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무데우스 모차르트-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
불꽃놀이 중 색색의 불꽃이 터질 때, 밤하늘은 거대한 스크래치 아트로 변한다. 찰나의 빛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덧없음을 찬양하는 이들이 있다. 인생으로 치면 청춘의 시기와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짧고 눈부셨던 순간을 그리워한다. 나도 대체로 그렇다. 단, 두 시기만은 예외다. 2년 2개월의 군 복무와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1년. 특히 취업 준비 속에서 마주한 좌절과 절망은 내 청춘을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했다.
현역병과 취업준비생의 삶에는 닮은 점이 많다. 단조롭고 반복된다는 것이다. 군인은 점호와 경계근무, 훈련으로 하루를 보낸다. 취준생은 매일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간다. 가끔 취업 스터디에 참석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다. 취업 전까지 여가란 사치에 불과했다. 물론 친구들과 싸구려 술집에서 쥐꼬리만 한 용돈을 털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마저 없었다면, 이 우울했던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싶다.
도서관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먼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환한 형광등 아래 앉아 토익 책에 코를 박고 영단어를 외웠다. 시사 상식을 익히고, 신문을 펼쳐 밑줄을 긋기도 했다. 참으로 '문과생스러운' 취업 준비였다. 인생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지식들을 머릿속에 쑤셔 넣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공부만 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도서관에 앉아 몇 시간이라도 버티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밤 11시가 되면 도서관 스피커에서 평온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문 닫을 시간이니 짐을 챙기라는 신호였다. 정확히 어떤 악기인지는 물랐지만, 어딘가 쓸쓸한 관악기 소리가 먼저 귀를 파고들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책을 덮고, 가방에 소지품을 주섬주섬 넣었다. 출입문을 항해 걸음을 옮길 때면,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관악기의 선율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서야 그 곡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학교가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은 학생들을 위로하려 이 곡을 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 명곡을 배경으로 학교 홍보 방송을 내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잠시 음악이 흐른 뒤 "00 대학교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어찌 됐든, 차분한 클라리넷 음색만큼은 셀 수 없는 취업 실패로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로 남았다.
"취업하려면 원서 백 장은 써야 한다"는 게 친구들의 말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도 여기저기 수많은 입사 지원서를 냈다. 처음에는 기자를 꿈꾸며 언론사만 골라 지원했다. 걸과는 모조리 탈락이었다. 졸업이 가 까워지자 마음이 조급해져 이 회사 저 회사 문을 두드려 봤다. 1차 서류 전형에서부터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엔 이른바 '기본 스펙 3종 세트'라는 말이 있었다. 공인영어성적(대개 토익)과 학점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 한 가지를 두고는 주장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자격증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출신학교 간판, 곧 학벌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그 세 번째였다. 가진 자격증이라곤 한자 자격증 2급이 전부였다. 만약 그것이 학벌을 뜻한다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어느 날, 취업에 성공한 스터디 회원이 한 턱 내는 자리에 참석했다. 모두 적당히 취기가 오른 무렵, 한 여학생 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빠, 이번에 취업하신 데 연봉이 얼마예요?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세 개?"
그 무렵 내 주변 취준생들 사이에서 연봉 3천만 원을 일종의 마지노선처럼 여겼다. 그녀의 짓궂은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가락 네 개를 우뚝 세웠다. 나는 다섯 개를 펼쳐 보이리라 다짐하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던 중 한 줄기 희망이 비쳤다. 수많은 지원서를 제출한 회사 중 면접에 오라고 통보를 해온 곳은 1류 기업 A사가 유일했다.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1등 하는 기업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군.'
그때부터 나는 이미 반쯤 이 회사의 직원이 되어 있었다. 합격만 한다면 한 턱은 물론, 두 턱, 세 턱까지 낼 자신 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마에 A사 명함을 붙이고 등장하리라.
https://youtu.be/yLV8VH98pL0?si=_YkQvra7ZBkg8p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