과 독자와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던 중 수년 전 스토리텔링 뉴스, 이른바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우연히 접했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다양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릎을 쳤습니다.


저는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미국에서 스토리텔링 기사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죠. 2023년 하반기부터 애리조나주립대(ASU)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 동안 관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7명의 미국 전현직 언론인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이중에는 퓰리처상 수상자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 학기말 과제로 관련 주제를 풍성하게 연구하기 위해 한국의 언론계 인사들도 접촉해 기사 쓰기에 대해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이 학위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제가 참여한 이 연수 프로그램은 다른 언론인 연수와 견줘 손에 꼽힐 만큼 타이트한 일정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 덕분에 이런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길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언론사 밥을 먹은 지도 어느덧 15년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이 업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낯설고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뉴스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제대로 된 뉴스를 전달해야 한다는 책무는 기자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아울러 뉴스의 질을 관리하고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역시 기자의 몫 아닐까요.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언론 불신을 극복할 실마리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연재는 제가 미국에서 연구했던 ‘스토리텔링 뉴스’가 무엇인지, 미국의 기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취재하고 글을 쓰는지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기에 기자로 일하며 겪은 개인적 경험도 함께 풀어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 분야를 선구적으로 실험해 온 기자들과 뉴스룸이 존재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그들의 성취와 뛰어난 작업을 존경해 왔습니다. 이 글은 미국 언론이 한국 언론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언론계의 선후배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의도 또한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참여했던 연수 프로그램은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은 만큼, 배운 내용을 공유하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제가 몸담고 있는 뉴스룸의 기자 선후배들이었으면 합니다. 인력이 날로 줄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빠듯한 상황 속에서도 저는 연수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준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이 연재가 그들에게 작은 보답이 되길 희망합니다. 나아가 다른 언론사 선후배들의 소소한 관심까지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겠습니다.


아울러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공자와 교육자, 기자 지망생, 논픽션 작가들도 이 연재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참고할 만한 단서들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거창한 해답이나 완성된 이론을 제시하려는 글은 아닙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종처럼 보이던 바위가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주세요. 우리가 익숙하게 써온 뉴스 역시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다른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