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 공연의 추억

프란츠 슈베르트-교향곡 3번 라장조, D.200

by 강펜치

아침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간밤의 꿈자리마저 뒤숭숭했는지,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아내가 아침으로 정성스럽게 차려준 전복죽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결국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쳐 맨 채 집을 나섰다. 드레스코드는 ‘올 블랙’. 검정 슈트에 검정 양말, 검정 구두까지 맞춰 신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우리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지 8개월 만에 첫 정기 공연 무대에 서는 날이었다. 옷차림은 말쑥했으나 속은 긴장감에 요동치고 있었다. 공연장을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끊임없는 회의가 밀려온 게 사실이다.

'정말 할 수 있을까. 다른 연주자들에게 민폐는 아닐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공연 당일이 되어서야 “저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 창피하다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에는 ‘넘기스트’—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역할이라도 충실히 해내자고 다짐했다. 물론 넘기스트도 음표의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두 눈 번득이며 흐름을 따라가야 하기에 만만히 볼 일은 아니었다.

콘서트홀에서 처음 안내받은 곳은 대기실이었다. '아, 연주자들은 공연 직전에 이런 곳에서 머무는 구나'하고 머리로는 담담히 생각했다. 그럼에도 심장의 쿵쾅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대기실의 조명은 생각보다 훨씬 밝았다. 거울 옆에 박힌 조명이 특히 눈부셨셨다. 방 안에는 이미 많은 연주자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의 악기를 꺼내 연습을 시작했다. 바이올린과 첼로, 관악기 음들이 뒤섞이면서 대기실은 작은 소리의 소용돌이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나도 바이올린을 꺼내서 손을 풀어야 하나… 아니면 괜히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결국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리허설을 위해 무대로 이동했다. 무대 조명은 대기실보다 훨씬 더 밝았다. 마치 모든 걸 숨길 수 없는 장소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연주자들이 하나둘 자리로 들어오면서 무대가 완성되어 갔다. 바이올린 파트가 먼저, 이어서 첼로, 목관과 금관, 마지막으로 타악기까지. 모든 파트가 자리에 앉았다. 리허설이 시작됐다. 이제는 정말 도망칠 수 없다.



나는 기자로 일하면서 아주 고약한 ‘직업병’ 하나를 얻었다. 마감 시간이 닥쳐야 초인적인 힘을 끌어내 기사를 완성하곤 한다. 문제는 이런 ‘벼락치기’ 습성이 일상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 공연곡 연습도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개인 연습을 시작한 건 공연을 불과 한 달 앞둔 지난해 11월부터였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모두 8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연습한 곡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3번 라장조, D.200> 전 악장이었다. 내게는 감당하기 벅찰 만큼 어려운 곡이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였다. 게다가 정기공연의 성패를 가를 첫 곡이었기에 단원 모두가 이 곡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슈베르트는 10대 후반이던 1815년에 이 교향곡을 썼다. 1악장은 장중한 서주 뒤에 경쾌한 알레그로로 시작해 공연의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린다. 2악장은 슈베르트 특유의 노래하듯 부드러운 선율이 돋보인다. 3악장은 미뉴에트 형식 속에서도 활달한 리듬으로 흐름을 이어간다. 마지막 4악장은 폭발적인 질주로 곡을 시원하게 매듭짓는다.

나는 매일 적어도 30분 이상 연습하기로 규칙을 정했다. 졸지에 아들의 방은 내 연습실이 돼버렸다. 방 한쪽에 보면대와 의자를 갖다 놓고, 매일 슈베르트와 씨름했다. 복잡한 음표를 따라가다 보면 채 5분도 안 돼 바이올린과 활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건 ‘엄격한 공룡 선생님’의 눈초리였다. 사실 그 공룡 선생님은 아들의 장난감이다. 공룡을 나를 향해 돌려놓고, 마치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게 했다. 연습을 멈출 때마다 나는 상상했다.

여기서 손 놓으면, 공룡 선생님이 날 잡아먹는다.’

어느 정도 악보가 눈에 익자 자신감도 조금 붙었다. 일부 구간은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전 악장을 모두 소화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마치 평소 놀던 수험생이 수능이 닥치면 어려운 단원을 과감히 포기하듯, 나에게는 이 곡의 4악장이 그랬다. '프레스토(매우 빠르게)'가 붙은 4악장은 마치 빛의 속도로 전개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자연스럽게 1~3악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손톱만한 자신감은 합주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손가락은 꼬였고 활은 허공을 헤맸다. 집에서는 그럭저럭 되던 대목이,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할 때마다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연습의 배신’이 아니라 ‘연습의 부족’이었다. 슈베르트는 내게 벼락치기를 허용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즈음, 러시아에서 유학했던 새 악장이 합류했다. 파트별 연습에서 악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컨드 바이올린이 어려운 이유가 있어요. 잘하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단, 실수 한 번에 사람들이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는 공연에서 그 본전조차 찾지 못할 위기에 서 있었다.

내 연습실로 변한 아들의 방. 활을 내려놓는 순간 공룡 선생님한테 잡아먹힌다!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연주자들도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악장이 일어나 조율을 시작했다. 그의 활이 공중에서 가볍게 한 번 떠올랐다 내려오자, 오케스트라의 소리들이 제각각 깨어났다.
조율이 끝나자 연주자들이 다시 자리에 고요히 가라앉았다.

곧이어 지휘자 선생님이 무대로 들어왔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지휘자는 관객에게 인사한 뒤, 이내 연주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가 악기를 들어 올리라는 첫 포즈를 취하기까지, 그 짧은 침묵은 끝이 없을 만큼 길게 이어졌다. 무대 위 공기마저 팽팽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지휘봉이 움직였다. 교향곡 1악장 도입부가 포르테시모(아주 세게)로 무대를 갈랐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마치 수면 내시경 직전의 극한 긴장 속에서 마취제가 스며들며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과 닮았다고 할까. 공연 중에는 이상하리만치 시간이 압축됐다. 길었던 준비가 단 몇 분의 음악으로 접혀 들어갔다.

그런데 진짜 수면내시경 중이었다면, 벌떡 일어날 만한 순간이 몇 차례는 있었을 것이다. 숨 가쁘게 달리던 음들이 1악장 71번째 마디(동영상 3분 50초부터)에서 잠시 멈춰 섰다. 활로 한 박자씩 길게 눌러 찍듯이 긋는 부분이었다. 이어 음들은 무지개 아치처럼 서서히 위로 치솟았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머리끝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도 모른 채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에 전율이 번졌다. 지금도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 감각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동? 환희? 황홀감? 경이로움? 무아지경? 닭살? 소름?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이 맛에 음악을 하는구나.'

숨 가빴던 공연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단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관객들도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내와 아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귀까지 걸렸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마치 한바탕 맞고 난 사람처럼 전신이 뻐근했다. 결국 나는 이틀 동안 허리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내 생애 첫 오케스트라 공연을 치른,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6eOqv_K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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