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아리랑 환상곡
아내는 저녁 약속이 있다며 늦겠다고 카톡을 보냈다. 알아서 저녁을 해 먹으라는, 통보에 가까운 메시지였다. 아들도 저녁을 잘 먹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는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반찬으로 뭘 할지 잠시 고민했다. 다행히 먹다 남은 오리고기가 있었다.
‘양파가 있으면 딱이네.’
냉장고에서 양파를 꺼내 물에 씻고 껍질을 벗겼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썰기 시작했다. 코끝을 톡 쏘는 매운 향이 올라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볼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칼질이 멈췄다. 양파가 내 눈물샘을 자극한 걸까.
그런데 이상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양파의 양은 많지 않았다. 여기에 작은 반전이 숨어있었다. 내 눈물 버튼을 누른 건 양파가 아니었다. 오리고기를 볶기 전, 유튜브에서 틀어놓았던 음악이 주범이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영원한 클래식'인 아리랑의 오케스트라 버전 <아리랑 환상곡>이었다.
지난해 우리 오케스트라 정기공연 8곡 가운데 이 곡이 있었다. <아리랑 환상곡>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두 번 놀랐다. 1976년 이 곡을 편곡한 음악인 최성환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내가 알던 아리랑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내게 정말 까다로운 악보였다.
제2바이올린 파트 일부 구간에는 플랫(b)이 무려 여섯 개가 붙어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서 '트레몰로'를 반복하며 박자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트레몰로는 활을 짧게 그으며 같은 음을 빠르게 반복해 내는 주법이다. 긴장감과 에너지가 끓는 듯한 효과를 내지만 잠깐만 정신줄을 놓아도 박자가 미끄러진다.
양파를 썰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스마트폰을 잽싸게 치켜들어 <아리랑 환상곡> 연주 영상을 지켜봤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요리하면서 틀어놓으려고 무심코 뉴욕필하모닉의 아리랑 연주를 골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화면을 자세히 보니, 공연장 무대 양 끝에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뉴욕필이 2008년 북한 평양에서 연주한 장면을 담은 영상이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오리고기는 말끔히 사라졌다. 근엄한 표정의 지휘자 로린 마젤이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도입부에서 바이올린과 하프가 어우러지며 신비로운 분위기가 번졌다. 뒤이어 피콜로 솔로가 우리 민족 특유의 가락을 또렷이 뽑아내자,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눈앞에 그려졌다. 곧 아리랑의 주선율이 펼쳐졌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무언가를, 조용히 건드렸다.
앞서 내가 언급했던 트레몰로 구간(동영상 03:51부터)은 최 작곡가가 창작한 부분이다. 나는 뉴욕 필하모닉의 이 부분 연주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첫머리의 연주 지시는 ‘Con sentimento’. 감정을 담아 연주하라는 뜻이다. 이내 비통하게 탄식하듯 이어지는 ‘Lamentoso’ 구간으로 넘어간다.
이 구슬픈 선율 속에는 우리 민족이 겪어온 불행과 수난, 온갖 역경이 압축돼 있는 듯했다. 한 번은 바이올린 파트별 연습 시간에 악장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지도할 때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리라고 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필이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하는 동안, 카메라는 가끔 관객들의 표정을 비췄다. 평소 미국을 ‘승냥이 미제’라며 핏대를 세우던 북한 아니던가. 미국 관현악단이 평양에서 버젓이 공연을 열었다는 게 매우 초현실적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한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음악을 듣던 그들의 심정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한 신문은 지휘자 마젤의 부고 기사에서, 그가 평양 공연을 떠올렸던 대목도 전했다. 미국이 ‘불량국가’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나라에서, 관객들이 보인 반응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리랑을 연주했을 때 북한 청중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어요. 따뜻하고 적극적인 관객들이었죠. 다시 평양에 돌아와 음악회를 열겠다는 제안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또 다른 부고 기사는 이렇게 쓰였다.
평양으로 가기 전 한반도에 영구적인 화해 등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던 마젤은 공연 후 "아리랑이 미국인과 북한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마젤은 평양 공연 6년 뒤인 2014년 7월 13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날 뉴욕필의 공연은 위대한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승냥이 미제’의 관현악단과 ‘불량국가’의 관객도 음악 속에서는 잠시나마 같은 마음으로 평화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PgwJdah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