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한국적인’ 역피라미드의 탄생
2009년, 언론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였다. 보통 여느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수습기자였던 나는 사회부에서 수습 기간의 일부를 거쳤다.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는 취업준비생들은 자발적으로 '언론 스터디'를 만들어 언론사 시험을 대비한다. 이른바 '언론 고시'라고 부른다. 나는 그곳에서 논술과 작문 시험, 시사상식 풀이에 집중했고 기사 작성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읽어보는 수준에 그쳤다. 이런 '인간이 덜 된' 수습 기자들을 두고 선배 기자들이 기사 쓰기를 가르친다.
한 번은 기사를 못 써 끙끙거리던 나에게 한 선배가 내 책상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세상 기사 다 세 가지야.”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웃기만 했다. 선배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펜을 든 채 설명했다. 그가 알려준 내용은 언론에서 가장 흔히 소비되는 뉴스 분류법이었다.
첫째는 권력이나 부조리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비판 보도다. 흔히 ‘신문사의 꽃’이라 불리는 사회부 기자들이 이 보도의 첨병으로 포진돼 있다. 둘째는 행정이나 정책 성과 중심의 홍보성 보도다. 정부나 지자체가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기사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은 명확한 판단을 유보한 채 쟁점을 나열하는 보도다. 찬반 입장을 병렬로 배치하고,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흔히 ‘논란 기사’로 분류되는 유형이다. 기자가 사실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들기보다, 서로 다른 말을 따옴표 안에 담아 나열하는 ‘따옴표 저널리즘’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 세 가지 유형의 기사는 대개 하나의 공통된 형식으로 완성된다. 바로 역피라미드 구조의 '스트레이트 기사'다.
다소 거칠고 현장적인 표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뉴스 생산의 관행을 놀라울 만큼 직관적으로 압축한 말이었다. 당시 그 선배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사를 써왔다. 기사 작성에 있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한마디는 아무것도 모르던 수습기자의 머릿속에 기사의 내용과 형식을 단번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자가 되면 누구나 스트레이트 기사 작성부터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도입부에 두고, 중요도가 낮은 정보는 뒤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첫 한 두 문장인 ‘리드’에는 핵심 내용을 압축해 담는다. 이어지는 단락에서 육하원칙에 따라 세부 설명을 덧붙인다. 스트레이트 기사가 왜 삼각형을 뒤집어 놓은 꼴인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형식은 효율적이다. 독자는 기사의 처음 몇 문장만 읽어도 사건의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빠르게 써야 하는 기자에게도 합리적인 방식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기사가 이 틀 안에서 생산되면서 불거졌다.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제목만 바꿔 달아도 기사 내용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천편일률적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언론계에서도 스트레이트 기사를 비판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뉴스의 다양한 스타일, 특히 스토리텔링 기법 적용을 옹호하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박재영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박 교수는 나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스트레이트 기사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현재 한국 언론의 기사는 여전히 '매우 한국적인' 역피라미드 구조로 작성됩니다. 한국의 역피라미드 구조는 미국의 역피라미드 구조보다 훨씬 더 규격화되어 있습니다. 미국 기사는 역피라미드 구조라 하더라도 매우 유연해서 역피라미드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박 교수가 지적한 '매우 한국적인' 역피라미드란 무엇일까? 이 부분은 그가 <커뮤니케이션 이론> 제4권 2호(2008)에 게재한 학술 논문 '역피라미드 구조의 한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같은 역피라미드 구조라 하더라도 한국의 기사 관행은 미국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역피라미드가 여러 기사 형식 가운데 하나로 활용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기사 규범으로 굳어졌다고 부연한다.
특히 한국 신문기사는 짧은 분량 속에서 리드에 주제와 결론을 과도하게 압축한다. 이후 문단은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과 자료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맥락과 과정이 탈락되기 쉽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형식은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독자의 이해와 판단을 돕는 데에는 오히려 한계를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박 교수는 한국 언론의 역피라미드 글쓰기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장 큰 원인은 '1)다양한 글쓰기가 있음을 모른다 2)알더라도 시도하지 않는다'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원인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며, 더 큰 원인은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더라도 시도하지 않는 원인은 우선 우리 언론계가 도전적이지 않으며 실험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위험을 회피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한국적인 역피라미드형 스트레이트 기사는 과연 지금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소구력이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5년 초 발표한 ‘2024 언론수용자 조사’는 이 질문에 냉정한 답을 내놓는다. 조사 결과, 인터넷과 SNS, 숏폼 영상 등 대부분의 미디어 이용률은 상승했지만, 뉴스 이용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조사 대상 12개 미디어 중 8개 매체에서 뉴스·시사 정보 이용이 전년보다 줄었다.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재단이 2024년 12월 펴낸 ‘뉴스 이용과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보고서에는 언론 수용자들의 생생한 인식이 담겨 있다. 심층 집단 면접(FGI)에 참여한 한 응답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문은 아무래도 보기 불편하고, 최근에 본 적은 있는데 내용이 별로 없어요. 과거에는 4대 일간지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골고루 살펴봤지요. 요즘은 광고가 너무 많고 사설밖에 볼 게 없는 거 같더라고요. 사설은 좀 읽는데 신문이 사설만 보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뉴스 같은 경우 TV를 보더라도 그 시간이 지나가면 끝나는 거니까...안보게 됩니다. (Group 3 참가자 4)
또 다른 참가자는 뉴스 소비 방식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영상보다는 활자 위주로 보는 거를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짤막하게 카드뉴스로 업로드해 주더라고요. 그렇게 SNS 등에서 카드뉴스처럼 딱딱 보기좋고 간결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선호하고, 호기심도 생기고요.(Group 2 참가자 2)
특정 사안을 놓고 모든 기자가 같은 역피라미드 구조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리 신문의 종류가 다양해도 기사들은 서로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 ‘보기 불편하고 내용이 없다’는 인식은 어쩌면 이 구조적 반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외 언론은 다를까. 2018년 6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문과방송>에 게재된 좋은저널리즘연구회의 연구는 한국 신문이 기사 구성 방식에서 유독 형식적으로 경직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2016년 한 해 동안의 1면 기사를 분석해 국내 주요 일간지와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타임스, 일본 아사히신문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는 분명했다. 국내 일간지의 1면 기사 가운데 스트레이트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84%에 달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20.8%에 그쳤고, 분석·해설 기사가 59.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피처 기사' 비율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전체 기사 중 18.1%를 피처 기사로 구성한 반면, 국내 일간지는 4.5%에 불과했다.
적어도 뉴욕타임스는 사건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가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는 보도 방식을 일정 부분 제도화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와 뉴스를 연결하는 방식의 차이다.
피처 기사가 그 차이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다. 피처 기사는 사건의 중심에 사람을 놓고,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맥락을 함께 담는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넘어서, 그 일이 어떤 조건에서 가능했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묻는다. 독자는 기사를 읽으며 정보의 소비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동반자가 된다. 스토리텔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물론 모든 뉴스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대체될 수는 없다. 긴급한 재난 보도나 단순 사실 전달, 공공 정보의 신속한 공유에는 여전히 스트레이트 기사가 유효하다. 다만 스트레이트 기사가 거의 유일한 표준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언론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지점이다. 일상의 뉴스 생산에서는 여전히 스트레이트 기사가 표준이고, 다른 형식은 부차적인 선택지로 밀려나 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뉴스가 독자와 맺는 관계 역시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문장을 더 감성적으로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피라미드라는 효율의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독자가 뉴스를 ‘읽지 않는’ 시대에, 저널리즘은 무엇으로 독자를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 그 답을 찾는 여정에서 스토리텔링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