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순간

운명 같은 인연은 존재할까

by 강산

운명처럼 특별한 만남을 꿈꾸었던 적이 있다. 언젠가 누군가 운명처럼 내 삶에 찾아올 것이며 나는 그 순간 그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나의 역할은 배제한 채 원하는 이상의 상대가 다가와주기를 바란다니 지금으로선 한편 참 속 편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운명이란 단어는 낭만적인 매력이 있다. 겪을 모든 상황과 역경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내가 결국에 함께 헤쳐나갈 필연적인 과정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나의 진심을 모두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랑과 재채기는 참을 수 없다"는 말처럼, 불가항적인 영역에 가깝다는 점에서 사랑과 운명은 맞닿아있는 듯하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는 나의 가치관에서 운명이란 오히려 "전심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불가항적으로 강렬한 감정에 나는 이 사람을 운명처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에 가깝다. 같은 맥락에서 나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은 "운명의 상대를 만난 순간"과 결코 다르지 않다.



문득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이 나의 운명이었음을, 즉 사랑에 빠졌다고 깨닫는 순간은 어떨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강렬한 직감을 먼저 느끼고 그에 따라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들을 노력한다는 말은 왠지 어색하다. 오히려 누군가를 만나했던 무의식적인 행동들과 그 순간의 감정들이 되돌아 떠올렸을 때 "사랑이었구나"라고 문득 깨닫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빠진 순간은 아래와 같다.

그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도 모르게 향수를 꺼내어 뿌린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사람이 맛있어하는지가 더욱 궁금해 문득 음식의 맛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자주 꺼내게 된다.

그 사람의 공간과 일상이 궁금해진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들을 여러 번 찾아 복기한다.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 한 마디에 한번 더 고민하게 된다.

그 사람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 사람이 속한 성격유형 및 사소한 특징들에 대해 파고들어 공부한다.

내가 스스로가 멋있고 뿌듯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그 사람과 공유한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투와 표현들을 어느 순간 내가 따라 하고 있음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사랑에 관련한 단어를 더욱 자주 쓰게 된다.

나의 건강과 외적인 모습을 더욱 관리하게 된다.

지나간 하루가 아쉬워지고 다가오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같은 순간에 느끼는 행복감이 더욱 크고 선명하다.


"사랑에 빠진 순간"은 일순의 상황이기보다는 "사랑에 스며들어 어느 순간 깊이 빠져있다"는 과정에 더욱더 가까운 듯하다. 마치 불가항력인 장력에 휩싸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행동들을 하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해 나간다면 운명이라는 흐름에 어쩌면 이미 파고들어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내가 그 운명 속에서 조금 더 주도권을 잡고 한점 후회 없는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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