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
면접일, A사 사옥에 도착했다. 대기실에는 새까만 정장을 입은 지원자들로 가득했다. 흡사 일만 시켜주면 충성을 다 바칠 수 있는 개미떼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다짐했다. 저 녀석들 다 제치고 꼭 합격하리라고 말이다. 그곳에서는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무한 반복됐다. A사도 나에게 "노바디 노바디 벗츄"를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날의 미션은 두 가지였다. 첫 빈째는 집단 토론. 지원자 몇 명이 모여 주어진 주제를 놓고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다. 그 뒤에는 개인 면접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내가 속한 조의 토론 차례가 되었다. 네 명이 한 조였다. 주제는 'A사가 고소득층(또는 부유층)을 겨냥한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가'였다. 각자 자신의 논리를 내세워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택해야 했다. 굳이 인원수를 반반으로 나눌 필요는 없었다.
지원자 세 명은 재빠르게 찬성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그런데 나만 홀로 반대를 택했다. 1 대 3으로 맞서면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도전심리를 자극했다. 나는 이 회사가 진정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특정 계층이 아닌 대중을 위한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조한 논리였기에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토론이 마무리되자, 심시위원이 지켜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토론한다고 다들 수고하셨어요. A사는 지금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사업도 진행 중입니다." 이때부터 나는 뭔가 잘못돼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면접 시간이 되었다. 면접관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하나는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엔 이명박 정부 시절로, 광우병 논란이 전국을 뒤흔들던 때였다. 연일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정부를 비판했다. 특정 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면접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대기실로 들아와 자리에 앉아 면접관의 질문 의도를 곱씹기 시작했다. 혹시 그 질문의 이면에 '정치적 코드'가 숨어 있었던 게 나닐까. 아니면, 이놈이 우리 회사에서 말을 잘 들을 것인지 미리 시험해 보려던 건 아니었는지. '무노조 경영'을 전매특허처럼 자랑하던 회사였다. 내가 정부를 비판하고 시위대를 옹호했으니, 나를 반골로 낙인찍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나는 너무 솔직했다. 일단 합격하기 위해서라면 속마음쯤은 감춰야 했다. 필요하다면 악마에 영혼이라도 팔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갑자기 맥이 빠졌다. 대기실 배경음악이 바뀌었다. 손담비의 '미쳤어'로.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며칠 뒤, A사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빛나는 이 회사의 명함도, 손가락 다섯 개를
당당히 펼치는 상상도, 한순간의 봄꿈처럼 사라졌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문'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지옥의 문 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희망을 버리라!"
그날은 캠퍼스를 그저 서성였던 것 같다. 가방 속 책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결국 발길이 닿은 곳은 다시 도서관이었다. 버리지 못한 책을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2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몇 잔이나 들이 겼는지 모른다.
11시가 되자 어김없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울려 퍼졌다. 나는 연기처럼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남기고 얼마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날 그 음악과 합께 내 청춘의 한 장면도 희미해졌다. 겨울로 접어든 거리에는 낙엽이 뒹굴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이 클라리넷 선율을 들으면 그때의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AUHW_OQifrY
.622, 2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