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비발디-바이올린 협주곡 가단조 작품 3, 제6번, RV 356
나는 내가 태어난 부산에서 45년을 살아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창 시절의 모든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지역 언론사에 취업했기 때문에 직장도 당연히 부산에 있다. 나는 부산에서 10여 년 전에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아들도 낳아 키우고 있다.
부산을 잠시 떠난 적도 있었다. 군 복무로 2년 이상을 경기도 안성시에서 지냈다.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에서 지낸 각 1년을 합쳐 외국에서 2년가량 머물렀다. 그럼에도 고향인 부산을 떠나 있던 시간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인생의 압도적인 시간을 부산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 내가, 그것도 20년도 더 된 서울 지하철 환승역의 배경음악을 기억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조금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기억력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을 해봤다. 서울 지하철 환승역의 배경음에 대한 언론 보도를 하나 찾았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던 5∼8호선은 2000년에 비발디 협주곡 ‘조화의 영감’ 제6번 1악장을 사용했다.
나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됐다. 기사가 말하는 비발디의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비발디가 1711년 출판한 작품으로 그의 초기 협주곡 중에서도 꽤 명성이 높다. 게다가 초보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기에도 적당할 정도로 비교적 평이한 편이다. 내가 가진 바이올린 교본 <시노자키> 4.5권에 수록된 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가 이 곡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00년, 그해 여름방학에 나는 서울 지하철 전동차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갑자기 넘쳐나기 시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그러다 우리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서울에 한 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서울에 살던 사촌 형님 집에 잠시 머물렀던 것이다.
그때는 아직 KTX가 개통되기 전이라 부산역에서 서울행 무궁화호를 탔다. 열차 안에서 파는 도시락을 까먹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대여섯 시간 멍하니 바라다본 것 같다. 서울역에 이르기 직전, 한강 철교를 건너며 창가에 바싹 붙어 63빌딩을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바라봤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부산 촌놈’이었다.
그런데 63빌딩보다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촌 형님 집으로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겹겹이 친 거미줄과 흡사한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당시 서울 지하철은 1호선부터 8호선까지, 여덟 개 노선이 문어발처럼 뻗어 서울 전역을 촘촘히 덮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로 못 가는 곳이 없다’는 말을 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반면 서울 다음으로 ‘제2의 도시’를 자부하던 부산의 지하철은 당시 1호선과 2호선 일부 구간에 그쳤다. 부산 지하철 2호선 전 구간이 개통된 것도 그로부터 2년 뒤인 2002년 여름의 일이었다. 지금은 부산 지하철도 4개 노선에 동해선, 김해경전철까지 확장되긴 했다. 그럼에도 그리 멀지 않은 21세기 초반에 서울과 부산 간 이처럼 큰 격차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되돌아볼수록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과연 그때 서울과 부산은 같은 대한민국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사촌 형님의 집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이 통과하는 동대문구 답십리역 근처에 있었다.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이 5호선이 자연스럽게 나의 발이 됐다. 우선 5호선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서울의 유명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래서 광화문과 경복궁, 세종대로, 교보문고 일대를 둘러봤던 것 같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비수도권 시민이 서울을 방문하면 지하철역 입구에 놓여있는 종이 노선도를 소지하는 게 필수였다. 전동차 내부에서는 나처럼 노선도를 신문처럼 펼치고 목적지를 확인하던 승객 한 두 명이 꼭 있었다. 이들은 매끈한 서울말이 아닌 투박한 사투리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 또한 이방인일 것이라는 나의 짐작은 확신으로 변하던 순간이었다.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가기 위해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한 번만 방심해도 낯선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전동차 안에서는 다음 역 안내 방송에 귀를 바짝 기울였다. 그러다 한 역에 다다르기 직전, 이 대도시의 이미지처럼 세련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6번>이었다.
‘왜 다음 역 안내 방송 전에 이런 음악이 나오는 걸까?’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도 클래식을 감상하는구나 싶었다. 그 음악이 흘러나오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 여학생이 곡의 일정한 8분음표 흐름에 맞춰 고개를 리듬감 있게 흔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클래식 음악으로도 충분히 헤드뱅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곡을 틀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 분은 다음 역에서 내려 몇 호선 열차를 갈아타면 된다"는 내용의 안내 방송에 나는 다시 노선도를 쳐다봤다. 다음 역은 지하철 노선 2개가 겹치는 역, 다시 말해 '환승역'이었다. 노선도를 조금 더 살펴보니 노선 3개가 포개지는 구간도 발견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시 나의 머릿속에는 환승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부산에서는 지하철 1호선에 2호선 일부가 개통돼 있었다. 부산의 유일한 환승역은 1, 2호선이 겹치는 서면역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근처를 지나는 2호선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기에 나에게 대중교통 수단은 여전히 버스였다. 다시 말하면 지하철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환승역에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탄다는 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
서울 지하철 환승역에 내려 환승 통로를 따라 다른 노선의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바닥에 표시된 노선 색깔 화살표를 밟아가며 걷는 동안, 머릿속에는 한 가지 걱정이 맴돌았다. 혹시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우려는 곧 기우로 드러났다. 마치 신발을 갈아 신듯, 아무런 추가 요금 없이 자연스럽게 다른 전동차에 올라탔다.
이처럼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6번>과의 첫 인연은 나에게 신세계였던 서울 지하철 시스템과 맞닿아 있다. 이는 서울과 지방의 격차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내가 이 일을 겪은 뒤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인가 수도권에는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사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내 삶의 터전인 부산은 특히 심각하다.
청년들에게 대학과 직장의 '인 서울'은 필수가 돼 '부산 엑소더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정이 이러니 부산은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7개 특별광역시 중 처음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오죽했으면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등장했을까 싶다.
지난해 봄,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말마다 서울 강남역 일대를 오가야 했다. 25년 전 서울 지하철의 환승역 충격은 지금의 강남역 풍경과 함께 되돌아왔다. 그것은 강남역 주변과 전동차 안을 가득 채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청년들이었다. 마치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는 부산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마주하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부산 원도심 일대에서 서면역까지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승객들 사이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마흔을 넘긴 나조차 그 안에서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다 보니, 전동차 안은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젊은 기척이 옅어진 그 정적 속에서, 문득 오래전 서울 지하철에서 들었던 그 곡이 다시 떠올랐다. 얼마 전, 나는 그 기억을 확인하듯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6번>을 연주해 보려고 유튜브에서 연주 영상을 찾아봤다. 역시 댓글창에는 ‘환승역의 추억’에 관한 반응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이번 역은 5호선 열차로 갈아타실 수 있는 군자, 군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하철 6호선 합정역에서 이 음악 진짜 많이 들었는데. 역시 비발디!”
서울 시민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하나의 잔상을 지울 수 없다. 외국을 여행하듯 신기했던 서울 지하철 환승역의 첫 경험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자락에는 늘 ‘서울 공화국’이라는 씁쓸한 단어가 함께 맴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3조 2항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2026년의 서울과 부산, 나아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같은 헌법을 공유하는, 여전히 같은 대한민국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KiVZQ9DDE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